[‘공존 자본주의’에서 길을 찾다]<1>2050세대 집단심층 면접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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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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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안오르는 건 월급과 아이 성적뿐… 가계부 보면 우울”

동아일보는 현 경제 상황에 대해 국민이 느끼는 분노의 깊이를 가늠하고, 한국 경제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자 리서치앤리서치(R&R)에 집단심층면접조사(FGI)를 의뢰했다. FGI는 기업에서 마케팅 조사에 많이 사용되는 기법으로, 조사 대상자에게 특정 주제를 주고 토론을 하게 함으로써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는 방식이다. FGI는 사회자가 참가자의 답변에 맞춰 그때그때 질문 내용을 바꿈으로써 참가자의 마음속 얘기까지 끌어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이번 FGI는 △25∼34세 △35∼44세 △45∼55세 연령별 남녀 등 6개 그룹으로 나눠 지난해 12월 8∼16일 진행했다. 조사 대상자들은 사전에 서로의 성향을 모른 채 2시간 동안 50여 개 질문에 허심탄회하게 답변했다.

참가자들은 전반적으로 현 경제 상황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표시했으며, 특히 취업난과 가계부채, 부(富)의 양극화, 치솟는 교육비를 경제적 고통의 원인으로 꼽았다. 일자리 창출과 복지 확대 등 큰 틀에서의 대책에는 공감대를 이뤘지만 구체적인 정책수단에 대해서는 세대별, 성별로 의견이 엇갈렸다. 강도 높은 정부의 개입을 원하는 목소리와 함께 규제 완화 등 정부의 역할 축소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소개한다.

[채널A 영상]“사는게 고통”…경제고통지수 역대 3번째로 높아

① 현재 경제 상황 어떻게 평가하나


●20대 “서민들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아요. 요즘은 돈이 있어야 배울 수 있고 어렵게 배워도 중산층 이상으로 올라가기는 쉽지 않고. 부유층이나 삼성 같은 대기업만 잘되잖아요.”(권모 씨·29·자영업)

“얼마 전에 정부가 물가지수를 계산하는 기준을 바꿔서 물가 상승률을 좀 낮췄죠. 조작 아닌가요. 그런다고 비싼 물가 때문에 고통받는 서민들에게 위안이 될까요.”(안모 씨·25·학생)

●30대 “대학 졸업하면 취직 걱정, 결혼하면 빚 갚을 걱정, 나이 들면 명퇴 걱정, 퇴직하면 노후 걱정. 정말 끝이 없네요.”(나모 씨·32·여·회사원)

“요즘 안 오르는 건 월급하고 아이들 성적뿐이라는 말이 있죠. 월급을 받으면 다음 달 월급이 들어오기 열흘 전에 바닥이 납니다.”(유모 씨·32·회사원)

●40대, 50대 “다들 마이너스 통장 1개쯤 있을 겁니다. 빚 없이 못 삽니다. 수출 1조 달러를 하면 뭐 합니까. 속은 곪고 있는데.”(최모 씨·40·자영업)

☞ 전반적으로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해서 부정적 의견 제시.


② 취업난을 얼마나 실감하나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려운 거 같아요. 그때는 물가는 좀 싸고, 집값도 싸고, 보통 사람들도 이래저래 살았는데 요즘은 대기업이나 잘사는 사람 빼고 중산층은 계속 밑으로 가라앉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이모 씨·50·주부)

●20대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아닌 대학 졸업생들의 취업난은 상상을 초월해요. 제 주변만 해도 계약직인 친구들도 많고 아르바이트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친구들이 수두룩하죠.”(강모 씨·27·여·학생)

●30대 “힘들게 공부해서 졸업해도 취직을 못하는 청년층 보세요. 내년에 대학 졸업하는 사람들은 더 어렵겠지요. 경기도 안 좋으니까요. 88만 원 세대의 비애입니다.”(이모 씨·36·회사원)

“일자리 상황은 정말 최악이에요. 청년실업도 문제지만 베이비붐 세대의 조기 퇴직도 심각해요. 이 사람들이 자영업자로 바뀌고 실패하고 낙담하고, 전반적으로 질서가 무너진 느낌이에요.”(이모 씨·36·자영업)

●40대, 50대 “친구를 만나거나 후배를 만나거나 한결같이 언제 잘릴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회사에서 구조조정 얘기 나오는 친구들은 죽을 맛이겠지요.”(김모 씨·44·회사원)

“대학에 입학하는 아들은 졸업해서 취직이나 할 수 있을지, 50대인 남편은 남편대로 언제 직장에서 쫓겨날지 정말 답답해요.”(이모 씨·50·주부)

☞ 일자리 부족, 대기업 선호 등 사회적 인식 때문에 취업난이 심해지고 있다고 평가.


