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밖의 경제학’ 저자 美듀크大 댄 애리얼리 교수의 강의 들어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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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으론 노동 동기부여 못해… ‘성취감’을 느끼게하라”

《 미국 명문 경영대학원 중 하나인 듀크MBA스쿨에서 졸업을 앞둔 2학년 학생 대부분이 마지막 학기에 꼭 수강하는 과목이 있다. 이 과목은 2학년에게만 수강 기회가 주어진다. 입학할 때부터 학생들이 꼭 듣고 싶어 하는 과목은 바로 행동경제학이다. 이 과목은 ‘상식 밖의 경제학’과 ‘경제 심리학’ 저자로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댄 애리얼리 교수가 강의한다. 고품격 경영저널 DBR(동아비즈니스리뷰)는 세계 유수의 MBA스쿨 재학생이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하는 ‘MBA통신’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이 코너에 실린 애리얼리 교수의 최신 수업 내용을 전한다. 기사 전문은 DBR 85호(7월 15일자)에 실려 있다. 》
○ 행동경제학의 밑거름이 된 아픈 상처

첫 수업 때 애리얼리 교수는 심한 화상 흉터가 남아 있는 자신의 얼굴에 대한 아픈 과거를 털어놓았다. 학창시절 마그네슘 폭발 사고로 심한 화상을 입은 그는 오랫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을 돌보는 간호사들의 행동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화상 치료용 거즈를 몸에서 제거하고 다시 붙이는 치료 과정에서 대부분의 간호사는 거즈를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하지만 일부 간호사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거즈를 제거했다.

두 방법 모두 일장일단이 있다. 거즈를 급하게 떼면 순간적으로 매우 아프지만 전체적으로 환자가 고통을 느끼는 시간이 짧다. 거즈를 천천히 떼면 순간적 고통은 크지 않지만 전체적으로는 고통을 받는 시간이 길어진다. 이성적으로 보면 환자의 선호도에 따라 간호사들은 두 방법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간호사도 환자들에게 선호하는 방법을 묻지 않았다.

애리얼리 교수는 거즈를 빠르게 제거한 간호사에게 물었다. “왜 당신은 다른 간호사들과 달리 거즈를 급하게 제거하나요?” 그는 간호사가 이성적 대답, 즉 순간적 고통이 크긴 해도 환자가 빠른 시간에 고통을 마무리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기대했다. 하지만 간호사는 “전 환자가 아픔을 느끼는 걸 볼 때마다 무척 고통스러워요. 가능하면 그 고통을 최소화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애리얼리 교수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합리성에 입각한 자신의 고정관념을 벗어난 간호사의 답변에 놀란 그는 인간이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으며 이런 비합리성 또한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는 관점에 매료됐다. 그가 인간의 합리성을 신봉하는 전통 경제학과 다른 길을 걷기로 결심한 이유다.

○ 인간은 왜 일을 하는가


심리학적 요소가 많이 가미된 애리얼리 교수의 행동경제학 수업은 매 시간 별도의 주제를 다룬다. 어느 날 수업 서두에 그가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은 왜 일을 하려고 하나요? 돈을 벌기 위해서? 과연 돈이 전부일까요? MBA스쿨 졸업 후 기업의 관리자가 될 여러분이 설마 직원들에게 금전적 보상으로만 일에 대한 동기 부여를 하려고 하려는 건 아니죠?”

애리얼리 교수는 답변 대신 스크린에 커다란 레고 사진을 보여줬다. 그는 레고를 조립하는 두 집단의 차이에 관한 자신의 과거 실험을 설명했다. 첫 번째 실험 참가자들은 하나의 로봇 레고를 조립한 후 다른 종류의 로봇을 제공받았다. 그들은 새로운 로봇을 계속 만들었다. 완성된 로봇은 실험 대상자 앞에 진열됐다. 두 번째 참가자들은 동일한 종류의 로봇을 계속 제공받았다. 그들이 완성한 로봇은 다른 사람이 그들 눈앞에서 분해했다.

두 실험 대상군은 같은 금전적 보상을 받았다. 보상 구조는 완성된 조립품당 보상액이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드는 형태였다. 실험 대상자들은 본인의 의사에 따라 추가로 로봇을 만들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었다.

