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Dream/현장에서]거주시설이 아닌 최후의 보루 ‘집’ 봇물 터지듯 부동산경기 풀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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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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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엽 경제부 기자
나성엽 경제부 기자
회사원 류모 씨(43)는 요즘 잠을 제대로 못잡니다. 4년 전 은행에서 1억 원을 대출받아 집을 장만했으나 지금 살고 있는 집값이 구입 당시보다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집값이 떨어졌는데도 꼬박꼬박 은행에 내야 하는 이자 때문에 류 씨는 부동산 중개업소에 살고 있는 집을 매물로 내놨습니다. 하지만 6개월이 넘도록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중개업소에 문의를 해 보니 “그집뿐 아니라 전체 아파트 단지에서 최근 2년째 거래가 단 한 건도 없었다”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류 씨는 최근 기자와 만난 술자리에서 육두문자가 섞인 욕을 해 가며 “살맛이 안 난다”, “세상이 싫다”, “이민 가고 싶다”는 푸념을 했습니다.

또 다른 회사원 이모 씨(39). 지난해 초 경기도에서 A아파트를 분양받은 그도 “살맛이 안 난다”고 합니다. 이 씨가 분양받은 아파트 단지의 많은 가구가 미분양되자 분양대행사가 할인분양을 했기 때문이랍니다. “똑같은 집인데 왜 나만 남들보다 수천만 원 비싸게 사야 하느냐”며 이 씨는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이 씨 역시 “세상이 싫다”고 합니다. 이 씨의 아파트에서는 최근 입주민들이 부실공사를 이유로 건설사에 보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씨는 “사실 그 정도 부실은 참아 넘길 만한 사안이지만 보상을 통해 조금이라도 집값을 돌려받고 싶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류 씨와 이 씨처럼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싫다”고 한숨을 쉬는 이유는 한국 사회에서 ‘집’이 단순한 거주시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집은 평생을 일해 모은 돈에, 빌린 돈을 얹어 사야 하고, 나중에 자녀가 크면 팔고 쪼개서 신혼집을 마련해주고 결혼비용을 대야 하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일부 투자가에겐 다른 어떤 방법보다 수익성이 높은 재테크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은퇴한 전직 교사 출신 C씨(70)는 1970, 80년대 빌린 돈으로 서울 강남에서 5, 6차례 집과 땅을 사고팔아 거부(巨富)가 되기도 했습니다.

건설사들도 미칠 노릇이랍니다. 예전에는 지어 놓기만 하면 팔렸기 때문에 거액의 차익을 남길 수 있었는데 요즘은 “손해 보지 않는 게 목표”랍니다. 분양가를 주변 시세보다 낮게 책정하고 “입주 후 몇 년 뒤에 집값이 떨어지면 차액을 보상하겠다”는 약속까지 합니다. 미분양이 나면 할인분양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겨우겨우 분양을 마치면 이번에는 입주자들이 부실공사를 이유로 온갖 트집을 잡고 방송사에 제보까지 하며 보상을 해 달라고 한답니다. 집을 잘 팔지 못한 건설사들 중 문 닫을 곳은 이미 다 문을 닫았습니다.

지금 한국에서의 집, 부동산은 단순한 불경기를 넘어 집 있는 사람에게까지 절망감을 안겨주고 업계의 관행까지 바꾸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어렵게 장만한 집 하나 바라보며 힘든 사회생활 견디는 서민들의 꿈을 무너뜨리고 있고 수많은 건설인들의 직장을 없애고 있습니다. 정부가 잇따라 내놓는 대책도 약발이 듣지 않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 건설사 임원의 말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한국인의 냄비 근성 때문에 부동산경기가 침체를 벗어날 수 있는데도 못 벗어난다”는 겁니다. “객관적인 상황이 좋아지고 있지만 비관론에 푹 빠진 소비자들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일 뿐이며 누군가 먼저 치고 나가면 봇물 터지듯 부동산경기가 풀릴 것”이라는 예측이죠. 이 임원의 전망이 현실로 바뀌기를 기대합니다.

나성엽 경제부 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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