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40조… 에너지 공기업들 요금인상 억제 3년째 적자 눈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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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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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세금으로 메울 판… 자식세대로 부담 전가

한전을 비롯한 에너지 공기업들의 부채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물가 안정을 위해 원가 이하로 가격을 유지한 데다, 해외자원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기 때문이다. 현 정부가 집권 초기에 검토했던 ‘공기업 민영화’ 카드는 서랍 깊은 곳으로 들어간 지 오래다. 전문가들은 “싼 에너지 가격이 정치인과 국민에게 당장은 달콤할지 모르지만 머지않아 막대한 부채와 국민의 세금 부담이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지적한다.

○ 팔면 팔수록 적자

대표적인 에너지 공기업인 한전은 2분기(4∼6월)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6% 늘어난 약 9조1161억 원어치의 전기를 판매했다. 하지만 영업손실은 81.1% 늘어난 8035억 원에 달했다. 팔면 팔수록 적자가 늘어나는 취약한 사업구조다. 상장기업인 한국가스공사 역시 2분기 매출액은 5조8067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7%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1302억 원으로 14.2% 줄었다. 가스공사 측은 “원료비 상승을 2개월마다 요금에 자동적으로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비상시에 정부가 이를 유보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요금 인상을 미뤄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나라당 정태근 의원실의 자료에 따르면 한전뿐 아니라 지식경제부 산하의 에너지 공기업 12곳의 부채는 2007년 57조 원에서 2010년 97조 원으로 3년간 약 40조 원이 늘었다. 해외자원 개발에 앞장서고 있는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광물자원공사의 부채도 3년간 200% 이상 증가했다. 소액주주들로부터 2조8000억 원의 집단소송을 당한 뒤 사직서를 제출한 김쌍수 한전 사장은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말에 부채비율이 150%까지 갈 수 있다. 이로 인해 신용등급이 한 단계만 낮아지면 연간 이자비용만 1000억 원이 늘어난다”고 말했다. 6월 말 현재 한전의 부채비율은 137.5%다.

○ 세대 간 ‘폭탄 돌리기’가 된 부채

에너지 공기업들의 부채가 급증한 가장 큰 원인은 원료 가격의 상승분을 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가 안정을 이유로 전기요금 인상을 미뤄왔던 정부는 이달부터 전기요금을 평균 4.9% 올렸지만 여전히 원가의 90.3%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지난달부터 도입하기로 했던 전기요금 원료비 연동제도 시행이 유보됐다. 문제는 에너지 공기업들의 부채가 결국은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상황까지 갈 수 있다는 점이다. 공기업이 파산위기에 몰리면 결국은 정부가 지원에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경제학)는 “최근 그리스 등에서 발생하는 글로벌 재정위기에서 볼 수 있듯이 매년 조 단위로 늘어가는 부채는 현 세대는 아니더라도 결국 다음 세대가 부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력과 가스 등의 가격이 낮다 보니 민간 기업들이 신재생에너지 등 다른 에너지원을 활용할 동기도 크지 않다. 낮은 전기 및 가스 요금은 탄소에너지를 줄이자는 녹색성장 정책과도 모순되는 부분이다.

○ 장기 전망도 불투명

석유공사와 광물자원공사가 해외자원 개발에 투자를 늘리면서 부채가 크게 늘어난 것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자원 개발은 장기적인 시각으로 봐야 하는 만큼 좀 더 시간을 갖고 결과를 기다려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정부가 해외자원 개발을 정치적 홍보 수단으로 밀어붙이고 있어, 관련 공기업들이 경제적 효율성을 따지지 않고 투자에 나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공기업들의 장기 전망도 밝지 않다고 보고 있다. 시장의 효율성을 강조했던 현 정부가 ‘전기요금이 오를 수 있다’는 여론에 밀려 한전 등의 민영화를 포기했듯이 차기 정부도 민영화는 물론이고 전기요금 현실화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구자윤 한양대 교수(전기공학)는 “한전은 이미 부실경영의 위기가 임계점을 지났다”며 “정치인들이 표를 의식해 에너지 가격 정책을 결정한다면 LH공사와 같은 막대한 부채를 짊어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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