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업계 11년 담합… 한전 옭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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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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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2008년 전력선 낙찰가 뻥튀기… 최소 3000억 피해 입혀

한국전력공사가 만성적인 적자로 전기료 인상을 추진하는 가운데 국내 34개 전선업체가 한전을 상대로 11년간 입찰 담합을 벌인 사실이 드러났다. 대·중소기업을 망라하고 국내 전선업체 대부분이 공모한 이번 담합으로 한전은 적어도 3000억 원가량의 피해를 본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전선업체들이 담합으로 전선 가격을 비싸게 받은 게 한전의 적자를 키운 것으로 보고 손해배상 청구를 추진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7일 국내 34개 전선제조업체와 전선조합이 한전이 발주한 전력선 구매입찰에서 1998∼2008년 11년간 담합을 벌인 사실을 적발해 32개사에 과징금 386억1600만 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특히 담합을 주도한 LS, 가온전선, 대한전선 등 대기업과 전선업계 협의체인 전선조합 등 4곳은 검찰에 고발했다. 업체별 과징금은 LS 126억2500만 원, 가온전선 65억7700만 원, 대한전선 32억7900만 원 등이다.

오랜 기간 관행처럼 굳어진 전선업계의 담합은 대담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전선업계는 매년 한전의 전력선 입찰예정 물량을 놓고 품목별로 수주 예정 회사를 미리 선정한 뒤 수주를 받은 회사들은 배분 비율을 정해 담합에 가담한 다른 회사들에 납품 물량을 나눠줬다. 담합을 통해 입찰경쟁을 막아 납품 단가를 높게 유지한 뒤 한전에서 받아 챙긴 부당이득을 전선업계 전체가 나눠 갖는 방식이다.

실제로 2000년 8월 한전이 1267억 원 규모의 전력선 구매 입찰공고를 내자 전선업계는 대기업이 646억 원, 중소기업이 621억 원 규모의 물량을 나눠 갖기로 하고 대기업에서는 LS, 가온전선, 대한전선이, 중소기업에서는 일진과 진로가 수주를 하기로 합의했다. 이어 10월에 열린 입찰에서 실제로 낙찰을 받은 5개 기업은 나머지 기업들로부터 전선을 납품받는 방식으로 수주한 물량을 나눠줬다.

특히 전선업체들은 한전이 입찰공고를 내며 제시한 낙찰예정가격이 낮으면 아예 입찰에 참여하지 않거나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써내는 방식으로 입찰을 무산시켜 낙찰예정가격을 높이기도 했다. 실제로 2000년 한전이 입찰한 방수용 지하전력선은 전선업체들의 담합으로 15번 유찰돼 낙찰예정가격이 57억3000만 원에서 66억7000만 원으로 인상되기도 했다.

공정위는 한전이 11년간 이 업체들에서 구매한 전선 1조3200억 원 가운데 21%인 2772억 원 정도가 담합으로 ‘뻥튀기’ 되면서 고스란히 한전의 부담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한전은 지난해에만 1조8000억 원가량의 영업적자를 기록해 최근 전기요금 10%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앞서 전선업계는 2009년에도 한전의 피뢰침 겸용 통신선 입찰에서 담합을 벌인 게 적발돼 66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됐으며, 올해 KT 통신선 입찰 담합, 건설사 전력선 입찰 담합, 유통대리점 판매 가격 담합으로 이미 565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된 바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부족해 적발되진 않았지만 1998년 이전에도 전선업계가 관행적으로 담합을 벌였을 개연성이 있다”며 “이들의 담합이 국민 부담으로 연결된 만큼 한전과 이 업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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