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 금싸라기 땅’ 한전이 개발? 강남 술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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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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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의 에너지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가 2일 전남 나주에 본사 신사옥을 착공하면서 서울 강남구 삼성동 본사 땅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 서울 강남권에 위치한 사실상 마지막 알짜배기 땅인 데다 현대건설 사장 출신인 김중겸 신임 사장이 직접 개발하고 싶다는 의사를 최근 밝혔기 때문이다. 한전은 노무현 정부의 ‘지역균형발전정책’에 따라 내년도 하반기(7∼12월)에 본사 땅을 매각하고 나주로 본사를 옮겨야 한다. 하지만 3조 원대로 추정되는 한전 땅을 사들일 수 있는 능력이 일부 대기업에 한정돼 내년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특혜 시비에 휩싸일 가능성도 있다.》
○ 신임 사장 한마디에 ‘미묘한 파장’

김 사장은 지난달 17일 “한전의 재무 건전성 강화를 위해서 정부와 협의해 본사 땅을 직접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전 본사 땅 7만9342m²(2만4000여 평)의 올해 공시 지가는 1조3000억 원이지만 부동산업계에서는 실거래 가격을 이보다 훨씬 높은 3조 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양도소득세(최대 35%)를 내고 나면 실제 손에 쥘 수 있는 금액이 크지 않다는 게 김 사장의 판단이다.

김 사장의 발언은 지식경제부, 국토해양부 등 중앙정부와 서울시 및 대기업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지경부와 국토부는 이미 매각이 확정된 공공기관의 터를 신임 사장이 개발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에 내심 불쾌해했다.

한전 땅의 용도변경 권한을 쥔 서울시도 수익형 부동산으로 개발하겠다는 데 예민하게 반응했다. 서울시 도시계획국 관계자는 “본사 땅을 매각해 나주 신사옥의 공사 대금을 치러야 할 텐데 수익금 회수가 오래 걸리는 개발 사업에 한전이 뛰어들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한전 본사 땅을 포함해 삼성동 일대를 복합 개발할 계획을 세워온 일부 대기업도 김 사장의 발언을 듣고 관련 부처에 가능성을 문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 서울 강남권의 마지막 알짜배기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국전력공사 본사 사옥.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국전력공사 본사 사옥.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한전 본사 땅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서울 강남권에서 사실상 대규모 개발이 가능한 마지막 위치라는 점 때문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팀장은 “서초동의 롯데칠성 터와 서울 남부터미널 등 일부 강남권 땅이 남아있지만 땅의 크기나 글로벌 비즈니스 타운으로서의 상징성을 감안하면 삼성동 한전 터와 비교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삼성생명이 사들인 한국감정원(1만988m²) 사옥 터와 이전이 예정된 서울의료원(3만1000m²)의 땅과 연계 개발하면 12만1330m²에 이르는 대규모 용지가 생긴다. 삼성동 코엑스 터의 7.5배에 이르는 규모다.

부동산업계에서는 한전 본사 땅이 대략 3조 원을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생명이 삼성동의 한국감정원 터를 2328억 원에 사들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8배가량에 이르는 한전 땅은 단순 계산으로도 2조 원대로 추산된다. 하지만 삼성생명이 감정원 땅을 주변 시세(3.3m²당 1억∼1억5000만 원)보다 낮은 가격에 매입한 데다 입지 조건이 한전 땅이 훨씬 좋다는 점을 감안하면 3조 원 이상이 될 것이라는 게 부동산업계의 예상이다.

○ 땅 살 수 있는 대기업 많지 않아

정부 관계자들은 현재로선 한전이 직접 부동산 개발에 뛰어드는 것에 ‘반신반의’하고 있다. 현행 한국전력공사법에 따르면 한전은 부동산 개발을 할 수는 있지만 삼성동 본사 땅은 ‘공공기관지방이전에 따른 특별법’에 따라 매각해야 한다. 국토부의 공공기관지방이전 담당자는 “한전이 부채를 갚기 위해 부동산 개발사업이 필요하다면 지경부와 국토부 관계 법령을 모두 검토해봐야 한다”고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당초 계획대로 한전이 민간에 땅을 파는 것도 쉽지 않을 수 있다. 3조 안팎의 한전 땅을 살 수 있는 국내 대기업이 극히 한정돼 있고, 각종 규제를 풀어야 하는 사업에 국내외 펀드 자금이 들어오는 것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현재 일반 상업지구와 주거지구가 뒤섞인 한전 땅은 서울시가 용도 변경을 허용하지 않는 이상 아파트나 주상복합 건물을 건설해 수익을 내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울시 측은 “주변 건물들이 허용 용적률보다 훨씬 낮은 350% 안팎에서 지어진 데다 글로벌 업무지구라는 특성을 반영하지 않고 수익성 위주로 개발한다면 시 관점에서는 건축허가를 내주기 힘들다”고 밝혔다.

시민단체 출신의 박원순 신임 서울시장이 특정 기업이나 펀드의 수익을 위해 용도변경을 허용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 결국 극히 제한된 대기업만이 수익성이 낮더라도 신규 사옥을 짓기 위해 한전 땅을 사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내년 말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특정 기업이 강남의 마지막 알짜배기 땅을 사들이면 정부에 대한 비난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며 “결국 매각 시기를 연기하거나 공공기관이 사들이는 방식으로 변경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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