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잡스 퇴장]IT업계 “디지털시대의 미켈란젤로가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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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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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과’ 하나로 세상을 놀라게 한 ‘Mr. 애플’ 잡스

건강은 좋아지지 않았다. 올해 1월부터 시작된 이번 병가가 벌써 세 번째였다. 스티브 잡스의 애플 최고경영자(CEO)직 사임은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다.

하지만 세계 정보기술(IT) 업계는 24일(현지 시간) 발표된 그의 사임 소식에 모두 놀랐다. 언젠가, 그것도 가까운 시기에 올 ‘그날’이었지만 모두가 “오늘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애플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구글의 에릭 슈밋 회장조차 “스티브 잡스는 예술가의 감동과 기술자의 비전을 독창적으로 결합한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라며 잡스의 사임을 아쉬워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업체 세일즈포스닷컴의 마크 베니오프 CEO도 “잡스는 우리 산업이 여태까지 경험했던 모든 리더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이었다”며 “그의 사임은 한 시대의 종언”이라고 말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링크트인의 제프 웨이너 CEO도 “잡스는 디지털 시대의 미켈란젤로”라며 “내가 사업에 대해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은 그가 무대에서 들려준 이야기로부터 나왔다”고 회고했다.

○ 실수투성이 인간 vs 히어로

1985년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젊은 컴퓨터 엔지니어 버렐 스미스를 쫓아냈다. 애플이 개발하던 ‘매킨토시’ 컴퓨터팀의 매우 유능한 직원 가운데 한 명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잡스를 농담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스미스는 이후 조울증을 얻었다.

잡스는 실수투성이 인간이었다. 툭하면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멍청이”라고 불렀다. 일주일에 100시간 이상 일하지 않는 직원은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쏘아붙였다.

경영자로서도 훌륭하지 못했다. 그가 애플에서 쫓겨난 건 매킨토시 사업의 실패 탓이다. 새로 창업한 넥스트도 10년 만에 빈사 상태에 몰렸다. 1996년 애플이 인수하지 않았으면 문을 닫을 지경이었다. 그러면서도 포르셰가 아니면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또 그는 모략가였다. 애플에 넥스트를 팔고 난 뒤에 겉으로는 “애플의 경영에는 관심이 없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애플에 넥스트 사람들을 심었다. 그리고 이사회 멤버들을 포섭한 뒤 결국 CEO 자리를 차지했다. 그는 ‘악덕 기업가’의 표상이어야 했다.

경영학자들에게 그가 좋은 경영자냐고 물으면 아니라는 이유를 수십 가지 나열한다.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잡스가 좋은 사람이냐고 물으면 괴팍한 성격을 수백 가지 대곤 한다. 하지만 누구도 “당신도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고개를 끄덕이긴 힘들다.

2009년 두 번째 병가를 내고 떠났던 잡스가 간이식 수술을 받고 돌아와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센터의 익숙한 무대에 다시 섰다. 애플은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자사 홈페이지에 올렸다. 이렇게 올라온 사진의 파일명은 ‘hero20090909.jpg’였다. 누구도 홈페이지에 올리는 사진의 파일명 따위에 신경 쓰지 않았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애플의 직원이 파일이름을 이렇게 달았다. 잡스는 그들에게 영웅(hero)이었다. 그는 각종 조사에서 ‘직원들이 가장 존경하는 CEO’로 꼽힌다.

1985년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날 때까지 많은 직원이 기꺼이 1주일에 100시간 넘게 일하면서 사무실에 감금되는 생활을 지속했다. 그 가운데에는 게임업체 EA의 창업자가 되는 트립 호킨스도 있었다. 호킨스는 “스티브는 종종 ‘우주에 영향을 미칠 만큼 아주 중요한 컴퓨터를 만들겠다’고 말했다”며 “터무니없는 생각이었지만 인생을 즐기지 못하고 연구실에 틀어박혀 일만 하는 엔지니어들은 그런 말에 용기를 얻고 단결했다”고 말했다.

○ 과정이 바로 보상

잡스가 만들고자 하는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는 취향과 문화였다. 그가 애플에서 쫓겨나 넥스트를 운영하던 시절 PBS와 가졌던 인터뷰는 이런 모습을 잘 보여준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이 만들어낸 것을 따라했다고 뭐라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에는 ‘취향’이 없어요. 그들은 소프트웨어에 문화를 불어넣는 법을 모릅니다. 제가 슬픈 건 마이크로소프트의 엄청난 성공이 아닙니다. 진짜 슬픈 건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들어내 성공을 거둔 모든 제품이 ‘삼류’라는 겁니다.”

