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시대에 2G 행정… 제2 벤처 붐 ‘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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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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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 업체엔 컴퓨터 책 구입비만 인정… 다른 부처와 손잡으면 지원 못해…

《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업체인 A사 김성현(가명·30) 대표는 단돈 3만 원짜리 책 한 권을 사면서 중소기업청 직원과 최근 실랑이를 벌였다. 김 대표가 구입한 이 책은 회계 일반이론을 다룬 것으로, 최근 창업한 그에게는 꼭 필요한 자료였다. 올 6월 최대 7000만 원을 지원해주는 정부 예비기술창업자금을 따낸 김 대표는 규정에 따라 중기청에 도서구입비를 요청했다. 》
하지만 중기청은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앱 개발 중소기업은 컴퓨터 관련 서적만 지원받을 수 있다”며 지급을 거부했다. 정책자금의 부정한 사용을 막기 위해 업종 관련 자료만 구입하도록 제한돼 있다는 설명이었다.

김 대표는 “예비기술창업자금을 받는 기업은 대부분 스타트업(start-up·창업 초기 벤처기업)이어서 경영일반이나 회계지식이 필수일 수밖에 없다”며 “소프트웨어 업체는 컴퓨터 책만 사보라는 공무원들의 안일한 발상에 어이가 없다”고 전했다.

○ 현장 모르는 탁상 행정


스마트폰 대중화를 계기로 최근 국내 스타트업들이 2000년 ‘벤처 붐’에 이어 중흥기를 맞고 있다. 벤처기업계는 외환위기에 이어 2000년대 초반 정보기술(IT) 버블이 걷히면서 큰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대기업에 소프트웨어를 납품하지 않고도 오픈마켓인 앱스토어에 프로그램을 올려 수익을 직접 보장받을 수 있는 신(新)세계가 열리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다. 벤처 1세대 주역인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자가 “지금 이렇게 넓어진 시장과 스마트폰 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 10여 년 전과 비교가 안 된다. 2000년 벤처 붐보다 기회가 더 많아졌다”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제2의 벤처 붐을 이어가야 할 정부가 현실성 없는 규제와 부처 이기주의로 스타트업들의 창업 의지를 오히려 꺾고 있다. 올해 창업한 B사 이정현 대표(32)는 최근 중기청 창업자금을 따내고도 인건비 지원을 한 푼도 받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스타트업으로선 이례적으로 직원을 세 명이나 고용했지만 창업자금을 타기 이전에 이들을 채용한 게 화근이었다. 중기청 규정에 따르면 창업자금 지원을 받은 이후 뽑은 인력에 한해 회사가 4대 보험에 가입해야만 인건비를 지원할 수 있다. 이 대표는 “경영환경이 열악한 스타트업들이 모든 직원에 대해 4대 보험을 챙겨주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토로했다.

○ “우리 부처하고만 사업하자”


소프트웨어 전문가로 손꼽히는 KAIST 김진형 교수는 ‘앱센터운동본부’를 만들면서 부처 간 이기주의를 뼈저리게 느꼈다. 아이폰 확산에 따른 앱 경제의 잠재력을 내다본 김 교수가 2009년 세운 이 조직은 스타트업들에 앱 개발공간과 장비 등을 지원하는 민간단체다. 당시 김 교수는 정부 지원금을 받으려고 중기청과 지식경제부, 방송통신위원회 등을 뛰어다니며 수소문했으나 “오직 우리 부처하고만 손잡고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조건에 막혀 애를 먹었다.

소프트웨어(지경부 관할)이자 문화콘텐츠(문화체육관광부)인 앱의 속성상 여러 부처와 협력해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지론이었다. 그는 “요즘 교통정보 앱처럼 공공정보까지 활용하려면 행정안전부의 협조도 필요한데 공무원들이 현실을 모른 채 부처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며 “각 부처를 아우를 수 있는 ‘앱 컨트롤 타워’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중기청(앱 창작터)과 방통위(스마트 모바일 앱 개발 지원센터), 지경부(한국형 통합 앱스토어 사업) 등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앱 육성 정책을 쏟아내면서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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