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계高 어깨 펴주자]盧정부때 학력제한 철폐 이후 공공기관 고졸 채용 되레 뚝… 누리꾼들 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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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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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동떨어진 겉치레 정책이 고졸 울렸다”

‘공공기관의 전문계고 출신 채용률 1%’의 슬픈 현실은 취업 현장 실태를 반영하지 못한 어리숙한 행정의 대표적인 정책 실패 사례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한 대학 연구모임이 도발적으로 제기한 ‘학력 차별 철폐’ 문제는 순식간에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며 실제 정책으로 구현됐지만 현실에선 엉뚱한 방향으로 튀면서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다. 학력 차별이 제도적으로는 없어졌지만 결과적으로 그나마 있던 소수의 고졸 일자리까지 빼앗는 상황이 발생했다. 정부는 “의도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정책효과가 나타났다”고 해명하지만 정책 실패의 부작용을 개선하려는 노력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 ‘평등해질 줄 알았건만…’

공공기관 채용과 관련해 학력 철폐 문제가 처음 제기된 것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12월. 당시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 등 여성학, 사회학 전공학자 5명으로 구성된 ‘차별연구회’라는 연구모임은 국가인권위원회에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학력 연령 채용기준은 차별행위로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진정서를 냈다.

이 진정서 한 장에 인권위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인권위는 2005년 6월 24개 국가기관과 43개 공기업에 대한 학력, 연령 차별 직권 조사에 나섰다. 인권위는 강도 높은 조사 끝에 학력 제한 철폐를 권고했고, 당시 기획예산처는 2007년 공공기관 인사지침을 ‘채용 과정에서 학력 제한을 없애는’ 방향으로 개정했다.

현 정부 들어서는 국무총리실이 지난해 7월 공공기관의 학력 차별 완화를 위한 학력 규제 개선 방안을 내놓았다. 총리실 관계자는 “전수조사 결과 아직 학력 제한을 두는 기관이 있어서 안을 내놨다”고 했지만 변변한 학력 차별 완화책을 못 찾다 보니 전 정부 정책에 숟가락을 얹은 셈이다.

현실에서는 학력 차별이 더욱 심해졌다. 채용공고에는 ‘학력을 묻지 않는다’고 명시했지만 실제로는 전문계고 출신과 석·박사 출신이 함께 경쟁하는 구조가 됐다. 학력 제한 철폐 이후 대졸 공채는 물론이고 고졸 공채 자리도 대졸 출신들이 차지했다. 과잉 학력으로 고졸 출신이 설 자리가 없어진 셈이다. 인권위 김은미 차별조사과장은 “애초 취지와 다르게 제도가 운영된 건 인정한다. 개선할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2003년 당시 진정서 제출을 주도했던 ‘차별연구회’ 멤버인 조순경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실태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인정하면서도 “학력 제한 철폐 때문에 역차별이 생겼다는 것은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공공기관 채용공고를 보면 개선이 많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추가 인터뷰 요청에 조 교수는 “차별연구회는 개별 멤버가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다”며 거부했다.

○ 누리꾼들은 ‘부글부글’

공공기관 고졸 채용률이 1%에 불과하다는 본보 보도에 이날 누리꾼들은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에 댓글로 대거 공감을 표시했다. 누리꾼들은 “정부가 하는 짓은 겉치레일 뿐이다. 채용한다고 해도 모두 계약직이니 속지 말자” “이러니까 대학 진학률이 80%가 넘는다” “대통령은 사기업만 보채지 말고 공공기관부터 바꿔라”라며 분노를 표시했다.

누리꾼 ID ‘qvkim’은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 나온 사람만 골라 쓴 삼성에도 스티브 잡스 같은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는 한 명도 없다”며 “지금처럼 사람을 껍데기와 간판만으로 판단해서 인재를 쓴다면 우리에게는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는 절대 안 나온다”고 밝혔다. 공공기관도 기업인데 고학력자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누리꾼 오모 씨는 “솔직히 뽑는 사람 입장에서는 뽑을 사람이 넘쳐나는데,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고학력자를 원한다”고 했다. ID ‘kyeong6651’은 “실업계 고등학교 졸업 후 공기업에 입사해서 주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친구를 봤다”며 “누구나 다 대학을 간다는 것보다는 각자의 소질을 살려 역량을 키워 갈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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