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환율전쟁’에 대처하는 정부의 자세가 보름 사이에 크게 바뀌었다. 보름 전만 해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는 “환율 이슈는 최대한 G20 테이블에 올리지 않는 게 낫다. 테이블에 올라와도 20개국 전원이 합의해야 성명서(코뮈니케)에 담기기 때문에 환율 조정안은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자율 조정을 1차로 시도하고, 실패하면 한국이 직접 중재안을 내서 타협을 유도하겠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한 번 해볼 만하다”고 말한다. 분위기가 180도 바뀐 셈이다.
이런 변화는 보호무역주의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한국이라는 공감대가 확산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2008년 말 글로벌 경제위기가 시작될 때 각국은 보호무역 배격에 손쉽게 동의했지만 경제가 회복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저마다 자국 통화 평가절하를 통해 수출을 늘리려는 보호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정부는 전 세계가 보호무역주의로 흐르면 결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43.4%로 G20 국가 중 최대다. 미국(7.5%)의 5.8배에 해당한다.
미국발(發) 보호무역주의의 불똥은 이미 한국 수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이 양적완화 정책을 펼치자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는 것. 18일 원-달러 환율은 1119.3원으로 지난달 1일(1184.7원)에 비해 65.4원 떨어졌다. 원화 가치가 절상되면 그만큼 수출 경쟁력이 떨어진다.
이명박 대통령이 환율 문제에 ‘정면 돌파’ 의지를 보인 것도 정부 당국자의 자세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은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환율전쟁 등으로 세계가 어려운 상황이다. 각국이 자기 나라가 살려고 보호무역을 주장하고 있어 이대로 가면 세계경제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이번 서울회의에서 국제공조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세계경제가 위축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G20 국가들끼리 환율에 대한 자율 조정을 이뤄내지 못하면 직접 나서 정상들 간 영상대화를 통해 한국의 중재안을 설명하고 합의를 이끌어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세계경제에서 가장 현안이 되고 있는 환율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12일 국무회의에 참석한 한 정부 당국자는 “이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 ‘보호무역 철폐론자’로 자리매김했는데 현재 환율전쟁은 보호무역으로 회귀하자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대통령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 환율 중재를 성공시키면 이 대통령의 국제 신인도는 또 한 단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2008년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스탠드스틸(Standstill·추가적인 무역보호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을 주장했고 당시 정상들이 발표한 공동성명서에도 관련 내용을 반영시켰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회의에서도 스탠드스틸과 관련해 한 단계 진전된 조치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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