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추가협상 결렬]시간은 모자랐고 정치적 부담은 버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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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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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前타결’ 데드라인 쫓겼는데… 이슈는 車→ 쇠고기로 확전
韓, 여론 의식 “협정문 손못대” 美 “의회비준 위해 부속서 필요”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배석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과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양국 통상장관은 정상회담 직전까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쟁점을 놓고 절충을 벌였지만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타결에 실패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배석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과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양국 통상장관은 정상회담 직전까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쟁점을 놓고 절충을 벌였지만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타결에 실패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되는 것을 안 된다고 하지 않았고 안 되는 것을 된다고 하지 않았다.”

한미 정상이 정치적으로 공언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 쟁점 합의가 1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끝내 나오지 못한 이유에 대해 정부의 한 협상전문가는 우회적 표현으로 답을 대신했다.

미국이 우리로서는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무언가를 요구한 것이 협의 중단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 그 ‘무언가’는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연료소비효율 규제 같은 ‘비관세 장벽’ 해소에서 더 나아가 점유율 확대를 위한 무리한 조건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연비 규제만 완화하면 될 줄 알았는데…

외교통상부는 당초 미국산 자동차가 한국에 수출되는 데 있어 몇 가지 애로사항이 있다고 해 이를 들어보려는 것이라고 한미 FTA 추가 논의의 성격을 규정지었다. 올해 여름부터 시작된 미국 측과의 세 차례 비공식 접촉 후 나온 발언이다.

이달 4∼7일 진행된 최석영 외교부 FTA교섭대표와 웬디 커틀러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보 간의 차관보급 실무회의 초기에는 자동차 안전기준과 연비, 온실가스 배출량 등의 환경 기준은 ‘조정 가능’하다는 입장을 공공연하게 밝혔다. 안전 및 환경 기준 조정을 협의의 범위로 제한하려는 일종의 선제공격이었던 셈이다.

8일부터 시작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론 커크 USTR 대표 간 통상장관회담 초기만 해도 이 전략은 먹혀들어 가는 듯했다. 오히려 이날 장관회담이 종료된 뒤 열린 언론브리핑에선 “(안전 및 환경 기준은) 우리 국민의 안전과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 등 정당한 정책 목표를 가지고 있다”며 “미국 측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진 않겠다”며 협상력을 더 높이는 듯했다.

하지만 9일 오전 우리 정부가 미국산 자동차의 연간 판매량에 따라 안전 기준에선 정부의 사전검사 대신 업체의 자기인증 후 사후검사 인정, 환경 기준에선 연비 및 온실가스 배출량 규제 적용을 최소 3년 이상 면제로 의견을 정리한 것이 알려지면서 협의가 급진전됐다. 언론들이 ‘사실상 타결’ 기사를 송고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러나 우리 측의 기대와 달리 미국의 요구는 오히려 우리의 환경 및 안전 기준 완화 합의 이후 쏟아졌다. △우리나라의 수출 촉진 정책 중 하나인 관세 환급제 축소 △한국산 픽업트럭에 대한 25% 관세 유지는 물론 긴급 수입규제 조치에 이르기까지 그전에 합의한 내용을 번복하라는 요구가 이어졌다. 한마디로 미국 자동차 시장의 빗장은 더 걸어 잠그고 한국 자동차 시장은 활짝 열라는 것이었다.

결국 통상장관회담은 하루 더 연장돼 10일에도 열렸지만 자동차 분야 협상이 더 진전되지 않자 미국은 쇠고기 카드까지 들고 나왔다. 한국은 미국이 협상을 타결시킬 의지가 없다고 판단하고 협상을 거부했다. 양측은 심야에 만나 한 차례 협의를 더 했지만 의견차는 끝내 좁혀지지 않았다.

○ 시간 부족, 정치적 부담도 원인

물리적 시간 자체가 처음부터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서울 G20 정상회의 전 한미 FTA에 대한 양국의 이견을 해소하면 좋겠다’며 사실상 타결 시점을 11월로 못 박은 때는 올 6월 토론토 정상회담. 양국 의회와 여론의 초미의 관심사인 쇠고기와 자동차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데 불과 5개월의 시간이 주어진 셈이었다.

그나마 이 5개월 중 3개월은 샅바싸움에 썼다. 미국은 뭘 원하는지 구체적 안을 제시하지 않은 상태로 시간을 끌었고 우리 정부도 ‘먼저 논의하자고 한 사람이 안을 제시하지 않았는데 할 이야기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양측은 한 차례의 전화통화와 일본, 프랑스에서의 짧은 만남 등 세 차례의 비공식 접촉을 거치고 난 뒤인 지난달 26일에서야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첫 공식협의를 시작했다.

양측의 정치적 부담도 문제였다. 한국은 야당과 여론의 재협상 논란을 의식해 ‘점 하나라도 고칠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미국은 의회 비준을 위해 강력한 구속력이 담보된 부속서 형태의 합의가 필요했다.

기존에 체결됐거나 향후 체결될 FTA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았다는 전언도 있다. 이미 타결한 FTA에 대해 재논의하는 게 나쁜 선례가 될 수 있을뿐더러 한국과 FTA를 체결한 다른 상대국이 한미 FTA에서 미국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규정이 반영될 경우 추후에 같은 수준이거나 더 유리한 내용을 반영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결국 양측은 한미 FTA의 발효를 위해 양국 정상의 ‘정치적’ 의지도 중요하지만 여론과 의회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명분과 실리가 절실하다는 입장을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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