언뜻 보면 이 실험은 동일한 로봇을 만드는 두 번째 집단에 유리하다. 같은 로봇을 계속 만들면 금방 익숙해져 새 로봇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새 로봇을 제공받았던 첫 번째 집단은 평균 10.6대의 완성품을 만들었고 평균 14.40달러의 보상을 받았다. 같은 로봇을 계속 만들었던 집단은 평균 7.2대의 완성품을 만들고 11.52달러를 받았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왔을까? 애리얼리 교수는 ‘일의 의미’에서 해답을 찾았다.

“단순한 금전 보상만으로는 인간의 노동에 동기를 부여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무언가를 성취하는 과정에서 의미를 찾는 존재입니다. 두 번째 실험군은 끝없이 돌을 반복적으로 굴려야만 했던 시시포스 같은 운명에 처한 존재들이죠. 이들의 생산성이 좋을 리 없습니다. 여러분이 조직의 관리자가 됐을 때 반드시 생각해야 할 점입니다.”

○ 당신이 스타벅스에 계속 가는 이유


어느 날 애리얼리 교수는 스타벅스의 카페라테를 들고 나타나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은 왜 스타벅스에 계속 가나요? 가격이 합리적이라서? 맛이 좋아서?” 스타벅스의 커피 가격이 다소 비싸다고 생각하면서도 습관적으로 이용했던 필자 또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뚜렷한 이유를 찾아내기 어려웠다.

애리얼리 교수는 ‘자신을 따라하기(self-herding)’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했다. 사람들은 무작정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따를 때가 많으며 심지어 자신의 과거 행동이나 의사결정 또한 답습할 때가 많다.

“만약 당신이 스타벅스에 열 번째 방문했는데 스타벅스 커피가 너무 비싸다고 결론짓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는 이전 아홉 번의 방문을 어리석은 결정이었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됩니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계속 스타벅스를 방문합니다. 여러분이 조직에서 어떤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 이 점을 꼭 기억하세요. 소비자들이 어떤 제품의 가격에 대해 내리는 평가는 단순히 그 절대적 숫자와 관련이 있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과거 행동이 차지하는 비중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마케팅 전략을 세울 때도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의 반복적 소비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고려해야 합니다.”

행동경제학은 2년의 MBA 과정에서 배운 전통 경제학, 재무관리, 마케팅이라는 큰 그림에 마지막 점을 찍어주는 멋진 수업이었다. 이 수업은 전통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의 비합리적 의사결정과 관련한 다양한 실험 사례를 통해 경제학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했다.
:: 댄 애리얼리 교수는 ::

베스트셀러 ‘상식 밖의 경제학’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댄 애리얼리 듀크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행동경제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다. ‘인간은 비합리적이지만 행동 패턴을 예측할 수 있다’는 주장을 기발한 실험들로 입증한 그는 ‘경제학계의 코페르니쿠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인지심리학 박사 학위를, 듀크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좀 더 현실적으로 인간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 행동경제학은… “인간은 비합리적” 금융위기 겪으며 주목 ▼


인간을 합리적이라고 가정하는 기존 전통 경제학과 달리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비합리성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DBR 그래픽
인간을 합리적이라고 가정하는 기존 전통 경제학과 달리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비합리성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DBR 그래픽
기존 전통 경제학에서는 인간을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 즉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지극히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로 가정한다. 반면 몇 년 전부터 큰 관심을 받고 있는 행동경제학에서는 인간을 대단히 비합리적인 존재라고 본다. 특히 주류 경제학이 금융위기의 원인에 대해 뚜렷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면서 인간의 비합리성을 연구한 행동경제학이 더 주목받고 있다.

대니얼 카너먼은 1979년 위험에 대한 선택의 문제를 다룬 ‘전망 이론’으로 행동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전망 이론은 이익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인간이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안전한 대안을 선택하지만 손해를 보는 상황에서는 기꺼이 모험적인 선택을 한다는 이론이다. 인간이 합리적으로 기대 가치를 계산해 선택한다는 기존 경제학의 가정을 뒤흔든 이론으로 평가받았다.

최근의 행동경제학은 특히 의사결정 대안의 ‘선택 설계(decision architecture)’를 통해 사람들이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하도록 유도한다. 일례로 납세자에게 도움이 되는 퇴직연금의 가입률을 높이기 위해 희망자에 한해 가입하도록 한 과거 제도를 바꿔 일단 모두가 자동 가입하고 희망자만 탈퇴할 수 있도록 한 게 선택 설계의 사례다. 행동경제학은 이처럼 정부 정책에도 도입되면서 주류 경제학으로서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김경호 듀크대 후쿠아 경영대학원@@@
Class of 2011 kk137@duke.edu@@@
정리=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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