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정기인사 관례 깨고 이례적 일부 사장단 교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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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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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CD실적부진 문책성… 이건희 회장 ‘진두지휘’

1일 삼성그룹 부정기 인사에서 삼성전자 DS(디바이스 솔루션)사업총괄을 책임지게 된 권오현 사장. 권 총괄사장은 2008년부터 반도체사업부 사장으로 일하며 삼성전자의 전성기를 이끈 1등 공신으로 꼽힌다. 그는 “액정표시장치(LCD)산업이 어렵다고 하지만 포기는 없다”고 각오를 다졌다. 삼성그룹 제공
1일 삼성그룹 부정기 인사에서 삼성전자 DS(디바이스 솔루션)사업총괄을 책임지게 된 권오현 사장. 권 총괄사장은 2008년부터 반도체사업부 사장으로 일하며 삼성전자의 전성기를 이끈 1등 공신으로 꼽힌다. 그는 “액정표시장치(LCD)산업이 어렵다고 하지만 포기는 없다”고 각오를 다졌다. 삼성그룹 제공
삼성그룹이 연말 정기인사 관례를 깨고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표면적으론 액정표시장치(LCD)사업 실적 부진에 대한 문책성이지만 조직의 기강을 확립하고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그룹은 1일 삼성전자 내 반도체, LCD 등 부품사업을 한데 묶어 ‘DS(디바이스 솔루션)사업총괄’ 조직을 신설하고, 권오현 반도체사업부 사장(59)을 총괄사장으로 임명했다. DS사업총괄은 메모리사업부(전동수 사장), 시스템LSI사업부(우남성 사장), LCD사업부(권오현 사장 겸직)를 관장하게 된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조직은 최지성 부회장 직속의 DS사업총괄과 완제품 부문인 영상, 무선, 생활가전 등으로 재편됐다.

기존 반도체사업부는 폐지됐고, LCD사업부장이던 장원기 사장은 최고경영자(CEO) 보좌역으로 물러나 사실상 경질됐다. 삼성이 실적 부진을 이유로 정기인사가 아닌 때에 사장을 전격 교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인사는 LCD사업이 올해 1분기(1∼3월) 적자에 이어 2분기에도 대규모 적자를 내자 이 회장이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의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사장 교체라는 강수를 던진 것이다. 또 부서 통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로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전략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부품을 총괄하게 된 권 사장은 위기에 빠진 LCD사업을 정상 궤도에 올리기 위해 LCD사업부장을 겸직하게 돼 상당한 힘이 실리게 됐다. 권 사장은 2008년부터 반도체총괄 사장을 맡아 지난해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는 데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 권 사장은 이날 열린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임시총회에서 협회장직을 사임한 뒤 “LCD가 어렵다고 하지만 포기는 없다. 사양산업은 있지만 사양회사는 없다”고 각오를 밝혔다.

DS사업총괄은 2009년 이윤우 부회장이 맡았던 부품총괄 조직과 비슷하다. 삼성은 당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이윤우(부품)-최지성(세트) 부회장 ‘투 톱’ 체제를 만들었지만 1년여 만에 최 부회장 ‘원 톱’ 체제로 복귀한 바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두 체제의 장점만 뽑아 부품사업의 효율성을 높이되 최 부회장이 세트와 부품 간 시너지를 높일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의 감사실 강화 발언 직후 정현호 부사장이 그룹의 감사업무를 지휘하는 미래전략실 경영전략실장으로 이동하면서 공석이 된 디지털이미징사업부장에는 PDP일류화TF장인 한명섭 전무가 임명됐다. 휴대전화 분야에서 탁월한 실적을 낸 신종균 무선사업부 사장은 디지털이미징사업부 업무도 관장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받았다.

신설된 DS사업총괄 경영지원실장에는 김종중 삼성정밀화학 사장(56)이 선임됐다. 삼성정밀화학은 1일 이사회를 열어 성인희 삼성인력개발원 부원장(57)을 후임 사장으로 정하고, 8월에 주주총회를 열어 대표이사로 선임키로 했다.

삼성 측은 이번 인사가 삼성테크윈발(發) 비리 척결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조직 전체가 받아들이는 충격은 매우 크다. 각 계열사는 LCD 사업 책임자의 경질에 대해 비리는 물론이고 무능까지도 ‘즉각 척결’의 대상이 된다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삼성의 한 계열사 임원은 “삼성테크윈 사건 이후로 임원 대부분은 비리, 부패 등에만 촉각을 곤두세웠는데 삼성전자의 인사를 보니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계열사 관계자는 “삼성 사장단의 인사에 대해서는 ‘적어도 1년은 기다려 준다’는 불문율이 있었는데 이제는 실적이 나쁘면 언제라도 뒤집힐 수 있다고 받아들여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계열사별 경영진단(감사)이 끝나면 부정부패가 있는 곳뿐만 아니라 실적이 부진한 곳에도 대대적인 인적 쇄신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조직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이 회장의 위기감도, 삼성의 개혁 규모도 훨씬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제계에서는 LCD산업을 놓고 일본 중국 대만 등 경쟁국 정부는 한국을 따라잡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 반면 국내에선 정치권을 중심으로 폭넓게 퍼져나가는 반(反)기업 정서 탓에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LCD 기업들에 따르면 일본은 정부가 직접 ‘메가 기업’ 육성을 주도하고 있다. 정부가 산업혁신기구를 가동해 도시바와 소니, 히타치가 합작법인을 설립하도록 막대한 예산 지원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정부는 대만산 LCD를 우선 수입하도록 해 대만업체를 지원하는 한편 간접적으로 첨단기술을 확보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정부 차원의 지원책이나 장기적 육성방안은 찾아볼 수 없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정치권은 마치 대기업이 외화를 쉽게 쓸어 담는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 우리는 사활을 걸고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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