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아이패드, 보름간 직접 써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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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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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량은 늘었는데 집중 안돼 책 완독 못해

아이폰, 속보만 찾아 읽었지만 아이패드, 기획기사까지 검색
매일 수십편씩 쌓이는 글들 페이지 ‘건너뛰기’ 점차 늘어

《스마트폰을 사기 전 내 일상은 이랬다. 출퇴근길에는 가방에 넣어둔 책 한 권을 꺼내 읽었고 저녁이면 친구들과 맥주 한잔을 기울였다. 가방에는 노트북컴퓨터가 들어있었지만 출근한 뒤에야 밖으로 나왔고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기사를 쓰거나 정보를 검색하긴 했지만 기계가 내 생활을 지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블랙베리와 아이폰 등 스마트폰을 쓰게 되면서 내 일상은 조금씩 달라졌다. 출퇴근의 동반자였던 책 한 권은 슬쩍 가방에서 사라졌고 그 자리를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대신했다.
책을 읽던 시간은 각종 뉴스와 트위터의 140자짜리 짧은 글을 보는 것으로 대체됐다. 아이패드를 사게 된 건 이런 습관이 일상화됐을 때였다.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하루 종일 들여다보며 살게 된 것이 지난해 8월 말 블랙베리를 사면서부터였고 11월 말에는 유행을 따라 아이폰으로 기계를 바꿨다. 그리고 지난달 말 아이패드까지 사게 된 것이다.》
○ 되찾은 ‘읽는 시간’

아이패드라는 기계에 대해 더 할 말은 별로 없다. 아이패드는 화면이 큰 아이폰처럼 보였고 실제로도 그랬다. 심지어 아이패드 박스에는 사용설명서도 없었다. 모든 게 아이폰과 똑같아서 새로 배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이 기계를 소비하는 방식이었다. 아이패드를 손에 든 나는 여전히 출퇴근길에 뉴스를 읽고 e메일을 확인했다. 아이폰을 쓸 때와 똑같으려니 했는데 조금 지나 보니 뭔가 근본적으로 바뀐 느낌이었다. 물론 한손으로 들기엔 약간 무거운 느낌이고 배터리가 아이폰보다 훨씬 오래가는 등 기계 자체가 달라졌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깨달은 건 보름 만이었다. 더는 쓰지 않는 서비스와 다시 사용하게 된 서비스가 생긴 것이다.

더는 쓰지 않게 된 대표적인 서비스는 ‘미투데이’였다. 미투데이는 트위터와 비슷한 네이버의 단문메시지 서비스다. 트위터에 주로 진지하고 정보를 담은 공식적인 글들이 올라온다면 미투데이에는 친근하고 정서를 담은 개인적인 글들이 올라온다. 따라서 아이폰만 사용하던 시절에는 트위터보다 미투데이를 열심히 썼다. 트위터를 하다 보면 ‘일’을 하는 느낌이 드는데 미투데이는 ‘놀이’를 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패드를 들고 다니자 놀이를 할 시간이 사라졌다. 읽어야 할 글과 봐야 할 동영상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다 보니 수다를 떨 시간부터 줄이게 된 셈이다.

그 대신 아이폰을 쓰면서 한동안 멀리 했던 ‘구글리더’를 다시 쓰게 됐다. 구글리더는 자주 찾는 블로그를 등록해두면 그 블로그에 새로 올라오는 글들을 자동으로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배달해주는 서비스다. 아이폰을 쓰게 되자 긴 글을 오래 읽어야 하는 구글리더를 점점 보지 않게 됐다. 하지만 아이패드는 구글리더와 함께 ‘읽는 즐거움’을 되찾아줬다. 아이폰에서는 ‘속보’만 찾아 읽었는데 아이패드에서는 ‘기획기사’를 검색하게 됐다. 아이패드는 내게 무언가를 ‘읽을 시간’을 다시 돌려줬다.

번역될 때까지 시간이 걸리거나 번역돼 소개되기 힘들 법한 해외 전문서적들을 빠르게 구해 볼 수 있게 됐다는 건 장점이다. 과거에는 외국서적을 사려면 주문을 넣은 뒤 일주일에서 길게는 한 달 가까이 기다려야 했다. 비싼 배송비도 주문자 부담이었다.

하지만 아이패드는 종이책보다 싼값에 외국 신간을 한국에서도 동시에 구하도록 해줬다. 학자나 전문 연구자들에겐 특히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또 아이패드의 전자책 상점인 ‘아이북스’에서 구입한 책들은 ‘검색’도 가능하다. 한 번 읽었던 책에서 특정 부분을 다시 뒤지느라 고생했던 사람에게는 쓸모 있는 기능이다.

○ 잃어버린 ‘집중’

하지만 문제도 많았다. 대표적인 문제가 한글이었다. 아이패드는 아직 정식 수입되지 않은 탓에 한글을 읽을 수는 있어도 쓰는 기능이 없다. 따라서 한글을 쓰려면 별도의 한글입력 응용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한다. 또 전자책 사업이 국내에서도 최근 시작되기는 했지만 읽을 만한 한글 전자책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또 아이패드를 쓰고 난 뒤 한 번 손에 잡은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하는 경우가 점점 줄어들었다. 보름 동안 아이패드를 쓰면서 이 기계로 책 한 권은 물론이고 긴 잡지 기사 한 편조차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경우가 거의 없었다. 나는 마치 MP3플레이어에서 곡 하나를 제대로 끝까지 듣지 않고 건성으로 넘길 때처럼 책 페이지도 건성으로 ‘건너뛰기’ 하기 시작했다.

물론 ‘검색’해서 필요한 부분만 읽는 일은 많아졌다. 소비하는 콘텐츠의 양은 훨씬 늘어났다. 유튜브를 통해 쏟아지는 수많은 동영상과 구글리더에 매일 수십 편씩 쌓이는 글, 외국 신문과 잡지까지…. 하지만 이 과정에서 지식이 소화됐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고 나는 전보다 더 바빠졌다.

이 기계가 사람들의 삶을 수많은 콘텐츠로 더 풍요롭게 할지, 아니면 그저 인생을 산만하게 만들지는 아직 미지수다. 아이패드는 그 변화의 문턱을 막 열기 시작한 기계 같았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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