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현대-기아車 사다주면 일당 100만원”… 편법 ‘병행수출’ 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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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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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업체들, 알바생 고용해 車사들여 유럽·러·중동 수출… 국산車의 달라진 위상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를 사다주면 일당 100만 원을 드립니다.”

돈을 줄 테니 차를 산 뒤 넘겨주면 일당을 준다는 ‘고수익 단기 아르바이트 모집’ 광고가 전단과 인터넷을 통해 활개치고 있다. 수당은 신차 1대에 최소 20만 원에서 최대 100만 원에 이른다. 소규모 신차 수출업체들이 현대차와 기아차, 한국GM 등 국내 완성차 업체의 내수용 신차를 아르바이트생을 통해 대량 구입한 뒤 유럽 중동 러시아 등 해외로 수출해 수익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해외 일부 국가에서는 한국차의 시세가 국내보다 최고 2배 이상 높다. 이처럼 가격이 높은 것은 관세와 함께 현대차의 이중가격정책 때문이다.

현대차와 기아차 영업본부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업체는 신차를 사지 못하게 하고 있지만 업체들은 일용직을 고용해 명의를 빌린 뒤 차를 구입하는 편법을 동원하며 차익을 얻고 있다.

○ 병행 수출 난립

현재 국내에는 하나물산, 대성월드무역, 성원무역, 이엠모터스 등 수십 개에 달하는 신차 수출업체가 난립 중이다. 이들은 자사 업무를 합법적인 ‘병행 수출(Parallel Export)’이라고 소개한다. 예컨대 과거 SK네트웍스 등 일부 업체가 공식 딜러를 거치지 않고 개별적으로 차량을 수입해 판매하던 ‘병행 수입(Parallel Import)’의 반대 개념이라는 주장이다.

업체들은 ‘고수익 단기 아르바이트 모집’ ‘병행수출 딜러 모집’ 등의 광고를 내고 새 차를 대신 구매해 줄 일용직을 구한다.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 차량 대수를 1인당 1, 2대로 제한하며 주변인을 소개해 주면 소개료도 지급한다. 한 업체는 5일 전화통화에서 “일용직으로 우리 업체에서만 한 달에 100명 가까이 일하는데 400만 원 넘게 챙겨가는 사람도 있다”고 설명했다.

업체들은 채용한 일용직에게서 주민등록등본 등 신분증명서를 받은 뒤 차량 구입비를 주고 ‘대리점으로 찾아가 신차를 계약하라’고 주문한다. 차종의 특정 모델과 옵션, 색상까지 지정해 준다. 차량이 출고되면 곧바로 명의를 이전받은 뒤 해외 수입업자에게 팔아넘긴다. 이렇게 넘긴 차들은 관세 등 각종 비용을 다 더하고 이윤을 남겨도 해외 시세보다 10∼20% 싸다.

선호 차종은 국가별로 다양하다. 한 업체 관계자는 유럽과 중동은 현대차 ‘투싼ix’나 기아차 ‘스포티지R’ 등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러시아는 ‘제네시스’ 등 고급 세단, 베트남 등 동남아에서는 ‘스타렉스’ 등 승합차와 ‘포터’ 등 소형상용차가 인기라고 설명했다. 모두 현지에서는 국내 가격의 1.5∼2.5배에 팔리는 차들이다. 현대차 투싼ix 2.0은 최저사양 기준으로 한국에서 1977만 원이지만 러시아에서는 99만4900루블(약 3632만 원)에 팔린다.

업체들은 신차 수출로 상당한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외 현지와 국내 시장의 시세 차익은 물론이고 유럽 등 현지 화폐가 강세를 보이는 지역에서는 환차익도 거둘 수 있다. 차량을 중고차로 신고해 수출하면 관세 부담도 줄어든다. 업계 관계자는 “모델별로 차이가 있지만 업체들이 보통 1대에 300만∼500만 원을 남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설업체들이 정식 유통망을 통해 차량을 수출하지 않고 있어 탈세나 사기 등의 의혹도 있다”고 말했다.

○ 국산차 해외 대리점 타격

직접적 피해를 보는 것은 국산차 업체의 해외 대리점이다. ‘병행 수입’된 차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판매된 차량은 시장 질서를 어지럽게 하고 서비스 문제를 복잡하게 해 현지 시장에서의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이러한 정황이 알려진 뒤 해외 공식 딜러 및 대리점의 요청으로 사설 수출업체들의 출고를 제한하는 한편 개인이 여러 대의 차를 한번에 구입하지 못하게 하라는 지침을 영업 일선에 전달했다.

○ 해외에서 더 비싸게 팔리는 국산차

이렇게 차익을 남길 수 있는 구조가 된 데에는 국산차의 품질과 상품성이 좋아진 점도 한몫을 했다. 유럽은 원래 자동차 가격이 높은 편인데 현대차가 폴크스바겐 같은 유럽 경쟁 업체들과 비슷한 가격을 받아도 경쟁이 된다. 굳이 국산차의 현지 가격을 낮출 필요가 없는 셈이다. 러시아는 수입차에 대한 세금이 워낙 높아 원래 현대차나 기아차와 같은 수입차들의 가격이 높다.

그러나 국내 자동차업체들은 이런 사설 업체의 시장 교란에 대한 대비책이 없는 상황이다.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사설업체를 단속할 뚜렷한 법적 규제방안도 없다.

이진석 기자 gene@donga.com  
:: 병행수출 ::

정식 공급업체가 아닌 제3자가 공식 유통 과정을 거치지 않고 별도로 같은 상품을 수출하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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