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의 칼’도 비켜간 공기업 ‘낙하산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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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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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공정사회’ 강조한 8·15이후에도 23곳 중 14곳 정치권출신 임명

이명박 대통령이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공정한 사회’를 선포한 이후에도 일선 공공기관의 낙하산 인사 관행이 여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동아일보가 26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을 통해 감사직 현황을 분석한 결과 올 8·15 이후 감사를 교체한 곳은 모두 23곳이었다. 이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선거캠프 출신, 청와대 근무경력자, 보수계열 외곽조직 등을 거친 인사가 차지한 곳이 14곳(60.8%)에 달했다.

○10월 이후 심화된 낙하산

낙하산 인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및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등 초대형 현안이 사회적 관심을 압도한 10월 이후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의 9월 26일 조사 당시에는 8, 9월에 교체한 감사직 10개 가운데 낙하산으로 분류된 곳이 5개(50%)였다.

그러나 한국방송광고공사(한나라당 출신) 예금보험공사(청와대 출신) 한국전기안전공사(뉴라이트 전국연합 출신) 등 10월 이후 임명된 감사 13명 가운데 무려 9명(69.2%)이 범여권 인사였다.

 




▼ G20-연평도발로 정신없을때 ‘낙하산’ 더 심해져 ▼

청와대 안팎에선 실제 낙하산 비율은 이보다 높을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선 때 사정에 밝은 청와대 관계자는 “감사직을 받은 A 씨는 (이력에 정치 관련 내용은 없지만 실제론) 중부 지역에서 공식 직함 없이 선거를 도운 인물”이라고 말했다. 표면적으로는 공모를 거쳤지만 실상은 논공행상이 작용했다는 이야기다. 여권 인사는 “공개리에 활동한 인사들은 집권 1, 2년차에 기용된 경우가 많다”며 “3년차 후반부에 감사직을 받았다면 비공개리에 선거에 참여해 상대적 기여도가 떨어지거나 조용히 자리를 줘야 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설명했다.

현재 정부는 임기가 만료된 한국석유공사, 한국전력공사, 대한석탄공사,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등 4개 기관의 감사 임명을 위한 공모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10월 이후 기류에 적절한 제동이 걸리지 않는다면 이들 감사직도 대체로 정치권 인사로 채워질 개연성이 높다.

올 8∼12월 물러난 감사 23명은 집권 1년차인 2008년 임명돼 2년 임기를 마쳤다. 물러난 23명 가운데 정치권을 거쳐 온 인사는 16명이다. 올 8월 이후의 낙하산 실태를 그 전과 비교해 보면 조금은 줄었지만 ‘공공기관 감사직의 60∼70%는 낙하산’이란 공식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 청와대 내부 ‘낙하산 불가피론’도

10월 이후의 낙하산 심화 현상은 공정 의지의 퇴색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번을 포함해 청와대는 낙하산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인사 라인의 일’이라며 뚜렷한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한 고위 관계자는 26일 “대통령이 공정한 사회를 중요한 국정철학으로 삼은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등 굵직한 현안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며 개혁의지 퇴색으로 읽혀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다른 고위관계자는 “올여름 이후 쏟아진 현안이 많았다”며 “고위 참모회의에서 이 문제를 다루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사실 청와대 실무 참모들은 8·15 경축사 발표 후 내부 토론을 통해 ‘아주 오랜 관행’인 낙하산 문제의 해법 모색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결국은 “우리 정치 현실상 낙하산 관행을 아주 없애는 건 어렵다. 그렇다면 (부당하다고 느끼는) 국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할지를 찾아보자”는 ‘낙하산 불가피론’까지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즉 △역대 정권이 예외 없이 해온 관행이고 △대선 때 자기 시간과 돈을 써 가며 기여한 이들에게 적절한 보상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며 △다음 대선에서 ‘외곽 우군’ 확보를 위해서라도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청와대 내에도 적지 않다.

물론 공정한 사회를 천명한 이후로는 대놓고 공공기관에 가기가 훨씬 부담스러워졌다는 게 다수 한나라당 당직자들의 설명이다. 한 사무처 관계자는 “한나라당 출신으로 감사직에 임명된 이들은 국회 지식경제위, 기획재정위, 농림수산식품위에서 수석전문위원으로 일한 경력이 많아서 ‘전문성 없다’는 지적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감사직 보수는 삭감 추세

‘공기업 감사’ 낙하산에 여론의 질타가 집중되면서 최근 정치권에서는 민간기업 선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한 여권 인사는 “중간 규모 이하의 공공기관 상임감사직은 연봉이 1억 원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라며 “공공기관 대신 낙하산이라는 부담스러운 꼬리표를 피할 수 있는 민간기업에 자리가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물론 여권 핵심부의 후원을 받은 채 민간기업으로 건너간 사례는 아직은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향후 민간기업으로의 낙하산 현상이 나타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런 현상은 공기업 감사에게 지급되는 보수가 줄어든 것과 무관치 않다. 이 대통령은 2008년 4월 공공기관 임금체계의 손질을 지시했다. 한국전력 감사직은 2008년 12월 월급여의 20%가 삭감됐다. 기획재정부 집계에 따르면 공기업 상임감사의 연봉은 2008년부터 줄기 시작해 그해 1.2%, 2009년 19.4% 감소했다. 감사직 평균 연봉은 준정부기관이 1억2600만 원, 공기업은 1억1100만 원 수준이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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