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한우 결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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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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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수산물 ‘흉년’영향 선물세트 ‘한우’로 승부

9일 경북 울릉군 부여농장에서 칡소 송아지들이 각종 약초로 만든 사료를 먹고 있다(위쪽). 추석을 맞아 백화점 업체들이 프리미엄 한우 선물세트를 내놓고 있는 가운데 롯데백화점은 울릉도 칡소를,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은 각각 ‘제주 흑한우’(아래쪽)와 ‘청보리 목장 한우’(가운데)를 대표 상품으로 내걸었다. 울릉도=김미옥 기자 salt@donga.com·각 업체 제공
9일 경북 울릉군 부여농장에서 칡소 송아지들이 각종 약초로 만든 사료를 먹고 있다(위쪽). 추석을 맞아 백화점 업체들이 프리미엄 한우 선물세트를 내놓고 있는 가운데 롯데백화점은 울릉도 칡소를,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은 각각 ‘제주 흑한우’(아래쪽)와 ‘청보리 목장 한우’(가운데)를 대표 상품으로 내걸었다. 울릉도=김미옥 기자 salt@donga.com·각 업체 제공
“칡, 산딸기 줄기, 두릅, 쑥…. 좋은 건 다 먹이지요. 울릉도에서 나는 온갖 약초를 사료에 넣으니 보약 먹고 자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9일 경북 울릉군 서면 남양리 베냐민목장에서 만난 장지인 씨(68)는 칡넝쿨 같은 줄무늬가 있는 칡소 32마리에게 먹이를 주느라 분주했다. 칡소는 정지용의 시 ‘향수(鄕愁)’에 나오는 ‘얼룩백이(얼룩빼기)’ 황소다. 칡소들은 먹이를 다 먹은 뒤 6개 구역으로 나뉜 230m²(약 70평) 규모의 외양간 지붕 틈으로 내려온 칡넝쿨까지 뜯었다. 갓 태어난 송아지는 어미 소 곁을 졸졸 따랐다. 장 씨는 “칡소는 흑모(黑毛) 계열의 소인데 입에서 잘 녹고 고소한 풍미를 주는 불포화지방산 함량이 보통 소에 비해 높다”며 “일본 와규(和牛)가 이런 흑모 계열 소”라고 설명했다.

○ 흔해진 한우… 프리미엄으로 차별화

탁월한 맛 덕분에 칡소는 지난해부터 롯데백화점에서 프리미엄 선물세트로 팔리고 있다. 값은 일반 한우 선물세트보다 20∼50% 비싸지만 지난해 추석에는 준비했던 100세트가 2주 만에 모두 팔렸다. 물량을 늘린 올해 설에는 200세트가 팔렸고, 이번 추석에는 400세트를 준비했다.

롯데백화점이 이번 추석에 ‘울릉 칡소 선물세트’를 지난해에 비해 4배로 늘린 이유는 최근 한우 값이 떨어지면서 일반 한우 선물세트가 ‘흔한 선물’이 됐다는 판단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 과일은 덜 익었고, 수산물도 어획량이 크게 줄어 신선식품 중에는 축산물을 빼고는 추석 선물이 마땅찮다.

실제로 이마트가 9일부터 22일까지 진행한 추석 선물세트 예약 판매 실적을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값이 싸진 한우갈비 선물세트의 하루 평균 매출이 지난해 예약 판매 기간보다 5배 이상 늘기도 했다.

○ 백화점 명품 한우 대전

백화점 업체들은 일반 한우보다 품질이 좋은 프리미엄 명품 한우 선물세트를 내놓으며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롯데백화점이 울릉도에서 칡소를 찾았다면 현대백화점은 제주도에서 기회를 발견했다. 현대백화점은 올해 추석을 앞두고 ‘제주 흑한우’ 420세트를 선물용으로 선보였다. 이 백화점은 2008년 제주 서귀포 축협과 ‘제주 흑우 명품화를 위한 상호 협력 양해각서’를 맺고 제주 흑한우 증식 및 명품 브랜드화를 지원해 왔다. 제주 흑한우는 고려시대 삼명일(三明日·임금의 생일, 설, 동지)에 정규 진상품으로 임금에게 올렸던 우리 전통 소로 멸종 위기에 몰렸다가 현재 제주도에서 600여 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전남 영광의 초지에서 자란 ‘영광 청보리 한우’로 승부수를 띄웠다. 이 한우는 2009년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환경친화 축산농장’ 1호로 지정된 ‘청보리 목장’에서 키운다. 깨끗한 환경에서 방목해 키우는 데다 청보리를 사료로 먹여 뛰어난 품질을 자랑한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올해 청보리 한우 추석 선물세트를 200개 이상 준비해 26일부터 매장에 내놓을 것”이라며 “물량을 지난해보다 두 배 정도 늘려 프리미엄 한우 라인업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 물량 늘어나 농가 수익도 쑥

백화점에서 프리미엄 한우 주문이 늘면서 낙농가들도 풍성한 추석을 기대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에 한우를 공급하는 ‘청보리 목장’은 목장을 아예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계획까지 세웠다.

롯데백화점에 납품하는 울릉도 25개 칡소 낙농가도 마찬가지다. 일반 한우는 28∼30개월이면 다 크지만 칡소는 32∼36개월을 키워야 잡을 수 있다. 2008년부터 사육을 시작해 이제야 본격적으로 도축할 수 있는 시기가 왔다. 특히 울릉도에선 최근 오징어 어획량이 눈에 띄게 줄고 있어 칡소에 거는 기대가 더 크다.

울릉도 부여농장의 김득겸 씨(62)는 “칡소는 700kg 기준으로 마리당 1100만 원 정도를 받을 수 있어 일반 한우보다 2배 이상 비싸다”며 “지난해에는 소들이 덜 자라 3마리만 팔았는데 올해 말부터는 매년 7, 8마리를 도축할 수 있고, 판로도 확보돼 있어 안정적인 수입을 올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울릉도=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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