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WINE]오해 살줄 알면서도 “비싼 와인이 좋다”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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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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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와인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아무런 배경 설명 없이 ‘비싼 와인’이라고 답했다가는 지탄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괜한 오해를 살 줄 뻔히 알면서도 필자가 이렇게 답하는 경우는 대부분 질문자가 와인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을 때다. 그들에게서 와인에 관한 작은 관심이라도 끌어내고자 할 때는 이 대답이 주는 효과가 상당하다. 상대가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면, 그때부터 비싼 와인을 좋아하는 이유를 빙자해 와인의 매력을 하나씩 풀어놓기 시작한다.

비싼 와인은 대부분 저마다의 스토리가 있게 마련이다. 특히 지적 호기심이 많은 이들에게 이만큼 흥미로운 아이템도 없다. ‘비싼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라는 말은 와인 세계에서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작업자의 생명을 여럿 앗아 갔을 정도로 경사가 심한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들었거나, 새 오크통을 한 번도 모자라 두 번이나 사용하는 등 가격이 비싼 와인 뒤에는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럿 숨어있게 마련이다.

비싼 와인의 순기능이 있다면, 별다른 노력을 안 해도 와인 이름, 함께 마신 사람, 장소 등이 절로 기억된다는 점이다. 맛은 차치하고라도 사람들은 비싼 와인의 라벨에 한 번이라도 더 눈길을 보내고, 보다 신중하게 맛을 음미하려고 정신을 집중하기 때문이다.

‘와인은 비싸다’라는 공식은 늘 성립되는 것은 아니지만 ‘비싼 와인이 대체로 맛있다’는 사실에는 수긍하는 이가 많다. 필자가 비싼 와인이 좋다고 답하는 또 다른 이유다. 비싼 와인은 무엇보다 마시는 이의 설렘의 폭을 증폭시켜 좋다. 평소 자주 마시는 값싼 와인도 새로운 빈티지를 맛보기 전에는 그 맛이 어떨지 궁금하고 설레는데, 하물며 말로만 들어왔던 고가의 와인은 오죽할까.

사람에 따라 ‘비싼 와인’이라고 부르는 가격 기준은 다르지만, 어떤 사람도 자신이 비싼 와인이라 여기는 와인을 아무 때나 내놓지도, 또 아무하고나 마시지도 않는다. 몇 번이고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는 심사숙고 끝에 고른 와인은 그 와인을 구입하던 그날의 내 모습까지 고스란히 품고 있다. 그때를 자연스레 기억하게 만드는 미래의 행복한 순간은 또 다른 좋은 추억을 만들 가능성이 크다.

김혜주 와인칼럼니스트
● 이번주의 와인
샤토 질레트, 크렘 드 테트 1955


1990년산 이후 빈티지가 출시되지 않고 있어서 샤토가 없어진 것 아닌가 궁금해하는 이가 많은 와인이다. 샤토는 여전히 건재하고 1990년산은 이 샤토가 출시한 가장 최근의 빈티지다. 와인이 생산되는 보르도 소테른은 물론 전 세계 어디에서도 이 와인처럼 20년(탱크에서 18년, 병입 후 다시 최소 3년) 이상 숙성시킨 후 내놓는 사례는 없다. 특히 이 와인은 29년을 숙성시켜서 1984년에야 비로소 출시했다. 오너의 사진만 봐도 머리가 절로 숙여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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