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미국발 신용등급 악재로 금융시장 ‘패닉’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22일 11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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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탈리아의 국가 신용등급을 낮춘 국제신용평가사들이 두 나라의 주요 은행 등급마저 강등하자 국내 금융시장 불안이 심화됐다.

22일 원·달러 환율은 나흘 연속 급등세를 보였고, 코스피지수는 장중 한때 1,800선이 붕괴했다.

채권 금리는 환율 급등으로 장 초반 상승하다가 저가매수 양상이 나타나면서 국고채 장기물 위주로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당국의 시장 안정책이 약효를 보이지 않고 있어 미국과 유럽 문제가 단기간에 진정되기 어려운 만큼 채권 값 강세와 원화 값 약세 추세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환율 나흘째 급등세= 2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29.9원 오른 1,179.8원에 장을 마감하면서 지난해 9월 2일(1,180.5원) 이후 1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날 환율 급등은 신용평가사들의 미국과 이탈리아 은행 신용등급 강등과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결과에 대한 시장의 실망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달 초 미국 신용등급을 강등했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이탈리아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한 지 이틀만인 21일(현지시각) 국가 부채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현지 은행 7곳의 신용 등급도 하향조정했다.

이달 중순 프랑스와 이탈리아 은행의 등급을 낮췄던 무디스도 21일 자산 기준으로 미국 최대 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씨티그룹, 웰스파고 등 미국 3개 대형 은행의 신용등급을 하향했다.

FOMC는 중앙은행이 장기 국채를 매입하고 단기 국채를 매도해 장기 금리를 낮추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 카드를 내놨지만, 침체일로에 있는 미 경제를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구나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전 세계 금융시장 불안 등 경제전망에 상당한 하방 리스크가 있다"고 진단하면서 금융시장의 두려움만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국 정부가 발행하는 외화 채권에 대한 5년 만기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21일 뉴욕시장 종가기준 전날보다 14bp 폭등한 173bp(1bp=0.01%)로 2009년 7월17일 178bp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 현재 싱가포르 시장에서 187bp를 기록했다.

CDS는 채권을 발행한 기업이나 국가 등이 부도났을 때 손실을 보상해주는 금융파생상품이다. CDS 프리미엄이 높아졌다는 것은 국가 신용도가 나빠져 국외채권을 발행할 때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을 뜻한다.

●코스피 한때 1,800선 붕괴=국내 주식시장도 큰 폭으로 내렸다.

FRB가 세계경제 전망에 대한 경고음을 울린데다 미국과 이탈리아 은행 10곳의 신용등급이 강등되면서 투자심리가 위축됐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코스피는 53.73포인트(2.90%) 하락한 1,800.55에 장을 마감했다. 하루 낙폭으로는 지난 14일(63.77포인트) 이후 가장 크다.

지수는 1,807.24로 개장해 오전 장중 1,800선을 내주더니 전날 종가보다 3.70%나 떨어진 1,785.69까지 밀려나기도 했다.

전날 매수 우위를 보인 외국인은 이날 3천45억원 어치를 순매도하며 지수 급락을 주도했다.

개인과 기관이 각각 7618억원, 411억원 어치를 순매수했지만, 지수 급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코스닥 지수는 전날보다 6.10P(1.28%) 내린 471.41로 장을 마감했다.

아시아 주요 주가지수도 일제히 급락했다.

일본 닛케이평균주가지수는 2.07% 하락한 8,560.26에, 대만 가권지수는 3.06% 떨어진 7,305.50에 각각 장을 마감했다. 인도네시아지수는 한국시각으로 오후 4시27분 현재 7.53% 폭락했다.

●국고채 금리 하락 반전=채권 금리는 환율 급등으로 장 초반 상승하다가 저가매수 양상이 나타나면서 국고채 장기물 위주로 하락했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날보다 0.01%포인트 하락한 3.49%에, 5년물 금리는 전날보다 0.01%포인트 내린 3.62%에 각각 고시됐다.

10년물 금리는 전날보다 0.04%포인트 내린 3.82%, 20년물 금리는 0.04%포인트 떨어진 3.92%로 장을 마쳤다.

채권금리는 원·달러 환율이 급등한 데 따른 영향으로 장 초반 상승하다가 장기물을 위주로 저가매수가 유입되면서 하락 마감했다.

국채선물 12월물은 전날보다 3틱 오른 104.05에 마감했다. 외국인이 3395계약을, 보험사가 1천233계약을 순매도했다. 증권ㆍ선물회사는 1130계약, 은행은 1556계약을 각각 순매수했다.

한 시중은행 채권 딜러는 "장기물 금리가 계속 상승해 20년물 기준 4%에 가까워지자, 실수요기관인 보험사나 연기금이 매수에 나설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저가매수세가 유입됐다. 미국 FRB가 오퍼레이션 트위스트 조치를 시행해 장기금리가추가로 하락하면서 한국과 미국의 금리차가 2%포인트 넘게 커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전문가, 원화·주가 약세 전망=금융시장 전문가들은 악재가 쌓여 있는 만큼 원화 가치와 주가는 당분간 약세를 나타낼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그리스 디폴트(채무 불이행)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며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다. 포르투갈의 추가 구제금융설, 프랑스 은행의 유동성 부족 우려 등도 어우러지며 안전자산인 달러 선호도를 한껏 높이고 있다.

더구나 자금 확충이 필요한 유럽계 금융기관들이 지난달부터 국내 채권시장에서 대규모로 채권을 팔아치우고 있어 원화 약세의 또 다른 원인이 되고 있다.

우리선물 변지영 연구원은 "원화 약세가 가속화되면 외국인들이 원화 채권 매도를 확대할 가능성은 더 커진다"며 "환율이 1,200원대까지 오를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대외적 불안으로 인한 외국인 자금 이탈, 투자자들의 달러 매수 등으로 환율은 당분간 불안한 모습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며 "이번 주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국제 공조가 이뤄진다면 반대 흐름을 만들 수도 있지만, 대외적 불안이 단기 내 해결될 이슈는 아니어서 환율 불안은 고조와 진정을 반복하면서 전개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증시 역시 단기 약세 전망이 우세한 편이다.

곽중보 삼성증권 연구원은 "당분간 코스피는 1,700선 중반~1,900선의 박스권에서 움직일 것"이라면서 "G20 재무장관회의와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그룹(WBG) 합동 연차총회가 남아있지만 투자자를 안심시킬 구체적인 정책 공조가 나올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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