③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고 보나


●20대 “청년실업은 심각한데 대기업 임원들은 수십억 원씩 연봉을 챙기죠. 임원들 월급 줄이고 채용을 좀 더 늘리면 안 되나요.”(안모 씨·25·학생)

●30대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특히 비정규직 보면 정규직하고 똑같이 일하면서 연봉 차이가 많이 나죠. 최저생계비 수준의 벌이밖에 안 되죠.”(최모 씨·39·회사원)

●40대, 50대 “경제가 너무 대기업 위주로 돌아가는 거 같아요. 중소기업은 살아남기가 너무 힘들어요.”(김모 씨·46·여·회사원)

“서울 강남을 가면 살 만한 거 같은데 다른 지역에 가면 경기가 엉망이에요.”(김모 씨·45·자영업)

☞ 계층 간 소득격차, 지역 간 불균형으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


④ 부동산 문제에 대한 생각은


●20대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월세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서민들이 꼬박꼬박 월세 내는 거 엄청난 부담입니다. 그런데도 서울로 오죠. 지방을 더 개발해야 하지 않을까요.”(권모 씨·29·자영업)

●30대 “저희 엄마 아버지를 봐도 집이 안 팔리니까 이자만 나가고, 자영업자들은 먹을거리가 안 팔리니까 문을 닫고, 경제가 부동산 하나 때문에 엄청나게 삐걱대는 것 같아요.”(정모 씨·32·여·자영업)

“하우스푸어라고 하죠. 잔뜩 대출 받아서 집 샀는데 집값은 떨어지고 이자 내기도 벅차죠.”(유모 씨·32·회사원)

●40대, 50대 “얼마 전에 2년간의 전세 계약이 끝나 재계약을 하려니까 집주인이 50%를 올려 달래요. 어이가 없어서 다른 집을 알아봤는데 전세가 없는 거예요. 울며 겨자 먹기로 여기저기서 돈을 구해 재계약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이모 씨·45·직장인)

☞ 전세난, 집값 하락 등 부동산 문제를 경기침체의 주요 원인으로 꼽아.

⑤ 교육문제 어떻게 풀어야 할까

●20대 “부실 대학은 없애버렸으면 좋겠어요. 건물 하나 짓고 학장이네 총장이네 하는데, 이런 사람들이 정부 지원금을 제대로 쓰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이런 데 지원하는 돈으로 등록금 깎아주는 게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권모 씨·29·자영업)

●30대 “사교육이 줄고 있다지만 유치원부터 벌써 경쟁이 치열해요. 요새는 100일 된 애들부터 과외한대요. 조바심에 따라갈 수밖에 없어요.”(조모 씨·33·주부)

“학습지 하나 안 시키고 버텨 봤는데 초등학교 6학년 되니까 학원 보내야 하는 상황이 되더라고요. 예전엔 과외하면 감옥 보냈는데 강제적인 정책을 쓰더라도 사교육 좀 막아줬으면 좋겠어요.”(김모 씨·39·여·자영업)

●40대, 50대 “공교육이 완전히 무너졌어요. 아이들 체벌할 수가 없으니까 선생님들이 무조건 엄마한테 전화해요. 어떤 아이는 부모 말도 안 들으니까 선생님이 그 애 다니는 성당 신부님한테 전화했다는 얘기도 들었어요.”(방모 씨·44·주부)

“마이스터고 지원한다고 하는데 그런다고 변화가 생길 것 같지는 않아요. 좋은 직업은 한정돼 있고 다 그걸 하고 싶어 하는데. 독일처럼 대우를 확실히 해주지 않으면 해결되기 어렵죠.”(한모 씨·54·여·학원 강사)

☞ 대학 구조조정은 모두 공감했으나 특성화고 육성에 대해서는 현실성에 의문. 사교육에 강도 높은 규제 주문.


⑥ 현재 서민정책에 만족하나


●20대 “미소금융, 햇살론은 대출 요건이 너무 까다로워 그냥 보여주기 식 같아요. 신혼부부들 위해서 전세자금 대출도 해 준다는데, 그것도 까다로워서 받는 사람 별로 못 봤어요.”(강모 씨·27·여·학생)

●30대 “20년 장기전세주택 임대 시프트는 빛 좋은 개살구인 것 같아요. 신청해 보려고 했는데 순위 안에 들려면 다자녀여야 하고, 서울에 오래 살아야 하고 전혀 실수요를 따라가지 못해요.”(유모 씨·32·회사원)

●40대, 50대 “신용불량자 같은 사람들 구제하는 데 정부가 너무 돈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아는 사람이 6000만 원 대출받아서 생활비로 1년 만에 다 쓰고서는 개인회생 신청했어요. 그러고는 회생되자마자 차를 샀어요.”(강모 씨·45·여·회사원)

“가까운 사람이 햇살론 이용하려고 했는데 다 거절하더래요. 햇살론 취급하는 금융회사들이 손해 안 보려고 안 내준다는 거예요. 결국 이것도 꼼수 부리는 거죠.”(이모 씨·45·회사원)

☞ 모든 그룹이 서민정책 효과에 대해 부정적.


