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기업 전용 데이터센터’ KT와 합작사 설립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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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채 회장 당장 만날수 있을까요?”… 만남 사흘만에 의기투합 공사시작

“부모님은 한국인, 자란 곳은 일본, 16세 때부터 교육받은 곳은 미국이에요. 23대 조상님은 중국에 사셨다고 하고요. 제가 어디에 속하는지 저 자신도 알기 어렵지만 적어도 한 인간으로서 모든 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재일교포 3세 기업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속된 말로 요즘 일본에서 ‘뜨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 후 100억 엔(약 1300억 원)이라는 거금을 선뜻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가 총리가 돼야 한다는 여론이 일기도 했다.

KT와 함께 전력난을 겪는 일본 기업들에 안정적인 데이터센터를 제공하자는 프로젝트를 추진한 것도 선의(善意)로 출발했다. 30일 일본 도쿄에서 만난 손 회장은 “아시아와 세계 발전에 공헌하고 싶다”고 했다.

이어 손 회장은 “소프트뱅크그룹의 통신사업은 고객의 정보와 일상을 지키는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1981년 손 회장이 만든 소프트뱅크는 연간 매출 약 3조 엔(약 40조 원) 수준의 혁신기업으로 꼽힌다.

○ “한국서 고객 데이터 지킨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기업들은 안정적인 전력의 소중함과 재해에 대비한 사업지속가능성방안(BCP·Business Continuity Plan)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손 회장은 “일본 기업의 약 70%가 BCP를 다시 짜고 있다”며 “회사의 서버를 안전한 데이터센터로 옮기려 한다는 문의가 늘어 지난 한 달 동안 소프트뱅크 데이터센터에 1년 치 물량이 몰렸다”고 말했다. 기업이나 소비자가 실제 서버를 보유하지 않고 대규모 데이터센터에 전기료처럼 일정 비용을 내며 컴퓨팅 환경을 빌려 쓰는 ‘클라우드 컴퓨팅’이 지진 이후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사실 기업으로선 자사의 주요 정보가 담긴 서버를 해외로 옮기는 것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은 믿을 만하다는 분위기다. 이석채 KT 회장은 “한국은 남북 대치라는 특수 상황 때문에 정보보호 관리가 투철하고 관련기술도 발달돼 있다”고 설명했다. 손 회장도 “한국은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한 일본 이상의 법률체계를 갖췄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불안한 원자력보다 태양광 등 자연 에너지를 믿는다. 최근 태양광산업에 수천억 원의 투자계획도 밝혔다.

○ 초스피드 의사 결정

“손정의 회장이 이석채 회장을 당장 만나고 싶다는데… 괜찮겠습니까?”

지난달 12일 서정식 KT 클라우드본부장은 소프트뱅크의 제안에 깜짝 놀랐다. 실무진이 ‘부산 근교에 있는 KT 연수원 터에 일본 전용 데이터센터를 지으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를 낸 지 하루 만이었다. 두 회사는 지난해 5월부터 클라우드 협력방안을 논의했지만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데다 구체적인 지역이 거론되자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틀 뒤인 4월 14일 이 회장은 일본에서 손 회장을 만났다. 만난 지 사흘 뒤 김해 데이터센터 공사가 시작됐다.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전이었다. 마침내 5월 30일. 이 회장과 손 회장은 다시 만나 MOU를 맺고 동시에 사업설명회도 열었다. 두 회사 최고경영자(CEO)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스피드 경영이 이뤄진 셈이다.

소프트뱅크는 자체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고 있어 ‘자기 잠식’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이때 손 회장은 “더 값싸고 좋은 서비스가 있다면 그 길로 가야 한다”고 했다고 KT 관계자는 전했다. 또 KT가 데이터센터 초기투자 비용을 제시하자 따져보지도 않고 “믿는다”며 그대로 진행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 회장도 “일본을 돕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니 서비스 산정가격을 너무 따지지 말고 ‘윈윈’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해 가격 협상이 1주일 만에 끝났다는 후문이다.

도쿄=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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