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IT혁명]<상>파괴자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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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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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벤처, 거인 무너뜨리고 新경제 만든다

《 세계 첫 휴대전화를 만든 모토로라가 창업 13년차의 어린 기업인 구글에 인수됐다. 세계 1위의 PC 제조업체이자 ‘실리콘밸리의 신화’였던 HP가 PC 사업을 분사하고 스마트폰 사업도 접었다. 애플 때문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전문가들은 “한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구글과 애플 등 몇몇 기업이 기존 산업을 뒤흔들면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기업들의 뿌리가 흔들린다. 그리고 고목(古木)을 양분 삼아 새로운 기업이 탄생한다. 논리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표현이던 ‘대량 맞춤 생산’ 시대도 가능해졌다. 이런 급격한 변화는 개인의 삶도 바꿔놓는다. 이 시대는 날마다 공부하고 변화를 따라잡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고 말한다. ‘제2차 IT 혁명’이 몰고 올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
진실은 통계가 말해준다.

2위 애플, 7위 마이크로소프트(MS), 10위 IBM. ‘톱10’에 정보기술(IT) 업체가 세 개나 포함됐다. 10년 전 톱10에는 시스코와 MS, 보다폰, 인텔이 있었지만 IT 버블이 붕괴되면서 시스코와 보다폰, 인텔은 리스트에서 탈락했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분기별로 집계하는 시가총액 기준 세계 500대 기업 순위 이야기다. 올해 2위인 애플은 10년 전 세계 500대 기업 순위에도 들지 못했다.

IT 업종만 따로 놓고 보면 변화의 의미가 더 분명하게 다가온다. FT는 애플을 하드웨어 기업으로 분류하지만 사실 애플은 소프트웨어도 직접 만든다. 특히 운영체제(OS)와 전자출판, 영상편집 등의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소프트웨어 세계 1위 MS는 IT 업계 순위에서 2위에 올라있다. 컴퓨터 사업을 정리하고 소프트웨어에 집중한 IBM이 10년 만에 3위로 올라섰다. 10년 전만 해도 증시에 상장도 돼 있지 않던 ‘어린’ 기업 구글이 8위로 올라섰다. 소프트웨어를 잡는 기업이 IT 산업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 파괴를 부르는 어린 기업

이런 모습은 국내 IT 산업에서도 그대로 관측된다. 10년 전인 2001년 8월 10일 종가 기준으로 유가증권과 코스닥 시장 상장기업 시가총액 순위 10위 안에는 4개의 IT 기업이 포함돼 있었다. 삼성전자(1위)와 SK텔레콤(2위), 한국통신공사(현 KT·3위), KTF(7위)였다. 그러더니 5년이 지난 2006년에는 KT와 KTF가 톱10에서 탈락하고 하이닉스(7위)와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10위)가 새로 순위권에 등장했다. 10년 전 정부 주도의 초고속인터넷 사업으로 통신업종이 성장하다 5년 만에 반도체와 액정표시장치(LCD) 중심의 하드웨어 산업으로 한국 IT 산업이 변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2011년 현재 10위권을 지키는 기업은 삼성전자뿐이다.

올해 순위에선 인터넷과 게임 업체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포털사이트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은 시가총액(약 8조9000억 원)에서 국내 2위 전자업체인 LG전자를 1조 원 이상 앞섰다. 게임 업체인 엔씨소프트는 LG전자를 3000억 원 차이로 턱밑까지 추격 중이다. 1990년대 말 새롭게 탄생한 소프트웨어 중심의 벤처기업이 어느새 성장해 세계 굴지의 전자업체 수준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셈이다.

지난주 미국에서 있었던 두 가지 발표가 이런 변화를 분명하게 상징한다. 창업 13년차인 구글이 세계 최초로 휴대전화를 만든 83년 된 모토로라의 휴대전화 사업부를 인수했고, ‘실리콘밸리의 상징’이라던 세계 최대의 PC 제조업체 HP가 PC 사업부문을 포기했다.

