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회의 ‘G20 최대 빅매치’로]환율 풀리면 한국 찬사…꼬이면 신흥국 한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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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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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최대 고비다. 한국이 국제사회에 우뚝 서느냐, 다시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하는지 며칠 후 판가름 난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의 한 관계자가 최근 사석에서 한 말이다. 환율 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열리는 G20 서울 정상회의는 이전 어느 국제회의나 정상회의보다도 세계 각국의 이목을 받고 있다. ‘흥행’ 걱정을 했던 한국 정부로서는 어찌 보면 다행스러운 측면도 있다.

하지만 환율 전쟁이라는 메가톤급 이슈가 터지면서 지금까지 착실히 준비해왔던 것들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G20 준비위 관계자는 “한국이 제대로 조율을 못하면 ‘역시 신흥국에 맡겨뒀더니 안되더라’라는 인식이 확산될 수 있다”며 “의제 한두 개를 합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국격(國格)이 융성하느냐 추락하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 정부, 환율 승부수 던지기

이번 정상회의에서 결론짓기로 한 의제는 모두 8개다. 초미의 관심사는 환율 문제를 다루게 될 ‘지속가능한 균형성장을 위한 G20 프레임워크’다. 환율 문제는 현재 미국 중국의 전초전을 넘어 유럽과 신흥국이 가세하면서 국가별 기세 싸움으로 번져가고 있다.

G20 준비위의 관심도 환율에 집중돼 있다. 우선 22, 23일 경북 경주시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에서 환율 전쟁 당사자들을 중심으로 자율적으로 갈등을 조정하는 1차 중재를 시도할 예정이다. 1차 자율 중재가 실패하면 환율 갈등 당사국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의장국 직권의 ‘중재안’을 정상회의에서 제기하고 합의를 시도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20개 국가가 지속가능한 균형성장을 위해 자국(自國)의 환율, 물가 등 거시경제정책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G20 사무국에 보고서를 제출한 것을 현재 분석 중이다. 각국 거시경제정책에서 최대한 공통분모를 뽑아내 환율 중재안을 만들어 폭넓은 지지를 얻는다는 계산이다.

사전 조율작업에도 이미 돌입한 상태다. 실무진들이 미국과 중국을 방문해 환율 갈등이 더 커지지 않도록 중재에 나서고 있다. 경주 재무장관회의에서 1차 중재가 실패하면 11월 초에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중재안을 내고, 그 안을 가지고 정상들 간 영상대화를 통해 사전합의를 이끌어내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이처럼 환율 중재에 ‘올인(다걸기)’을 하는 것은 국제적 관심사인 환율 문제를 조율해낸다면 ‘서울 컨센서스’는 G20 정상회의 역사에 길이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리더십을 세계에 알릴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존 커턴 G20 리서치그룹 공동디렉터는 지난달 말 방한해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환율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와중에 20개국 정상이 한국에 모이는 것은 정말 축복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정상회의는 한국의 리더십을 보여줄 좋은 기회”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환율 중재에 실패하면 ‘성과 없는 서울 정상회의’로 전락할 수 있다. 정상들이 환율 문제에 치중해 지금까지 준비해 왔던 다른 이슈조차 제대로 합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신흥국이 G20을 이끌기에는 아직 무리”라는 암묵적인 국제 룰이 생길 수도 있다.

○ 서울 G20 성공시켜야 회의론 잠재울 수 있어

장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16일(현지 시간)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린 연례 세계정책회의에서 “G20 차원에서 은행자본 규제에 많은 진전을 이뤘지만 거시정책 공조는 거의 이루지 못했다”며 “이 때문에 많은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자국의 이익이 걸려 있는 분야에선 공조가 힘들다는 G20의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G20 정상회의가 구속력이 없는 데다 경제 위기가 끝나면 지속되기 힘들 것이라는 회의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국이 환율 중재에 실패하면 G20 회의론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G20 정상회의가 명실상부한 글로벌 거버넌스의 핵심 기구로 자리 잡는 것도 물 건너 갈 수 있다. 서울 회의의 성공 여부가 G20체제의 시험대가 된 것이다.

정부는 이런 G20 회의론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환율 중재를 이끌어낸다는 계획이다. 환율 중재에 성공하면 일부 해외 언론에서 제기하는 ‘G20 멤버 교체설’도 한꺼번에 잠재울 수 있다. 해외 언론들은 한국, 일본,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 비중이 아주 높다고 계속해서 지적해왔다. 한국이 환율 중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낼 경우, 한국은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질적 성장을 이뤘고 선진국과 개도국을 잇는 연결 국가로 인정받아 안정적인 G20 멤버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커진다.

일각에서는 의외로 환율 문제가 예상보다 쉽게 조율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이 중간선거(11월 2일)를 앞두고 중국의 위안화 절상을 집요하게 요구한 만큼 중간선거가 끝나면 미국과 중국이 국내정치 변수에서 벗어나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캐나다 G20 정상회의 때처럼 중국이 위안화 절상에 대한 성의를 보이면서 환율 전쟁이 조기에 끝나는 시나리오도 예상할 수 있다. 이미 중국의 위안화는 지난달 2일 이후 절상 폭이 월 1%를 넘어섰다.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은 15일 성명을 통해 “9월 이후 위안화 절상에 속도를 낸 중국의 조치를 인정한다. 이 같은 과정을 지속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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