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동빈 기자의 자동차이야기]못생겨서 죄송합니다… 시장서 쫓겨났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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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지난 3개월간 운전하면서 깜짝 놀랄 자동차들을 많이 봤다. 슈퍼카 같은 멋진 자동차가 아니라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못생긴 모델들이다. 자동차를 오랫동안 담당해온 기자로서는 처음엔 웃음이 나오다가 나중엔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저렇게 성의 없이 차를 내놨는지 화가 날 정도였다. 문제의 모델들은 모두 미국 내수용이거나 한국에 수출되지 않아서 디자인이 낯선 것도 많아서 일부러 가까이 가서 모델명과 브랜드를 확인하곤 했다.

그러던 중 어느 순간 공통점이 발견됐다. 대부분 2000년대 들어서 사라진 브랜드의 모델이라는 것이다. GM의 올즈모빌과 폰티액 새턴, 포드의 머큐리, 크라이슬러의 플리머스 브랜드가 그 주인공이다. 폰티액 ‘아즈텍(Aztek)’은 한국엔 수입이 되지 않았지만 여러 자동차전문지에서 ‘못생긴 차 1위’에 선정돼 국내 자동차 마니아들에게도 유명하다. 올즈모빌 ‘알레로(Alero)’의 놀란 토끼눈 같은 우스꽝스러운 뒷모습과 2002년 나온 새턴 ‘뷰(Vue)’ 1세대 모델의 만화 캐릭터 같은 장난스러운 앞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올즈모빌의 경우 1897년 설립돼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자동차 브랜드로 한때 미국 내 판매 1위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자동차 조립라인(컨베이어 방식은 아님)과 자동변속기를 처음 도입한 뼈대 있는 회사이기도 했지만 알레로 같은 졸작을 계속 내놓으면서 2004년 107년간의 생을 마감했다.

문을 닫은 미국 5개 브랜드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본차의 강세 속에 경쟁력 저하와 브랜드 전략 실패, 한솥밥을 먹는 다른 브랜드와의 간섭효과 등을 이유로 꼽았다. 대부분 맞는 분석이겠지만 저런 추한 디자인을 직접 보면서 떠오른 생각은 근본적으로 사람과 조직이 썩었다는 것이다.

어떤 자동차 브랜드가 소비자들의 눈과 동떨어진 디자인을 반복적으로 내놓는 배경엔 발전적인 비판과 견제 기능이 떨어지는 조직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자동차 디자이너가 처음부터 저런 모습을 만들지는 않았겠지만 다단계 의사결정 과정에서 원가절감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디자인이 변질되고, 최고경영자가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데도 임원들은 뻔히 실패할 모델일 것을 알면서도 입을 닫아버린 것이다. 이런 경쟁력 없는 조직은 무한경쟁 시장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원인은 시장구조와 소비자에게도 있다. 우직하게 자국(自國) 브랜드 자동차를 사주는 애국적 소비자가 많은 방대한 미국 내수시장은 미국 자동차 브랜드들이 ‘어떻게 만들어도 팔린다’는 자만심을 갖게했고 결국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 측면도 있다. 아직도 미국 브랜드의 일부 대형 딜러는 초대형 성조기를 걸어놓고 은근히 애국심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반대로 디자인이 뛰어난 자동차 모델 중 판매에 실패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는 사실은 디자인이 단지 겉포장이 아니라 그것을 만든 조직의 건전성은 물론 연구개발력과 기계적 완성도 등을 함축적으로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자동차 산업의 파급력을 감안할 때 못생긴 자동차를 내놓는 일은 국가경제를 좀먹고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범죄나 다름없다.

―미국 노스헤이븐에서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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