그는 최고를 만들고 싶었고, 최고를 완벽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건 대량생산되는 제품을 찍어내는 회사의 경영자의 모습보다는 완벽한 음악을 만들려는 작곡가 또는 걸작을 그리고자 캔버스 앞에서 고민하는 화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계속 실패를 반복했다.

1997년 모든 게 달라지는 기회가 왔다. 그는 시장의 애널리스트들이 “6개월 이내에 파산할 것”이라고 악담을 퍼붓던 애플에 복귀했다. 잡스가 없던 12년, 애플은 비대한 관료조직으로 변해 있었다. 애플에는 1주일에 100시간 이상 일하는 열정도, 직원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지도자의 비전도 없었다. 당시 잡스는 애플에 대해 “들판에 아무렇게나 놓인 포르셰 자동차 같았다. 이 차는 진흙으로 뒤덮여 정말 더러워 보였다”고 말했다.

그가 지난 14년간 했던 일은 일종의 세차였다. 진흙으로 가려져 있던 수많은 사람이 빛을 봤다. 애플에서 일하고 싶다며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왔다가 환멸을 느끼고 막 회사를 떠날 생각이었던 조너선 아이브가 제일 먼저 잡스의 눈에 띄었다. 잡스는 그에게 디자인팀을 통째로 맡겼다. 그러면서 잡스가 한 말은 하나였다. “아직 애플에도 지능지수(IQ)가 세 자리인 사람이 남아 있구먼.” 오늘날 애플의 제품은 디자인으로 가장 유명하다.

잡스가 CEO로 지명한 인물인 팀 쿡도 마찬가지다. 그는 세계 최대의 PC업체인 컴팩이 가장 잘나가던 1998년 컴팩의 부사장이었다. 그는 미래를 알 수 없던 애플을 택한 데 대해 “직관이 이끄는 결정을 따랐다”고 말했다. “남의 삶을 살지 말고 여러분의 심장과 직관이 이끄는 삶을 살라”는 잡스의 말과 똑같았다.

애플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이 바로 잡스 그 자신이었다. 잡스는 애플을 잘 운영한 게 아니었다. 회사를 잡스 자신의 모습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이후 우리가 기억하는 그의 모습은 죽음과 싸우는 모습이었다. 2004년 췌장암이 발병했다. 병가, 그리고 복귀. 하지만 2009년 그는 두 번째 병가를 낸다. 간이식 수술, 그리고 두 번째 복귀. 올해 초 세 번째 병가가 이어졌다. 이번에는 결국 CEO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동안 그는 아이팟을 세계 1위의 MP3플레이어로 만들어 놓았고, 아이폰을 만들었으며, 아이패드를 발표했다. 심지어 병가로 쉴 때도 회사에 나왔다.

구글의 빅 군도트라 수석부사장은 이날 “2008년의 일요일 아침, 잡스가 내게 전화를 걸었다”며 그와의 일화를 소개했다.

“잡스가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집으로 전화해 달라고 했다. 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아이폰에 들어가는 구글 앱의 ‘Google’ 로고 가운데 두 번째 ‘o’자의 노란색 그림자 색상이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일 당장 구글로 사람을 보낼 테니 로고 두 번째 글자의 노란 색상을 바로잡아 달라고 했다. CEO는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고 그때 배웠다. 일요일에 노란 글자의 그림자까지 고민하는.”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직무 수행할 수 없는 불행한 그날이 왔다”… 잡스, 애플에 편지▼

‘나는 만일 애플의 최고경영자(CEO)로서 더는 직무를 수행할 수 없고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는 날이 오면 여러분에게 가장 먼저 알리겠다고 항상 말해왔습니다. 불행하게도 바로 그날이 왔습니다.

나는 애플의 CEO직을 사임합니다. 이후 이사진의 동의하에 이사회 의장과 임원, 애플의 직원으로서 일하길 희망합니다.

후임자와 관련해선 우리가 준비한 승계 계획을 실행해 팀 쿡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애플의 새로운 CEO로 임명할 것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나는 애플의 앞날이 매우 혁신적이고 밝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새로운 자리에서 애플의 성공을 지켜보고 이에 공헌하길 기대합니다.

그동안 애플에서 내 인생의 가장 좋은 친구들을 만들었습니다. 오랜 세월 나와 함께 일해 준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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