⑦ 바람직한 복지정책 방향은


●20대 “육아, 출산만 하라고 하는데 그에 대한 확실한 복지정책이 필요해요. 일하는 여성들 직장에서 경쟁은 갈수록 심해지는데, 애 낳는 데 지원해 주는 것은 별로 없고….”(심모 씨·27·여·학생)

●30대 “미국하고 비교해도 우리나라는 복지가 정말 바닥이에요. 특히 국공립 보육시설은 없다시피 하잖아요.”(나모 씨·32·여·회사원)

“정치권이 복지 확대하겠다고 하는데 형평성 문제도 있어요. 지금 30대 초반은 20대 때도 혜택은 못 받았고, 노인들도 책임져야 해요. 지금 10, 20대 지원해 주는 것은 기성세대에 대한 배신이에요. 복지는 노후나 보육 같은 데만 집중하면 좋겠어요.”(박모 씨·31·자영업)

●40대, 50대 “복지도 양극화예요. 실버타운 분양하는 것 보면 돈이 어마어마하게 있어야 해요. 애들 대학등록금 주고, 결혼시키고 하다 보면 웬만한 사람들은 말년에 병이 있어도 병원에도 못 갈 것 같아요.”(이모 씨·43·주부)

“부모님 보면 노령연금 나오는데 정말 사탕값 정도예요. 그걸로는 입는 것 먹는 것 해결하는 데 턱도 없어요. 노인복지는 거의 제로 수준이라고 봐요.”(방모 씨·44·주부)

“의료는 보편적 복지보다 빈곤층을 좀 더 확실하게 지원해 줘야 해요. 세입자 중에 젊은 아가씨가 건강보험료 제대로 못 내서 폐에 물이 찼는데 병원도 못 가고 있더라고요. 그런데도 정부 지원 받을 길이 없어요.”(한모 씨·50·자영업)

☞ 보육과 노인 복지 확대에 대해 모든 세대가 공감. 그 외 복지 확대에 대해서는 경계하는 부정적 반응.


⑧ 가장 원하는 경제정책은


●20대 “세금 집행을 확실히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세금 쓰이는 것도 완전 엉망이잖아요. 시청 하나 짓는 데 몇백억 원씩 쓰고. 세금 낭비하는 것부터 막아야 해요.”(안모 씨·25·학생)

“비정규직 대신 정규직 채용하는 것은 기업 오너 마음이잖아요. 비용이 더 드는 일인데 오너가 정규직 늘릴 수 있는 이유를 정부가 만들어 줘야 기업이 움직이죠.”(권모 씨·29·자영업)

●30대 “아이 2, 3명 이상 낳게 하려면 많이 낳은 사람은 교육비를 전액 면제해 주든지, 확실하게 지원해서 돈 없는 사람들도 애 낳을 수 있게 해줘야죠.”(유모 씨·32·여·회사원)

“저라면 노인에 대해서도 회사가 몇 퍼센트 의무적으로 고용하도록 하는 정책을 펼 것 같아요.”(정모 씨·36·회사원)

●40대, 50대 “국민 세금으로 외국인들 혜택받는 것 좀 줄였으면 좋겠어요. 주식시장 개방하고 외국기업 유치한다고 너무 혜택 주니까 단물만 빼가고 결국 서민들만 피해 보는 거예요.”(이모 씨·44·여·자영업)

“일자리도 없는데 외국 인력 몰려오는 것도 좀 문제예요. 아는 사람이 식당에서 일하는데 외국에서 온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한국 사람이라고 왕따당한대요.”(이모 씨·45·주부)

“예측 가능한 정책 좀 했으면 좋겠어요. 특히 부동산 정책은 정권 바뀔 때마다 바뀌니까 집 팔기도 사기도 무서워요.”(강모 씨·51·금융업)

☞ 일자리와 복지 확대에 주력해 줄 것을 주문.


정리=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 집단심층면접조사(FGI·Focus Group Interview) ::

FGI는 주로 기업들이 새로운 상품을 내놓기 전 타깃으로 삼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심층 토론을 벌여 상품에 대한 태도 등 각종 정보를 얻는 면접조사다. 수치화된 정보를 얻는 일반적인 설문조사보다 조사 대상자의 깊이 있는 생각을 파악할 수 있다. 정부 기구에 대한 인식이나 정책 평가에도 자주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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