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 “日경제의 고통스러운 경험서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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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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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일방 매도한 것 후회 日 거울삼아 디플레정책 결정”
국채 추가매입 등 부양책 검토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1990년대 프린스턴대 교수 시절 일본의 경제 관리에게 잇단 쓴소리를 내뱉었던 석학이었다. 그는 장기 침체기에 접어든 일본 경제에 대해 “일본 스스로가 초래한 경제마비 현상”이라며 “(난국 타파를 위해) 일본 금융당국이 그 어떤 실험도 해보지 않으려는 태도가 놀랍다”고 비판했다. 당시 일본 정부의 대응에 대해서도 “일관성이 없고 혼란스러우며 지나치게 신중했다”고 노골적으로 지적했다.

그랬던 버냉키 의장이 최근 일본의 경제정책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4일 전했다. 그는 “과거 일본의 경제정책을 일방적으로 매도했던 것을 후회한다”고 하는가 하면 “일본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바탕으로 디플레이션 방어정책을 결정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WSJ는 이를 바탕으로 향후 FRB의 경제정책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미국 경제 상황은 과거 일본과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1990년대 일본과 최근 미국을 비교해 보면 더딘 성장세와 고실업 행진, 인플레이션 속도 둔화 등 각종 경제 관련 그래프가 유사한 곡선을 그린다. 양국 모두 부동산 같은 자산시장의 거품 붕괴, 이로 인한 금융 시스템의 피해를 경험했고 이후 제로금리 정책을 시행한 점,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주요 통화 보유국이라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지닌다.

일본의 경우 1989년 증시가 최고점을 찍은 데 이어 2년 뒤 자산 거품이 붕괴됐다. 이후 연간 평균 경제성장률이 0.7%에 머물렀고, ‘잃어버린 10년’ 중 7년은 소비자물가지수가 하향세를 그렸다.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200%를 넘어섰다. 일본 정부는 이 기간 제로금리에 가까운 초저금리 정책을 유지하고 국채 매입 같은 경기부양책을 지속적으로 폈지만 역부족이었다.

당시 버냉키 의장은 “디플레이션이 장기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계와 기업에 심어줘 경제활동의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선 3% 내지 4%의 인플레이션을 공개 목표로 잡고 공격적인 경기부양책을 유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2000년 일본 경제가 회복되는 것처럼 보였을 때 정부가 금리 인상으로 선회한 것인 시기상조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오늘날 일본과 같은 처지에 놓인 미국에서 버냉키 의장은 자신이 과거 일본에 제안한 정책을 실행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중앙은행(BOJ)에 근무했던 오키나 구니오 씨는 “책임질 필요 없이 토론만 하는 것과 실제 자신들이 해결 부담을 지고 문제에 직면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과거 일본의 경제정책을 비판했으나 최근에는 일본 경제에서 미국의 해답을 찾고있는 밝힌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동아일보 자료 사진
과거 일본의 경제정책을 비판했으나 최근에는 일본 경제에서 미국의 해답을 찾고있는 밝힌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동아일보 자료 사진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어떻게 종료할지 고민하던 미 금융당국은 경기가 다시 악화되면서 이제는 정반대로 디플레이션 해법에 골몰해 있다. 추가 경기부양책으로 국채를 다시 사들이는 방안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WSJ는 “버냉키 의장의 최대 과제는 미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이는 당사자 옆에서 조언만 해주던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점을 입증했다”고 꼬집었다.

이를 바라보는 일본의 시각은 어떨까. 후쿠이 도시히코 전 BOJ 총재는 “버냉키 의장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그가 예전에 나에게 해줬던 바로 그 말”이라고 말했다. “결단력을 가지라”는 것이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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