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부터 광어까지… 농어민 힘합쳐 유통시장 뚫는 제주농협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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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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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쳐야 산다” 공동출하로 매출 ‘쑥쑥’

24일 제주 서귀포시의 서귀포 감귤거점산지유통센터(APC)에서 직원들이 인근 농가에서 생산한 감귤을 선별 포장하고 있다. 서귀포 APC는 인근 지역 감귤을 공동 집하 출하해 대형마트 등에 납품한다. 서귀포=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24일 제주 서귀포시의 서귀포 감귤거점산지유통센터(APC)에서 직원들이 인근 농가에서 생산한 감귤을 선별 포장하고 있다. 서귀포 APC는 인근 지역 감귤을 공동 집하 출하해 대형마트 등에 납품한다. 서귀포=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장면 1. 시골에서 마늘 농사를 짓는 김모 씨. 김 씨는 지난해 내내 땀 흘려 열심히 마늘 농사를 짓고서도 올해 소득은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김 씨의 마늘을 좋은 값에, 안정적으로 사줄 만한 유통라인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이마트 같은 대형 유통업체에 물건을 팔고 싶었지만 대형 유통업체는 김 씨와의 계약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가 생산한 마늘은 다 합쳐봐야 이마트 하루치 물량조차 되지 않았던 것이다.

#장면 2. 좋은 품질의 마늘을 생산하고도 ‘파워 딜러’들과의 협상에 완전히 실패한 김 씨. 이번에는 지역 중도매상을 통해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트럭 가득 마늘을 싣고 도착한 경매시장. 하지만 이날따라 김 씨처럼 마늘을 팔겠다는 농가가 여럿 몰린 탓에 헐값에 자신의 마늘을 내놓아야 했다.

김 씨 사례는 국내 대다수 농가가 맞고 있는 현실이다. 유통시장은 할인마트 등 대형 바이어에 의해 주도되고 있지만 국내 농가 대다수는 영세한 형편이다. 이에 따라 전국적으로 수급 균형이 맞는데도 시장에서는 농산물 값이 널뛰기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농가들의 소득도 그만큼 불안정하다.

이 때문에 농협과 유통 전문가들은 국내 농가의 ‘조직화, 규모화, 계열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해왔다. 영세 농가의 생산물을 합쳐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거대 유통업자들과 대등한 교섭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협중앙회 경제구조개편부 김홍배 박사는 “특히 국내 농가는 유럽연합(EU) 미국 등 농업 강대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앞두고 있어 조직화가 더욱 시급하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이런 유통선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농어민 소득증대에 앞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24일과 25일 국내 농가들 가운데 비교적 조직화가 잘 이뤄졌다고 평가받는 제주지역을 찾았다. 이곳에서는 ‘밀감’에서부터 ‘광어’에 이르기까지 여러 품목에서 조직화·계열화가 이뤄지고 있었다.

24일 찾은 제주 서귀포시의 감귤거점산지유통센터(APC) 사업장은 그 대표적인 예. 이곳에서는 서귀포시 일대 700농가가 수확한 감귤들이 선별기를 통해 분리 포장됐다. 8755m² 크기의 이 대규모 시설은 정부와 제주도, 농가들이 총 150억 원을 투자해 지은 것으로 지난해 1만3000t의 감귤을 선별해 약 2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강대성 제주특별자치도 감귤정책과장은 “종전에는 영세한 설비에서 몇몇 농가끼리 귤을 분류하다보니 차별화는 물론이고 대형마트 같은 큰 유통라인에 납품할 물량을 만들기도 어려웠다”며 “하지만 이런 APC를 통해 공동출하, 공동정산을 하면서 이마트나 홈플러스 같은 대형마트에도 물건을 직접 납품하고 있다”고 말했다.

○ 규모 커지니 품질도 ‘쑥쑥’


이곳의 또 다른 특징은 12브릭스(Brix·과일 당도를 재는 단위) 이상의 고당도 감귤을 감별해 낼 수 있는 최첨단 ‘비파괴 선별기’를 갖췄다는 것. 이 설비는 근적외선으로 감귤을 까보지 않고도 당도를 측정해 내는데, 이런 설비 덕분에 더 좋은 맛의 감귤을 생산한 농가들이 더 많은 소득을 올리는 게 가능해졌다.

APC를 총괄하는 강희철 서귀포농협 조합장은 “12브릭스 이상의 고품질 감귤은 ‘천상천하’와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가 붙어 팔려 나간다”며 “농가로서는 이런 귤은 일반 귤보다 값을 3∼4배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소득 증대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한편 제주 지역에서는 농산물뿐 아니라 수산물 분야에서도 조직화·브랜드화가 이뤄지고 있었다.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에 자리한 행원 육상양식단지가 대표적이다. 이 양식단지는 행원리 일대 29개 어가(漁家)가 협의회 형태로 공동 운영하는 곳으로, 지난해 총 1200t의 광어를 생산해 105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홍승대 협의회 회장은 “29개 농가가 함께 운영하다 보니 운영비도 절약되고 양식기술, 출하정보, 가격흥정 등을 집단으로 할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며 “‘제주 광어’라는 브랜드로 수협을 통해 출하하기 때문에 대형마트 등에 안정적으로 납품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서귀포=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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