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중은행들 선전하는데 글로벌은행들 실적부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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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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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대출 다걸기’ 오히려 毒됐다

시중은행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의 실적 수준을 빠르게 회복한 반면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글로벌 은행들은 실적이 정체되거나 급감하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은 지난달 31일 지난해 순이익이 3156억 원으로 전년도보다 1.4% 늘었다고 발표했다. 비이자이익은 전년도 2410억 원에 비해 40% 줄어든 1460억 원에 그쳤다. 같은 날 실적을 발표한 SC제일은행은 순익이 무려 25%나 떨어졌다. 전년도 4326억 원이었던 순익이 지난해 3224억 원으로 줄어든 것이다.

세계적 영업력을 갖춘 글로벌 은행들이 국내 금융시장에서 부진한 이유는 지나친 ‘가계대출 다 걸기(올인)’에 있다는 분석이다. SC제일은행과 한국씨티은행은 여신 리스크가 낮은 가계부문에 치중해왔다. 미국계 사모펀드 뉴브리지캐피털은 1999년 제일은행을 인수한 뒤 리스크가 큰 기업금융 대신 부동산 금융과 고금리 가계대출을 늘리는 데 집중했다. 기업금융의 대명사였던 제일은행은 그 과정에서 가계대출 전문은행으로 변모했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에 인수된 후에도 가계대출에 집중하는 모습은 여전해, 지난해 총여신 44조5117억 원 중 가계여신이 28조7211억 원으로 64.5%가량을 차지했다.

한국씨티은행 역시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기업여신을 줄이는 대신 매년 가계여신을 10% 이상 늘려오고 있다. 신한은행의 총여신 구성이 △대기업 20% △중소기업 40% △가계 40%, 또 우리은행이 △대기업 40% △중소기업 30% △가계 30%로 이뤄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국내 진출 글로벌 은행들은 개인신용대출과 신용카드, 주택담보대출 등으로 신용도가 높은 고객에게 마진이 높은 상품을 팔아 수익을 챙기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기업들이 빠른 회복세를 보이며 호조를 누리고 있는 반면 부동산 경기침체로 가계부문은 큰 타격을 입으면서 가계부문 중시 전략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SC제일 등 가계에 초점을 맞춘 은행들은 경제회복 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기업-중소기업-가계의 조화를 맞추며 여신 포트폴리오를 가져왔더라면 가계가 안 좋아지더라도 기업이나 중소기업을 통해서 수익성을 회복할 텐데 SC제일은행과 같이 가계에 중점을 둔 은행은 그것이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부동산 경기침체로 가계경기가 안 좋은 데다 가계 부채가 우리 경제의 최대 문제로 부각되면서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확장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이라며 “글로벌 은행들이 한동안 활로를 찾기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나친 성과 위주의 경영도 오히려 이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평가다. SC제일은행은 연봉제 도입을 앞두고 노조와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실적이 부진한 27개 영업점포를 폐쇄하기로 하면서 분란을 겪었다. 한국씨티은행은 노후화된 전산체계를 개선하지 않다가 지난해 12월 동파사고로 전산망이 중단되기도 했다.

안순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글로벌 은행들이 국내에서는 안정성을 추구하며 지나치게 가계여신에 치중하고 있다”며 “기업대출을 하지 않으면 대형 외환거래를 할 수 없는 등 은행 영업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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