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노믹스’ 물경영 시대]<7·끝>싱가포르 ‘워터 허브’

  • Array
  • 입력 2010년 11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물 클러스터 구축… 아시아 금융허브 이어 ‘물 허브’로 키운다

오수가 식수로… 만성적인 물 부족 국가로 꼽히는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에서 물을 수입하는 동시에 빗물, 하수, 바닷물로 새로운 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 위 사진은 하수를 깨끗한 음용수로 바꾸는 싱가포르 물 재생공장이며 아래 사진은 바다와 맞닿은 강하구를 막아 빗물을 취수하는 싱가포르 마리나 저수지다.사진 제공 싱가포르수자원공사(PUB) 싱가포르=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오수가 식수로… 만성적인 물 부족 국가로 꼽히는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에서 물을 수입하는 동시에 빗물, 하수, 바닷물로 새로운 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 위 사진은 하수를 깨끗한 음용수로 바꾸는 싱가포르 물 재생공장이며 아래 사진은 바다와 맞닿은 강하구를 막아 빗물을 취수하는 싱가포르 마리나 저수지다.사진 제공 싱가포르수자원공사(PUB) 싱가포르=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싱가포르는 이웃나라인 말레이시아에서 물을 수입한다. 강우량은 많지만 빗물을 저장할 땅이 부족해 만성적으로 물 부족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싱가포르에 물 부족 위기는 오히려 기회로 작용했다. 물 확보를 위한 대형 프로젝트에 글로벌 물 기업을 끌어들이고 자국의 물 기업도 함께 육성하면서 싱가포르는 세계적인 ‘워터 허브(Water Hub)’로 도약했다.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부설 지역경쟁력센터와 글로벌 컨설팅회사인 모니터그룹이 세계 20개 물 경쟁력 선도국가(W20)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싱가포르의 물 산업 경쟁력은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 지멘스 등 글로벌 물 기업 유치

싱가포르는 이번 W20 조사에서 물 산업 집적효과 창출 여건이 가장 뛰어난 국가로 평가됐다. ‘물 프로젝트 투자-글로벌 물 기업 유치-산업 클러스터 구축-관련 기술 개발 및 대기업 육성-국제화’의 ‘워터 허브’ 전략을 추진한 결과다.

이달 초 찾은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 인근에 위치한 창이 물 재생 공장. 이곳에서는 싱가포르 전체 하수의 절반을 정수해 음용수 이상의 깨끗한 물인 ‘신생수(New Water)’로 바꾼다. 하루에 생산되는 물은 한국의 올림픽 수영경기장 320개를 채울 수 있는 양으로 이는 싱가포르 물 수요량의 40%가량에 해당한다. 첨단 분리막(membrane) 기술을 적용해 면적은 기존 물 재생 공장의 3분의 1에 불과하지만 정수 처리 용량은 더 크고 악취도 없다. 8년간 22억 싱가포르달러(약 1조9000억 원)가 투입된 이 공장의 건설에는 GE와 지멘스 등 29개 글로벌 기업과 300여 개 협력업체가 참여했다. 글로벌 물 처리 기술이 총 집결한 것이다.

용 웨이 힌 부사장은 “비슷한 프로젝트를 추진해 달라는 요청이 중동, 홍콩 등 각지에서 이어지고 있다”며 “글로벌 워터허브 구축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물 클러스터를 구축한 싱가포르는 글로벌 물 기업을 속속 빨아들이고 있다. 싱가포르 수자원공사(PUB) 산하의 연구개발(R&D) 센터인 ‘워터허브(Waterhub)’를 비롯해 싱가포르 전역에는 지멘스 워터 테크놀로지와 니토덴코 등 글로벌 물 기업과 연구센터 50여 개가 입주했다. 마이클 토 킴 혹 PUB 수석부사장은 “싱가포르는 물 관련 기술과 산업의 플랫폼으로서 글로벌 기업과 합작벤처를 만들어 세계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세계적인 물 기업을 키워라”

싱가포르는 정부 주도로 물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자국 대기업을 키우는 독특한 물 산업 육성 모델을 만들었다. 세계 물 시장에서 분리막 기술의 선두기업으로 꼽히는 하이플럭스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1989년 설립되어 비교적 역사가 짧지만, 연 매출 5억2500만 싱가포르달러에 이르는 글로벌 기업으로 컸다. 정부의 전략적인 지원이 이 회사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됐다.

해외 물 시장에 진출하려면 사업실적(track record)이 필요한데, 싱가포르 정부는 2002년 대규모 물 재처리 프로젝트와 2004년 세계 최대 담수화 플랜트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하이플럭스를 참여시켰다. 하이플럭스는 이를 바탕으로 2004년부터 중국, 알제리 등에서 40여 건의 수 처리 프로젝트에 뛰어들 수 있었다.

싱가포르 정부는 국가 차원의 물 산업 발전 전략도 일찌감치 마련했다. 물 기술을 3대 성장동력으로 정하고 2006년 범부처 차원의 환경·물산업육성위원회(EWI)를 출범시켰다. 2015년 물 산업을 통해 17억 싱가포르달러의 부가가치와 1만1000명의 고용을 창출한다는 목표도 함께 세웠다.

