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판알 튕겨보니 “약사가 더 무서워”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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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사 상당수 슈퍼판매 않기로… “유통비용 더 들어 손해볼 수도”

제약회사들이 이르면 올해 8월부터 일부 의약품을 슈퍼마켓에서 팔 수 있게 됐지만 상당수가 슈퍼 판매를 하지 않겠다고 내부적으로 결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새로운 유통망을 개척하고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 슈퍼 매출보다 클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동아제약 관계자는 22일 “사내에 ‘슈퍼마켓에서 박카스를 팔기 힘들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더 많다”고 전했다. 상처 치료제 마데카솔을 파는 동국제약도 슈퍼 판매를 생각하지 않고 있고, 광동제약도 생록천액을 슈퍼에서 팔지 않기로 했다.

유한양행 측은 “드링크제인 유톤액과 안티푸라민 모두 보건복지부가 슈퍼 판매를 허용했지만 논의도 안 한다”고 말했다. 성과도 없을 텐데 굳이 나설 필요가 있느냐는 설명이다. 21일에도 의사와 약사, 보건복지부가 박카스와 안티푸라민 등의 안정성 등을 놓고 격론을 벌였지만 정작 제약사는 큰 관심이 없는 것이다.

제약사들이 의약품의 슈퍼 판매에 소극적인 이유는 한마디로 ‘돈이 안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안티푸라민은 18억 원, 유톤액은 5억 원어치가 팔렸다. 슈퍼 판매를 위해 더 많은 영업사원을 고용해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남는 장사가 아니다. 광동제약도 생록천액으로 지난해 18억5000만 원을 벌었지만 역시 새로운 유통망을 뚫기에는 매출액이 적다. 슈퍼 판매가 허용된 44개 품목 중 지난해 1283억 원의 매출액을 올린 박카스를 빼면 나머지 제품의 매출은 다 합쳐도 100억 원 수준. 얼마 팔리지 않는 제품을 위해 약사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가면서까지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업계 5위권 제약사의 한 관계자는 “현재 지정된 약 정도라면 슈퍼 판매를 할 이유가 없다”며 “제약사가 슈퍼 판매를 안하겠다고 하면 이번 방침이 무용지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더욱이 복지부가 슈퍼 판매를 허용한 44개 의약품 중 절반 이상은 이미 생산이 중단된 제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정책이 졸속으로 이뤄진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든다. 일동제약 관계자는 “락토메드정은 2008년 이후 생산하지 않고 있으며 다시 팔 계획도 없는데…”라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소비자의 반응도 냉담하다. 44개 품목이 결정된 뒤 트위터에는 “원하는 건 박카스가 아니다. 오밤중에 응급실 가서 큰돈 안 들일 수 있도록 편의점에서 해열제와 감기약만 팔게 해달라는 것이다”(wind_sniper)는 등의 글이 적지 않게 올라왔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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