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 33개월만에 기준금리 인상… 빈-부국 갈등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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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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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佛 “빈국 노인연금까지 우리가 책임지나”

7일(현지 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카이저스트라세에 위치한 유럽중앙은행(ECB)에는 오전 일찍부터 평소보다 훨씬 많은 200여 명의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6일 포르투갈이 전격적으로 구제금융 신청 방침을 밝힌 데 이어 매달 열리는 ECB 정례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33개월 만에 0.25%포인트 인상했기 때문이다.

이날 장클로드 트리셰 ECB 총재의 회견장에는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을 묻는 질문과 함께 재정적자로 시달리는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이 이번 금리인상 충격을 고스란히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반면 유로존 최대 부국인 독일 국민들 사이에서는 “왜 우리가 포르투갈과 그리스의 노인연금까지 책임져야 하느냐”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잇따른 재정위기 국가들의 구제금융 신청과 다음 날 이뤄진 ECB의 금리인상 조치에 한동안 잠복해 있던 유럽 내 국가 간의 ‘부익부 빈익빈’ 갈등이 서서히 터지는 듯했다.

이날 회견장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기자들은 금리인상이 재정 위기국에 미칠 파장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하지만 트리셰 총재는 3번에 걸쳐 “인플레이션을 막으려는 ECB의 이번 조치는 모든 유로존 17개 국가와 3억3100만 명의 유로존 국민에게 똑같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답변으로 민감한 질문을 피해갔다. 전문가들은 재정 위기국들은 기준금리에 연동된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오르면서 가계에 미칠 파장이 커지는 데다 ECB로부터 상당한 규모의 자금 지원을 받은 민간은행들의 부채 상환 부담이 크게 늘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이날 금리인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재정위기국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유로존의 경제 부국들의 경제적 이익을 대변한 조치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브뤼셀에서 만난 카르스텐 브르제스키 ING뱅크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유로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독일은 끊임없이 자국 경제의 리스크로 인플레이션을 들며 ECB가 행동에 들어가 줄 것을 요구했다”며 “이는 유로존의 갈등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유로존 국내총생산(GDP)의 6% 정도를 차지하는 3개국을 위해 인플레를 방치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ECB가 향후 추가 금리인상을 놓고 상당한 고민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금리인상과 함께 유로존의 최대 이슈는 포르투갈의 구제금융 신청이다. 특히 유로존의 돈줄 역할을 하고 있는 독일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7일 현지에서 접한 독일의 한 민영방송은 포르투갈의 구제금융 신청이 나오자마자 ‘포르투갈을 지원해야 하느냐’는 주제로 긴급 전화 여론조사를 했다. 결과는 92%가 추가 지원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독일 국민들이 이처럼 민감한 것은 ECB가 지난해 5월 이후 재정위기를 겪는 국가들의 국채를 무려 770억 유로(약 12조 원)어치나 사주었는데 이 자금이 대부분 독일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ECB는 재정위기국의 국채를 매입하면서 담보를 요구하는데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의 담보 등급은 C등급으로 거의 투기등급 수준이다. 윌리엄 렐리벨트 ECB 대변인은 “투기등급의 담보물이 전체 국채 매입의 34%에 이른다”고 말했다. 그만큼 ECB의 부담이 커지는 것이며 이는 독일과 프랑스의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유로존 갈등에 대해 싱크탱크인 유러피언폴리스센터(EPC) 한스 마르텐스 소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유로존은 한마디로 이전 연합(Transfer Union)”이라고 요약했다.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 등 북구 자유주의국가(Nordic Liberal)들이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스 등 남유럽 대륙개입주의(Interventionist Continentals) 국가들을 지원함으로써 유로존이 유지되어 왔다는 의미다. 그는 부국이 빈국에 얼마나 지원하느냐에 따라 1999년 탄생한 유로존의 운명이 갈릴 것으로 내다봤다.

프랑크푸르트·브뤼셀=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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