○ 핵심인재 확보해 영향력 확대

싱가포르는 이번 W20 조사에서 네트워크 조성, 물 관련 전문가 확보,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평가한 물 산업 집적효과 창출 여건 분야에서 전체 1위를 차지했다. 이는 싱가포르 정부의 치밀하고 파격적인 인재 확보 전략이 주효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싱가포르는 세계 물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매년 세계 물 정책 당국자와 기업인, 연구원 등 1만여 명이 모이는 ‘싱가포르 워터 주간’을 열고 있다. 이 행사에서 리콴유 전 총리의 이름을 딴 ‘리콴유 워터 상’도 수여한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 행사를 통해 올해 28억 싱가포르달러 규모의 투자계약을 성사시켰다.

또 싱가포르는 물 전문가를 유치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파격적인 혜택도 준다. 국내외 유수 대학의 물 관련 박사 과정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에게는 장학금을 제공한다. 최장 4년까지 학비 전액과 생활비까지 지원한다. 외국인도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 그 대신 장학금 수혜자는 학위 취득 후 일정 기간 싱가포르에서 일하게 해서 물 관련 지식을 자국으로 흡수하고 있다.

싱가포르=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 지자체별 ‘물 클러스터’ 추진… 중복투자 우려 ▼
한국형 모델 개발해야

동아일보 지역경쟁력센터와 모니터그룹이 세계 20개 물 경쟁력 선도국가(W20)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의 물산업 성장 잠재력은 14위로 평가됐다. 한국은 물산업의 성숙도, 자본 유치의 용이성, 인력 및 기술 발전 잠재력을 평가한 국가 산업제반 여건 분야에서는 11위였다. 하지만 물 관련 네트워크 조성, 물 전문가 확보, 정부의 정책적 지원 등 3개 항목을 평가한 ‘물산업 집적효과 창출 여건’ 분야에서는 14위에 그쳤다. 특히 내수시장 매력도와 국내 물기업의 해외 인지도가 크게 떨어졌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 물시장 규모는 세계 시장의 2.1%, 국내 물산업의 해외시장 점유율은 0.3%로 조사됐다.

물산업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리려면 ‘국내 내수시장 매력도 확대-물산업 클러스터 구축-핵심 인재 양성-해외 시장 인지도 확대’ 등의 단계적인 한국형 ‘워터허브’ 모델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현재 인천 대전 경북 제주 등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물산업 클러스터 구축이 추진되고 있지만 지역별로 제각각 진행되면서 중복 투자 우려도 나온다.

금융 지원시스템도 필요하다. 일본은 이달 초 정부와 민간 기업이 공동 출자해 물 관련 사업에 투자하는 최대 1000억 엔 규모의 ‘물펀드’를 설립하기로 했다. 물 관련 국제회의, 국제기구, 교육기관을 유치해 글로벌 물 전문가를 육성하고 국내 물산업을 해외에 알리는 노력도 시급하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 물 선진국 ‘워터허브’ 전략 3가지 모델 압축 ▼
싱가포르 정부주도… 호주 민간주도… 네덜란드 연구개발


동아일보와 미래전략연구소 부설 지역경쟁력센터와 모니터그룹이 세계 20개 물 경쟁력 선도국가(W20) 조사 결과 상위권 국가의 ‘워터 허브’ 전략은 △정부 주도 모델(싱가포르와 이스라엘) △연구개발 주도 모델(네덜란드) △민간 주도 모델(호주) 등 세 가지로 압축됐다.

이스라엘은 물산업을 국가 성장전략산업으로 선정하고 ‘인적자원 육성-연구개발 활동 강화-국내시장 혁신-세계시장 진출’의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물산업 육성 프로그램인 뉴테크(NEWTech)와 와테크(WaTech) 프로그램을 통해 물 관련 기술 수출액이 2005년 7억400만 달러에서 2008년 15억5000만 달러로 늘었다. 300여 개 물 관련 기술 기업의 60%가 2001년 이후 설립된 신생 기업이다.

네덜란드는 유엔 산하의 국제 물 전문가 교육기관인 유네스코-IHE를 운영하고 있다. 석·박사 학위 과정인 IHE는 1957년 설립 이후 163개국 출신 1만4500여 명의 물 전문가를 배출했다. 2004년 조성된 물 클러스터인 베취스도 있다. 다우, 하이네켄, 신젠타 등 80개 회사와 네덜란드 트벤터대, 델프트공대, 유네스코-IHE 등 14개 교육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호주의 대표적인 물 산업 클러스터는 1998년 조성된 ‘워터 인더스트리 얼라이언스’다. 프랑스의 베올리아 등 250여 곳 이상의 기업 및 연구기관이 입주해 있다. 이곳의 물 관련 기술 수출 규모는 4억 호주달러에 이른다.

델프트(네덜란드)=김유영 기자 abc@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