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기자의 That's IT]보이스피싱에 날개 달아주는 SNS의 신상정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아들을 붙잡고 있다. 당장 돈을 보내라.”

청천벽력 같은 소리지만 요즘 우리는 이런 전화를 받으면 심드렁하게 되묻습니다. “아들 이름이 뭔데요?” ‘보이스피싱’이라 불리는 이런 사기 전화가 일상화됐기 때문이죠.

그런데 얼마 전 제 지인에게 묘한 전화가 한 통 걸려왔습니다. 유학을 간 아들을 붙잡고 있으니 돈을 보내라는 얘기였죠. 어느 나라로 유학을 갔는지, 아들의 이름이 뭔지 정확하게 알고서 돈을 요구하더라는 겁니다. “이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라는 아들의 다급한 목소리까지 들려줬다는군요. 물론 목소리는 가짜였고 아들을 붙잡고 있다는 것도 가짜였습니다. 하지만 이분은 감쪽같이 속아 돈을 보낼 뻔했습니다. 마침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식구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납치됐다는’ 그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한 덕분에 사고를 막을 수 있었죠.

사실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유학 중인 아들을 붙잡고 있다면서 발신자번호로는 한국 휴대전화 번호가 떴고, 목숨이 위태롭다는 협박을 하면서도 겨우 1000만 원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깜짝 놀란 부모 마음에 그런 사실이 냉정하게 들어올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역추적을 해봤습니다. 유학을 간 사실은 어떻게 알았고, 이름은 어디에서 확인한 것일까 궁금했거든요. 알고 보니 이 아들이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유학 간다는 사실을 널리 알렸더군요. 어느 학교로 가는지, 언제 가서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많은 정보가 공개돼 있었습니다. 검색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지를 바꿔 제가 보이스피싱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까요. 일단 손에는 전화를 걸 상대방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있을 겁니다. 이 리스트로 무작정 전화를 걸면 성공 확률은 극히 낮겠죠. 대신 이름과 전화번호를 구글 검색창에 하나씩 입력해본다면 어떨까요?

제 주소록에 있는 연락처들로 그렇게 해봤습니다. 그러자 빙고! 더러 검색에 성공한 사례가 나옵니다. e메일 주소나 인터넷 게시판 등에 사용되는 ID도 함께 검색되는 때가 많았습니다. 이제 이 ID를 구글에 넣어봅니다. 카페, 트위터, 페이스북…. 수많은 개인정보가 나타납니다. 거미줄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덕분에 이 사람 본인 외에도 그 친구와 가족들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생생히 알게 됐습니다. 전화번호와 이름만으로 찾아낸 정보입니다.

물론 이렇게 모조리 검색되는 것은 수십 건에 한 건 정도로 매우 드뭅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전화를 무작정 수십 통 거는 것보다 인터넷으로 키보드를 몇 시간 두드려보는 게 훨씬 성공 확률이 높을 테니 악당들은 충분히 해볼 만한 수고로 여길 겁니다.

인터넷으로 개인정보가 유출돼 피해를 보는 사람이 극소수라고 생각하셨다면, 인터넷으로 피해를 보는 건 유명인뿐이라 생각하셨다면, 인터넷에 쓰는 글이 별 게 아니라 여기셨다면 이제는 생각을 바꾸실 때입니다. 곧 전화가 걸려올지 모릅니다. 그건 독자 여러분을 잘 알게 된 악당의 전화일 겁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