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현대그룹 품으로]10년만에 되찾는 기업… ‘승자의 저주’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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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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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달예정 4조원 중 차입금이 3조원… 하한가로 반응한 시장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진짜 주인이 되기까지는 헤쳐 나가야 할 난관도 적지 않다. 우선 막대한 인수 자금을 조달해야 하고, 그룹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운영 자금도 추가로 마련해야 한다. 현대그룹의 인수를 반대하고 있는 현대건설 노조를 설득하는 일도 남아 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본입찰 직전 직원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미시온 쿰플리다(임무 완료를 뜻하는 스페인어)를 외쳐봅시다”라고 밝혔지만, 인수전 승리는 임무의 끝이 아니고 시작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승자의 저주’를 피하기 위한 현대그룹의 전략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3조 이상 차입 어떻게 해결할까

11월 초 현재 현대그룹이 보유한 현금은 1조5000억 원 수준이지만 현대건설 입찰가로 적어낸 금액은 5조5100억 원이다. 입찰 금액과 현금 보유액의 차이가 4조 원에 이른다. 이 4조 원 중에 자사주 신탁해지와 현대엘리베이터 채권 발행 등을 통해 1조2760억 원은 곧 확보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은 여기에다 현대상선 유상증자(4000억 원)와 기업어음(4500억 원) 발행을 통해 8500억 원을 추가로 조달할 계획이다. 현대상선과 거래가 있던 프랑스 나티시스 은행과 동양종합금융증권도 재무적 투자자(FI)로 유치했다. FI 두 곳에서 투자할 액수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합쳐서 1조 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현대그룹에서 조달 방법을 공개하지 않은 자금이 9000억 원 정도 된다. 현 회장은 동원 가능한 자금의 전액을 인수가로 써내는 ‘풀 베팅’을 한 셈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현대건설의 15일 종가 7만3100원으로 계산할 경우 현대그룹은 이 금액에다 95%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서 입찰가격을 써낸 셈”이라며 “국내 주요 인수합병(M&A) 가운데 최고 수준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내년 3월 말까지 인수 자금을 납부하더라도 그 이후에는 막대한 이자를 부담해야 한다. 5조5100억 원 중 기존 보유 현금(1조5000억 원)과 유상증자, 자회사 보유 지분 매각 등으로 마련하는 돈(약 1조 원) 등 2조5000억 원에는 이자가 없지만 회사채 발행이나 FI로부터 조달하는 자금 3조 원은 이자를 내야 한다. 외부 차입금 3조 원의 경우 금리를 연 5%만 적용해도 매년 이자가 1500억 원이다.

하지만 현대그룹은 국내 건설사 중 시공 능력 1위인 현대건설의 수익 구조가 견실하기 때문에 그룹 전체의 ‘캐시 카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국내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은 지난해에도 영업이익 4188억 원에 당기순이익 4566억 원의 실적을 냈다. 진정호 현대그룹 전략기획본부 상무는 “오랫동안 준비해 왔기 때문에 인수 자금 조달은 문제없다”며 “계열사와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는 인수 후 현대건설 자산을 매각할 것이라는 소문에 대해 “시장의 루머”라고 일축했다.

○ ‘승자의 저주’ 피하려면

현대그룹이 시장에서 평가하는 현대건설의 기업가치보다 상당히 높게 써낸 인수 가격에 대해 증권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16일 현대건설과 현대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주가는 가격 제한폭까지 추락했고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증권 등 다른 계열사들도 10% 이상 급락했다.

주식시장이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과거 사례에 의한 학습효과 때문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6년 6월 채권단이 보유한 대우건설 주식 72.19%에 대해 6조5000억 원을 제시하면서 3조 원이 넘는 돈을 FI들로부터 조달했다. 이 과정에서 FI들에게 2009년 11월까지 연이율 9%를 보장하는 풋백옵션을 체결했다. FI들에게 지나치게 유리한 이 옵션이 화근이 돼 우량기업이던 금호산업은 지난해 2조3000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냈고, 사실상 그룹 해체로 이어지는 결정타가 됐다.

2006년 홈에버를 인수한 이랜드, 2007년 남광토건을 인수한 대한전선, 2008년 하이마트를 인수한 유진그룹, 같은 해 대우조선해양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한화그룹 등이 모두 비슷한 고통을 겪었다.

M&A에서 승자의 저주가 반복되는 것은 기업들이 인수 욕심이 앞서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써 내는 게 1차 원인이지만 입찰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00점 만점 중 입찰 가격에 70점의 배점을 주는 기준을 계속 고수하는 한 기업의 재무건전성을 해치고 금융권만 배불리는 M&A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M&A 시장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가격에 높은 점수를 주는 배점 기준을 정책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16일 오전 현대그룹이 ‘골리앗’으로 비유된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을 누르고 현대건설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현대그룹의 한 직원이 휴대전화를 받으며 서울 종로구 연지동에 있는 본사 로비를 지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동영상=현대그룹, 현대건설 우선협상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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