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세미테크 퇴출 통해 본 코스닥 시스템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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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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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감사와 짜고 치면… 속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몇 차례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이 회사를 방문해 한국의 대표 ‘녹색성장’ 기업으로 칭찬했다. 지경부는 이 회사의 제품을 차세대 세계일류 상품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출범한 지 10년밖에 안 되었지만 비약적으로 성장해 최근 2년 연속 연 매출액이 1000억 원을 넘었고 흑자를 내고 있다고 회사는 공시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거짓이었다면?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다. 23일 코스닥시장 퇴출이 결정된 태양광 장비업체 네오세미테크가 그 주인공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10월 6일에는 주가가 1만7800원(액면가 500원)까지 뛰어 시가총액 6288억 원으로 13위에 오르기도 했다. 상장폐지로 인한 파장은 엄청나다. 녹색성장 기업이 속속 발표하는 장밋빛 실적을 보고 하나 둘 뛰어든 투자자가 무려 7287명이다. 3월 24일 매매거래 정지 당시 소액주주가 보유한 주식이 약 3022만 주, 주가는 8500원이었으니 단순 평균만 내도 1인당 3500만 원가량이 물려 있는 셈이다. 퇴직금, 자녀 학자금 등 저마다 사연 많은 돈을 투자했던 사람들은 25일 개시되는 정리매매를 통해 투자금의 일부라도 거둬들이든가 소액주주로 남아 있으면서 소송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게 됐다.》

○“어디를 믿으란 말이냐”

청와대 게시판으로, 인터넷 카페로 모여든 투자자들은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상당수는 “공시 내용과 코스닥 심사 결과나 기업의 실적을 믿은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라며 “한국의 금융시스템을 아예 믿지 말라는 소리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작게 보면 한 비정상적 회사의 ‘사기극’이지만 이 안에 코스닥의 모든 문제점이 녹아 있다. 기업과 유착되기 쉬운 회계감사 시스템, 이를 감독해야 할 금융당국의 허술함, 빠져나갈 구멍이 많은 코스닥 우회상장제도가 이번 사태의 주역이다. 기업이 책임져야 하는 공시제도의 허점, 성장성만 믿고 무조건 뛰어드는 투자행태, 한 번 인정받고 나면 검증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사회적 검증시스템의 부재는 조연쯤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부실한 회계감사-허술한 감독기능

“제가 이 회사에 투자한 게 벌써 5년째입니다. 이 회사야말로 차세대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회사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 같은 투자자들의 믿음은 탄탄한 기업실적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실적은 온통 부실투성이인 재무제표에 의존한 것이었다.

네오세미테크는 지난해 9월 코스닥시장에 진입했다. 당시 코스닥 상장사였던 모노솔라에 인수합병되는 형태로 우회상장을 한 것이다. 2008년까지 네오세미테크가 공시했던 기업 실적을 보면 이 회사는 2007년 이후 비약적 발전을 했다. 2007년 매출액 314억 원, 당기순이익 24억 원이던 네오세미테크는 2008년 매출액은 1032억 원, 당기순이익은 230억 원으로 매출액으로는 3배, 순이익으로는 10배 성장했다. 2009년 매출액도 1453억 원, 당기순이익은 245억 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나온 반기보고서에서 지난해 매출액은 당초 주장의 10분의 1 수준인 187억 원, 이익은 무려 837억 원의 적자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2008년도 매출액은 312억 원에 273억 원 적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10년째 계속 외부감사를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숫자가 틀릴 리가 있겠습니까.”

3월 말에 있었던 주주총회에서 당시 오명환 대표이사가 주주들에게 한 말이다. 그런데 그럴 수 없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회계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이라고 보고 있다. 대형 회계법인들은 그렇지 않지만 난립하는 군소 회계법인 가운데는 기업과의 계약을 연장하기 위해 회계감사를 대충 보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문제는 비상장 회사의 경우 부실한 회계감사를 감독할 책임이 금융당국이 아닌 공인회계사회에 있는데 같은 식구끼리 굳이 감리를 세게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네오세미테크의 분식회계가 1, 2년에 걸친 일이 아닐 수 있었던 이유다.

○수술이 필요한 총체적 난관

부실회계로 얼굴을 꾸민 비상장법인이 우회상장을 통해 대중 앞에 설 때까지 아무런 제재가 없었다는 점도 문제다. 현재 코스닥시장에서 우회상장할 때는 11가지 합병요건에만 맞으면 상장심사 없이 통과된다. 심사는 없고 규정만 있어 분식회계의 유혹은 더 커진다.

상장 이후 이 회사는 대규모 매출 계약 공시를 수시로 했으며 거래정지되기 불과 한 달 전에 매출액 1000억 원의 2배 이상인 2298억 원의 대규모 매출거래 계약을 중국업체와 했다고 공시했다. 지금 보면 매출액의 20배가 넘는 계약으로 거래소 관계자는 최근 “모두 거짓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왜 못 잡았을까. 거래소 측은 법적으로 공시의 책임은 모두 해당 기업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금감원 등은 수사권이 없어 공시의 진위를 판단하기 어렵고 실제로 불법성이 드러난 경우 검찰에 수사의뢰를 할 뿐이라고 한다.

이 회사는 지난해 12월 한 대형증권사를 통해 전환사채(CB)를 발행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CB 발행을 다른 증권사는 매출계약이 불분명하다며 거절한 사실이 드러났다. CB를 발행해준 증권사는 “상대방과의 계약서가 있었고 신용평가사의 평가까지 받았으며 은행의 송장까지 확인했다”고 했지만 “계약서가 진짜인지를 확인할 이유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선 ‘불친절한’ 숫자 위주의 표만 덩그러니 발표하는 현재의 공시제도로는 투자자들의 눈을 키우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준기 삼일회계법인 파트너는 “현재의 재무보고서로는 전문가조차도 한눈에 부실징후를 조기에 파악하거나 방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최소한의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사업보고서를 발표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기업은 실적발표를 통해 사업보고서 설명을 하지만 중소기업은 실적발표만 올리면 그만인 상황이다.

이와 함께 우회상장 때도 신규상장과 마찬가지로 상장심사를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우회상장 기업의 사기 행태를 줄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대부분 투자자는 공시를 진실이라고 믿기 때문에 허위공시를 한 경우 바로 퇴출조치를 하는 금융감독 당국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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