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건희 회장 오늘 ‘선진제품 비교 전시회’ 4년만에 참석… 어떤 화두 던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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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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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위기는 기회다”… 이번엔 ‘위기는 위기다’?

1993년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한 호텔의 대형 행사장. 이건희 당시 삼성그룹 회장(사진)의 얼굴은 싸늘했다. 이 회장을 수행한 전자·전기 계열사 임원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이 없었다.

이들 앞에 펼쳐진 것은 당시만 해도 첨단기술의 집합체였던 VTR를 비롯해 TV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등 각종 가전제품이었다. 삼성뿐만 아니라 소니 도시바 GE 월풀 등 세계적 가전 메이커들의 제품 수십 개가 나란히 진열돼 있었다. 한 달 전 LA의 가전제품 매장을 둘러보다 먼지를 뒤집어쓴 채 구석에 팽개쳐져 있는 삼성 제품들을 보고 충격을 받은 이 회장이 지시해 만든 자리였다.

이 회장은 경쟁사 제품을 부품까지 샅샅이 뜯어가며 “삼성 VTR는 도시바 VTR보다 부품이 30% 많은데 가격은 오히려 30% 더 싸니 경쟁이 되겠느냐”는 식으로 몰아붙였다. 이어 “(적당히 안주하려는) ‘2등 정신’을 버려라”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오늘날 삼성전자의 성공 원동력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선진제품 비교 전시회’의 모태가 된 ‘전자부문 수출품 현지 비교평가회의’의 한 장면이다.

이 회장의 경고는 같은 해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이뤄진 ‘신경영 선언’으로 이어졌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라는 이 회장의 일성(一聲)은 삼성전자의 체질을 바꿔놓았다.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LA 회의가 기폭제가 되어 삼성은 신경영 선언과 함께 대전환을 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후 삼성전자는 이 비교평가회의를 ‘선진제품 비교 전시회’라는 이름으로 바꿔 국내에서 개최했다. 삼성전자의 가전, 휴대전화, 반도체, 액정표시장치(LCD) 등 각종 완제품과 부품을 경쟁사의 신제품과 철저히 비교, 분석하는 자리다.

올해 전시회는 18일부터 29일까지 경기 수원시 삼성디지털시티에서 진행된다.

이 전시회에 삼성과 전자업계뿐 아니라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라는 짐을 벗고 경영에 전념할 것으로 관측되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4년 만에 직접 참석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던 2009년을 빼고는 이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해 왔다. 전시회는 통상 2년마다 열린다.

올해 전시회는 2000여 m²의 공간을 디지털미디어관 정보통신관 생활가전관 반도체관 LCD관 디자인관으로 나눠 삼성과 소니 파나소닉 샤프 GE 애플 노키아 HP 등의 최신 제품들을 비교 평가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김순택 미래전략실장, 최지성 부회장 등 삼성의 핵심 최고경영자(CEO)들이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이번 전시회가 더욱 주목받는 까닭은 이 회장이 직전에 참석했던 2007년과 지금의 상황이 ‘위기’라는 코드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세계 반도체 경기가 침체되면서 삼성전자 위기론이 대두됐던 2007년 전시회에서 이 회장은 ‘위기는 기회다’라는 화두를 던졌다. 그는 “2010년 정도면 지금 예측하기에는 힘들 정도의 급속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지금 힘들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부터 잘 준비한다면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예견한 바 있다. 그러면서 “4, 5년 뒤의 큰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며 ‘창조경영’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 회장이 당시 위기 가능성을 경고했던 시점인 지금, 공교롭게도 삼성전자는 세계 LCD 경기 하락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6% 줄어든 3조7000억 원에 그쳤다. LCD 부문은 2분기 연속 적자의 늪에 빠졌다. 또 최근 특허전쟁에 열을 올리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등은 삼성전자를 주요 표적으로 삼고 있다. 애플은 삼성전자가 독점 공급하던 모바일 AP칩의 구매처를 대만 업체로 다변화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재계는 이 회장이 이번 전시회에서는 ‘위기는 위기다’라는 식의 화두를 던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 상황이 이미 심각한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하고 임직원들에게 뼈저린 위기의식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삼성의 한 고위 임원은 “2007년과 2011년의 가장 큰 차이는 이 회장이 느끼는 위기의 정도다. 4년 전엔 ‘다가올 위기에 대비하자’며 다소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졌다면 지금은 이미 위기가 닥쳤다고 보는 것 같다”면서 “1993년 신경영에 비견하는 강도 높은 대책을 구상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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