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완’ 파워 부상… 한국기업 역풍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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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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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대만, 경제협력기본협정 체결 ‘눈앞’

《한국 기업을 대표하는 삼성그룹과 LG그룹이 중국 앞에 쩔쩔매고 있다. 중국 정부가 당초 3월경으로 예정됐던 액정표시장치(LCD) 생산 공장 설립 인가를 하염없이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장쑤(江蘇) 성 쑤저우(蘇州)에, LG디스플레이는 중국 광둥(廣東) 성 광저우(廣州)에 공장 설립 의향서를 내놓은 상태. 삼성과 LG는 서로가 라이벌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정작 강력한 라이벌은 따로 있었다.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밀월 관계에 따라 부상한 대만 기업들이다. 중국이 대만 기업까지 포함시켜 열심히 저울질하는 바람에 발표가 미뤄지고 있는 것이다.》

양안 저관세-연구개발 협력
한 국제품, 中내수 위축 우려

삼성-LG “대만공세 막아라”
中 LCD 생산공장 설립 총력

중국 상하이엑스포장에선 대만관이 중국관(오른쪽 빨간 건물) 바로 옆에 마련돼 눈길을 끌었다. 대만은 이곳에서 첨단 정보기술(IT)이 들어간 대형 구와 중국 전통을 접목시킨 콘텐츠로 중국 관람객들의 호감을 샀다. 상하이=조은아 기자
중국 상하이엑스포장에선 대만관이 중국관(오른쪽 빨간 건물) 바로 옆에 마련돼 눈길을 끌었다. 대만은 이곳에서 첨단 정보기술(IT)이 들어간 대형 구와 중국 전통을 접목시킨 콘텐츠로 중국 관람객들의 호감을 샀다. 상하이=조은아 기자
삼성 관계자는 “중국 투자 우선권이 과거에는 중국 내수 기업, 한국 기업, 대만 기업 순으로 주어졌지만 이제는 양안 관계가 좋아지며 한국과 대만의 순서가 역전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삼성그룹 사장단은 최근 회의에서 ‘양안 관계’에 대한 강연을 듣기도 했다. 차이완(China+Taiwan)의 부상에 전사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 차이완 연합군, 한국 IT를 공격

한국 기업들이 ‘차이완 연합군’에 최근 더욱 긴장하는 이유는 양국이 이달 안에 경제협력기본협정(ECFA) 체결을 목표로 협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협정이 체결되면 대만은 500개 주요 품목을 중국 시장에서 낮은 관세로 수출할 수 있다. 양안 간의 관세, 세제 특혜로 대만은 중국 내수시장을 무서운 속도로 잠식할 수 있는 것. 반대로 중국은 대만과의 연구개발(R&D) 협력을 강화해 저가 경쟁력, 고(高) 기술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차이완의 본격적인 부상으로 가장 타격받는 건 한국 기업들이라고 입을 모은다. 중국 시장에서 한국 기업은 일본 기업에 비해 대만 기업과 더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 대만이 중국의 힘을 입으면 한국 기업은 중국 내수에서는 물론이고 세계 시장에서 삐걱거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차이완의 협공은 삼성과 LG가 학수고대하고 있는 LCD 분야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난달 18일 중국 13억 인구의 이목이 집중된 중국 상하이 엑스포장에서는 차이완 파워를 입고 발광다이오드(LED), 4차원(4D) 기술 등에서 약진을 꿈꾸는 대만의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

엑스포의 주연 격인 ‘중국관’ 옆에는 미국관이나 일본관이 아닌 ‘대만관’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딱 붙어 있었다. 대만이 엑스포에 참가한 것은 40년 만의 일이다. 대만관이 중국인들에게 선보인 메시지는 간소하면서도 강렬했다. 바로 지름 16m에 130t이 나가는 대형 구(球) 하나가 대만관의 유일한 장식품이었다. 대만관은 이 구를 ‘4D구 영화관’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3D 영상에 꽃향기와 빗물 등의 효과를 얹어 4D라는 설명이었다.

구 안으로 들어서니 중국과 동질감을 강조하는 듯 대만의 전통문화와 자연에 대한 영상이 상하좌우에서 펼쳐졌다. 영상에 따라 머리 위에선 실제로 빗물이 떨어지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대만의 정보기술(IT)을 중국인에게 뚜렷이 각인시킨 이 영화관은 대만 중소업체 ‘YAOX5D’의 작품이다. 케빈 푸 대만관 홍보 매니저는 “이 회사가 4D구를 선보인 것은 이번 엑스포가 처음”이라며 “중국 소비자들에게 대만 IT의 우수성을 알릴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그는 “하루 평균 4000명 이상의 중국인이 다녀가며 ‘대만 문화가 중국과 친숙하다’고 얘기를 하곤 한다”고 덧붙였다.

대만은 ECFA 이후 특히 중국 시장의 IT 분야에서 선전(善戰)을 기대하고 있다. 실제 양국의 경제 협력이 진전되면서 대만의 전체 IT 수출에서 대(對)중국 비중은 2001년 3.4%에서 2009년 21.6%로 크게 상승했다. IT산업 환경이 비슷한 한국으로부터 앞으로 경쟁 우위를 빼앗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중국 기업도 대만과의 협력이 반갑다는 분위기다. 상하이 엑스포에서 기자와 만난 중국 최대의 PC업체 레노보의 마오쉬지 무선인터넷 담당 디렉터는 “현재 양국 간에 R&D 협력은 진행되고 있지만 중국의 연구 인력이 직접 대만에 가지는 못하고 있다”며 “ECFA가 체결되면 대만에서 기술을 배우는 중국 고급 인력이 많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 석유화학 분야도 대만 활약 예고

중국 내수시장에서 대만과 순위 다툼이 치열한 석유화학 업계도 ECFA에 대한 우려가 짙다. 조형일 석유화학공업협회 대외협력본부장은 “석유화학 분야는 품질 차이보다 가격 경쟁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관세가 줄어 대만산의 가격이 떨어지면 영향이 클 것”이라며 “중국이 제1의 시장이기 때문에 다른 국가로 수출 다변화를 꾀하더라도 한계가 있다”고 털어놨다.

중국 서비스시장에서 대만의 활약도 예고된다. 대만무역진흥기관인 타이트라(TAITRA)의 추휘리 상하이관장은 “과거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던 시대에는 한국이나 일본이 제조업에서 중국을 활용할 수 있어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며 “중국이 ‘세계의 시장’이 되고 서비스 시장이 커지면서 문화적으로 유사한 대만이 상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만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팀장은 “ECFA가 체결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한국은 양국이 무관세화에 합의할 품목을 세밀하게 모니터링하고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 참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하이=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중국-대만 경제협력기본협정(ECFA·Economic Cooperation Framework Agreement)::

중국과 대만이 추진 중인 일종의 자유무역협정(FTA). ECFA가 체결되면 양국 간 관세 감면, 투자, 지적재산권 보호 강화 등이 이뤄짐. 이달 안 협정 체결을 목표로 협상이 진행 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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