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리먼 때도 방심하다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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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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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더멘털 괜찮다지만 환율-주가 금융지표 악화…리먼 사태 당시와 비슷

3년 전에 겪었던 ‘리먼브러더스’ 사태의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금융시장 지표만 놓고 보면 한국 경제는 이미 위기 국면에 들어섰다. 최근 한 달 새 원-달러 환율은 100원 넘게 올랐고 코스피는 하루 만에 100포인트 넘게 폭락했다. “3년 전보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여건)이 튼튼하다”는 정부 발표는 “10년 전 외환위기 때보다 우리 경제 체질이 강화됐다”고 자신만만해하던 당시와 다를 게 없다.

한국 경제는 정말 ‘제2의 리먼 사태’에 빠져드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펀더멘털이 3년 전보다 건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방심하면 한순간에 휘청거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아무리 외환보유액을 많이 쌓아놓고 수출이 잘된다고 해도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대외 변수들이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세계 금융시장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상에서 조타수 역할을 하는 정부가 오판을 하면 한국 경제는 ‘아차’ 하는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소규모 개방경제의 한계다.

○ ‘ATM 코리아’ 현상 재연

우리나라의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한국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23일 2.02%까지 올랐다. 9월 초와 비교해 0.73%포인트나 높아졌다. 프랑스 최대 은행인 BNP파리바가 뱅크런(대량 인출) 사태를 겪은 프랑스(1.97%)보다 0.05%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리먼 사태를 겪었던 3년 전 9월에도 그랬다. 2008년 9월 1일 1.27%였던 CDS 프리미엄은 9월 말 1.80%까지 높아졌다. ‘9월 위기설’이 겨우 진화되나 싶었지만 10월 27일 CDS 프리미엄이 6.99%까지 치솟으며 위기는 정점에 달했다. 사흘 뒤인 10월 30일 체결된 한미 통화스와프가 ‘구세주’였다.

원-달러 환율은 2008년 9월에 1115.5원에서 1206.9원으로 91.4원 상승했는데 올 9월에는 1061.3원에서 1166원으로 104.7원 올라 상승세가 오히려 커졌다. 올 들어 환율 상승폭이 가장 컸던 때가 1월에 13.3원이었던 걸 감안하면 ‘폭등’ 수준이다. 2008년 9월 3조8919억 원어치의 주식을 팔고 나간 외국인은 이달 들어 2조2833억 원 순매도를 기록했다. 외부 충격에 외국인이 제멋대로 들락날락하며 자금을 가장 먼저 빼가는 ‘ATM 코리아’ 현상이 이번에도 재연됐다.

○ 경제 펀더멘털은 아직 ‘양호’

25일 기획재정부는 ‘한국 경제,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제목의 홍보 브로슈어를 내놨다. “TV를 봐도, 신문을 봐도 한숨이 나오고 걱정이 앞서시나요? 한국 경제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진실,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표지부터 거창한 홍보책자 첫 페이지에는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3122억 달러(8월 기준), 단기외채는 1497억 달러(6월 기준)에 이른다. 외환시장이 위기에 들어서던 2008년 9월과 비교하면 외환보유액은 580억 달러 많고 단기외채는 399억 달러 적다. 전체 외채에서 단기외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51.9%(2008년 9월)에서 37.6%(2011년 6월)로 크게 감소했다.

박재완 재정부 장관은 24일 미국 워싱턴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 참석 후 기자간담회에서 “무디스 등 해외 신용평가회사들로부터 한국의 모든 상황이 개선되고 있으며 펀더멘털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 튼튼하다는 총평을 받았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재정 상황이 건전하다. 지난해 기준 국가채무는 392조2000억 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33.4%에 불과하다. 국가부도 직전에 몰린 그리스의 국가채무 비율(147.8%)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정부는 ―1.1%(지난해 기준)인 관리대상수지를 2013년까지 0%로 만들어 균형재정을 달성하겠다고 공언했다. 경제성장률은 당초 전망보다 떨어진다고 해도 지난해 대비 4% 안팎의 성장세를 거둘 것으로 보이고 통계상 경기확장 국면도 31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 “위기는 일단 시작되면 순식간”

하지만 정부의 말만 믿기에는 어딘가 불안하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2008년 리먼 사태 때도 정부는 늘 “안심하라”고 했지만 ‘한국호(號)’는 번번이 외풍에 흔들렸다. 정부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위기는 일단 시작하면 이성을 무시한 채 순식간에 닥친다. 위기 앞에 외환보유액 같은 지표는 한낱 숫자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2008년 리먼 사태 때가 대표적이다. 외환보유액이 2500억 달러를 넘었지만 출렁이는 외환시장 앞에서 정부는 무기력 그 자체였다. 한국은행이 매월 집계해 발표하는 외환보유액은 일단 줄어들기 시작하면 그 자체가 불안하다는 신호탄이기 때문에 섣불리 곳간을 헐기가 부담스럽다.

정부가 내세우는 각종 실물지표는 후행 지표에 불과하다. 광공업생산지수는 금융위기가 일단락된 2009년 1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15.7%로 바닥을 찍었고 실업률은 2010년 1분기(4.7%)가 최악이었다. 정부가 좋다는 펀더멘털은 결국 6개월 전, 1년 전 우리 경제 상황의 거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수석연구원은 “지금의 대외적 불안은 단기간에 해결될 이슈가 아니기 때문에 금융시장 불안은 등락을 반복하면서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경제학)는 “세계와 비교해 우리나라 펀더멘털이 낫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정부가 외화 부문 안정대책을 선제적으로 추진해 외환시장을 튼튼히 한다면 다른 나라보다 심각한 위기를 겪을 가능성은 많지 않다”고 진단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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