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세’ 어떤 방식 가능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15일 17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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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세는 정부 관료의 머리에서는 쉽게 나올 수 없는 구상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큰 숙제'를 내준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그날(통일)을 대비해 이제 통일세 등 현실적인 방안도 준비할 때가 됐다"고 밝히자 경제부처 당국자들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통일 리스크 대비'라는 당위에는 공감하지만 그 실천방안(통일비용 마련)을 만들어내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우선 통일세와 기존 남북협력기금 간의 차별성을 어떻게 국민에게 설명할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된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남북협력기금은 분단상황을 관리하는 기금이고, 통일세는 훗날 통일 이후에 쓸 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통일세든, 남북협력기금이든 '아직 가시화되지 않은 통일'과 관련해 국민이 부담하는 돈이란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1991년부터 조성된 남북협력기금은 올해 6월 말까지 총 9조9490억 원이 모였고, 이중 5조5436억 원이 대북 인도적 지원 등에 사용됐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은 "통일세 논의를 본격화하려면 먼저 '그동안 남북협력기금은 어떻게 쓰였고, 통일을 어떻게 대비해왔는가'라는 성찰과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둘째 통일세 신설이 가져올 국민경제적 부담과 그에 따른 조세 저항도 정부가 풀어야 할 큰 숙제다. 한 조세 전문가는 "통일세를 걷어서 비축한다면 그만큼 한국 경제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런 부담은 통일 이후에나 지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독일의 경우 동서독 통일(1990년) 직후인 1991년 소득세 및 법인세에 7.5%씩 '통일연대 부과금'을 1년 간 매겼을 때는 조세 저항이 거의 없었으나 1995년 다시 똑같은 '통일세'를 부활시켰을 때는 상당한 반발이 있었다.
이 때문에 '통일비용 마련 방식이 꼭 세금이어야 하느냐'는 의견도 있다. 독일의 통일비용 마련 방식에서도 조세(약 27%)보다 국채발생(약 53%) 비중이 더 컸다. 국채발행 이외에도 △유휴 기금의 활용 △공기업 매각 △사회보험료 인상 등 다양한 방법을 총동원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통일비용 마련에 대한 대국민 설문조사를 해보면 통일복권 발행이나 각종 기존복지기금 활용 등 세금 인상 이외의 방안에 대한 찬성이 훨씬 많다"고 전했다.

이런 쟁점과 논란을 극복하고 통일세가 신설된다면 간접세인 부가가치세를 인상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여권의 한 관계자는 "부가세를 2,3%포인트 정도 올리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목적세 형식을 취하면 조세저항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정부의 부가세 예상 수입은 48조7000억 원으로 전체 국세 수입(171조1000억 원)의 28.5%를 차지한다. 부가세 세율을 2%포인트만 올려도 연간 세수가 약 10조 원 늘어난다. 또 한국의 부가세 세율은 1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7%)보다 낮다.

그러나 각종 제품이나 서비스에 부과되는 부가가치세는 고소득층보다 중·저소득층에게 더 큰 부담이 된다는 근본적 문제가 있다. 부가가치세 인상은 물가 상승과 가처분소득 축소로 이어진다. 그래서 경제계 일각에서는 1990년 12월 폐지된 방위세 제도의 부활을 고려하는 등 다른 방식의 '통일세'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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