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자장면 3000원… 어떻게 안 망할까?

  • Array
  • 입력 2011년 7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착한 가격, 신뢰 높여 장기적 이득”■ 市, 물가안정 모범업소 1385곳 지정

하루가 다르게 물가가 치솟는 상황에서도 가격을 올리지 않는 이른바 ‘착한 가격’의 업소들이 서울 시내 곳곳에 있다. 서울 종로5가 한 음식점의 점심시간 풍경. 직장인들이 즐겨
먹는 찌개 메뉴들을 5000원에 팔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하루가 다르게 물가가 치솟는 상황에서도 가격을 올리지 않는 이른바 ‘착한 가격’의 업소들이 서울 시내 곳곳에 있다. 서울 종로5가 한 음식점의 점심시간 풍경. 직장인들이 즐겨 먹는 찌개 메뉴들을 5000원에 팔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여기 자장면요? 가격이 안 올랐고 양도 그대로예요. 물론 맛은 최고죠.”

20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중국음식점 ‘대성각’. ‘4년째 단골’이라는 여중생 김영주 양(14)이 자장면을 먹고 있었다. 자장면 한 그릇 값은 3000원. 2005년 2500원에서 500원 올린 가격이 7년째 그대로다. 김 양은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3000원짜리 자장면을 어디 가서 먹겠느냐”며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66m²(약 20평)밖에 안 될 정도로 작은 이 가게는 최근 서울시의 ‘가격 안정 모범업소’로 선정됐다.

○ 도심 곳곳에 ‘착한 가게’

자고 나면 물가가 오르는 요즘 서민들의 삶은 더 고달프다. 수입은 그대로인데 음식값 등 기본 생활비가 치솟으며 서민들의 어깨를 짓누른다. 식자재 값이 내려도 한번 오른 음식값은 내리지 않아 더 걱정이다.

서울시의 물가동향 분석 자료에 따르면 올해 1∼6월 개인서비스요금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 올랐다. 지난해부터 밀가루 값이 오른 데다 올해 초에는 구제역 파동으로 돼지고기 가격까지 올라 외식 물가는 크게 상승했다. 서비스업계도 가격 인상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다.

그러나 물가 압박에도 가격을 올리지 않은 이른바 ‘착한 가게’가 서울시내 곳곳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가 최근 ‘개인서비스요금 안정화 방안’의 일환으로 25개 자치구 중 종로구 등 15개 구의 총 9만3931개 업소를 조사해 이 중 1385개 업소(전체의 1.4%)를 가격 안정 모범업소로 지정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음식이나 서비스 가격을 올리지 않은 업소를 조사해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선정된 곳은 대부분 한자리에서 10년 이상 영업을 해온 ‘소규모 동네 가게’였다. 모범업소로 지정된 종로구 효제동 한식당 ‘부남돌구이’는 1만 원 하던 삼겹살 생고기 1인분(200g) 값을 2000원 올렸다가 최근 1만 원으로 다시 내렸다. 이 업소를 운영하는 장모 씨는 “20년 단골손님인 시장 상인들이 장사가 잘 안되는데 나만 음식값을 올린 것 같아 다시 가격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 대신 장 씨는 점심 메뉴로 김치찌개, 갈비탕 등을 요일별로 고정 메뉴화해 대량 판매하는 방식으로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대형 업소 중에도 가격을 올리지 않은 곳이 있다. 하루 수백 명의 손님이 찾는 종로구 삼청동 한식당 ‘청수정’은 불고기덮밥과 오징어덮밥, 비빔밥 등 밥 메뉴를 5년째 6000원에 팔고 있다. 그 대신 인건비를 줄였다. 주인 박옥훈 씨(67·여)는 “과거엔 음식 재료 배달업체가 그날 재료를 사다 줬지만 얼마 전부터는 아들이 가락시장과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서 직접 장을 본다”며 “싸고 신선한 재료를 골라 품질은 높이고 인건비와 재료비는 30% 줄였다”고 말했다.

15개 구별 모범업소는 강서구(247곳)에 가장 많았다. 강북구 177곳, 관악구 169곳, 광진구 132곳 등으로 평균치 이상이었다. 반면 도심 직장인을 주로 상대하는 중구에는 10곳뿐이었다. 서민이 몰리는 가게일수록 가격을 지키는 곳이 많았다는 게 서울시의 분석이다. 김정일 서울시 소비자보호팀장은 “단골손님과 밀착해야 하는 주거지 주변일수록 모범업소가 많은 반면 도심에서는 쉽게 가격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는 1개 구에 평균 92곳의 모범업소가 있어 25개 자치구 전체로 따지면 2300곳이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 서울시도 착한 가게 지원

시는 모범업소로 선정된 곳에 20L들이 쓰레기종량제 봉투 20장을 1년에 두 번씩 줄 계획이다. 시 및 구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으로 업소를 홍보하는 등 인센티브도 준다.

업주들은 카드수수료 인하 등 좀 더 실질적인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시는 행정안전부에서 ‘물가 안정 관리를 위한 특별교부금’ 4억7000만 원을 받아 지원을 늘려가기로 했다. 물가 안정과 관련한 특별교부금을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상영 서울시 생활경제과장은 “자치구별 재정자립도에 따라 구에 배분해 가격 안정 모범업소를 위한 사업비로 쓸 것을 권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종인 한국소비자원 정책연구본부 연구위원은 “정부나 지자체의 인센티브도 좋지만 원가를 공개하거나 다른 경쟁 가게의 가격과 비교하는 등 객관적인 정보를 손님들에게 공개해 식당 스스로 가격 경쟁력이 있음을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동진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박리다매’식으로 팔아 고객에게 신뢰를 주는 게 ‘경쟁력 있는 소상공인’으로 남는 법”이라고 말했다. 김수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박리다매식 마케팅을 뛰어넘는 혁신이 필요하다”며 “새로운 메뉴나 서비스 등 핵심역량과 브랜드를 구축해 단골 외에 새로운 손님을 끌어들이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서울시 물가안정 모범업소 명단 보기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이재호 인턴기자 고려대 보건행정학과 3학년  
유하늘 인턴기자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3학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