구글이 하드웨어 기업을 위협하는 존재로 떠오르자 바다 건너의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의 주가가 일제히 급락했다. HP가 PC 사업부문을 포기한 것도 구글과 같은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과 직접 경쟁하는 대신 기업 대상 IT 컨설팅 및 솔루션 판매에 집중하겠다는 뜻이었다.

특히 전통 기업이지만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혁신한 애플은 더 놀라운 모습을 보였다. 이 회사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처럼 이미 존재했지만 ‘틈새시장’으로 치부되던 시장에서 뛰어난 제품을 만들어 대중이 열광하는 대규모 시장으로 바꿔놓았다.

○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나

이런 새로운 변화는 IT 산업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현대 산업 전반을 바꿔놓는 신호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IT가 산업 전반으로 퍼져 나가면서 확산되는 이른바 ‘IT 2차 혁명’이라는 것이다. ‘IT 1차 혁명’은 IT 그 자체에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냈던 10년 전의 닷컴 버블을 뜻하는 말이다. 당시의 1차 혁명을 바탕으로 구글과 야후, NHN 등 새로운 기업이 태어났다. 하지만 최근에는 IT를 잘 이해하는 기업들이 기존 산업 전반에서 혁신을 가져오면서 효율화를 극단적으로 이루고 있다.

신영증권의 이승우 애널리스트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IT 혁명은 자원의 효율화”라면서 “예를 들어 오늘날 지구상에는 약 15억 대의 PC가 있는데 사실 이 가운데 3분의 2는 꺼져 있는 상태지만 ‘클라우드 컴퓨팅’ 같은 기술을 이용하면 이런 비효율을 줄이게 된다”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구글과 아마존 같은 IT 업체가 최근 벌이는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이 보급될수록 기존의 반도체 업체는 3분의 2가량의 시장을 잃게 된다는 뜻이 된다. 지금까지 자본주의 경제는 일정 부분의 거품과 과잉공급을 통해 경제성장을 반복해 왔지만 IT의 발전을 통해 이런 성장 모델이 사라지게 된 셈이다. 이 애널리스트는 “하드웨어 업체는 앞으로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가 최근 TV와 휴대전화 등 완제품을 만드는 ‘세트 부문’과 반도체와 LCD 등을 만드는 ‘부품 부문’을 나눌 것을 검토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요즘은 애플처럼 전례가 없는 새로운 시장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혁신적인 선도기업이 대부분의 부(富)를 독점한다. 애플 같은 기업이 될 수 없다면 이런 기업들에 필요한 것을 대규모로 아웃소싱해주는 기업이 되는 길이 그나마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장 하나 없는 애플을 대신해 아이폰을 조립해주는 대만의 폭스콘 같은 회사가 여기에 해당한다.

송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전자에 대해 차라리 폭스콘처럼 ‘규모의 경제’를 활용해 값싼 하드웨어를 만드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며 “삼성전자가 그런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발전하려 한다면 전례 없던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국내 기업이 이런 사실을 몰라서 위기에 처하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기업들도 이미 10여 년 전 스마트폰이 개발되던 초기부터 다양한 모델을 만들며 준비해 왔다. 소프트웨어의 중요성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미 가진 핵심사업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을 벌이는 것도 힘든데 전혀 다른 분야에 자원을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남용 전 LG전자 부회장은 “우리는 노키아와 삼성전자 등만 보고 열심히 앞으로 뛰고 있는데, 뒤를 돌아보니 애플은 앞이 아니라 옆으로 뛰고 있더라”라고 말했다. 방향이 달랐다는 것이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세계 1위 노키아는 절대 자만하지 않았다”며 “잘하던 것을 더 열심히 했지만 시대가 갑자기 변해서 원래 잘하던 게 걸림돌이 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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