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 ‘월급 CEO’에서 벤처기업인 변신 김동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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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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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억 원 투자해 C&S테크 최대주주로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에 여생 전력투구”

“은퇴하고 인생 즐기기엔 60살은 너무 젊은 나이”
“노년에 거리 나앉을까 봐 집사람은 걱정이 태산”

3월 코스닥시장에서 ‘C&S테크놀로지’라는 벤처회사가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이 회사 회장에 김동진 전 현대모비스 부회장(60·사진)이 취임했기 때문이었다.

김 회장은 지난달에는 60억 원이 넘는 돈을 투자해 이 회사 주식 100만 주(3.78%)를 사들였다. C&S테크놀로지 주식 5.04%를 갖고 있던 그는 추가 지분 매입으로 8.82%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됐다. 최대주주가 되기 위해 투자한 돈은 총 120억여 원이다. 대기업의 ‘월급쟁이 최고경영자(CEO)’에서 벤처기업의 ‘최대주주 CEO’가 된 김 회장을 최근 서울 송파구 문정동 C&S테크놀로지 사옥에서 만났다.

김 회장은 “은퇴하고 아무것도 안 하기에는 내 나이가 젊어서 자동차 산업에 몸담았던 경력도 살리고 국가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 뭘까 생각했다”며 “국내 자동차산업의 숙원인 차량용 반도체를 국산화하는 데 남은 인생을 걸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말 현대모비스 부회장에서 물러났다. 1972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연구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1979년 현대정공(현대모비스의 전신)에 이사로 입사해 30년 넘게 현대·기아차그룹에 몸담았다. 현대차 사장과 총괄 부회장을 지낼 때는 현대·기아차그룹의 ‘2인자’로 통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전 재산을 투자했기 때문에 집사람이 ‘노년에 길거리에 나앉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더라”며 “모든 열정을 쏟아 부어 회사도 키우고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도 이뤄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자동차 관련 일을 하더라도 현대차 부회장까지 지낸 사람이 다른 사람이 하고 있는 사업을 하면 남의 밥그릇을 빼앗는 게 되지만 차량용 반도체는 아무도 하지 않던 일이어서 신시장 개척”이라고 강조했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거의 전량을 수입해서 사용한다. 메모리 반도체에 특화된 삼성전자나 하이닉스는 자동차에 들어가는 비메모리 반도체의 비중이 매우 작다.

김 회장은 “문제가 생겨도 외국 반도체 회사에서 기술자를 보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기술 종속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었다”라며 “현대차에 있을 때 차량용 반도체를 국산화하기 위해 국내 반도체 벤처기업의 설계 기술을 모두 시험했고 가장 가능성 있는 회사로 C&S를 선정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위성 DMB용 반도체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설계 기술 능력은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현대차와 공동으로 차량용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다. 현재 개발 중인 6개 제품 중 1개는 올해 말 현대차에 납품할 수 있을 것으로 김 회장은 전망했다.

그는 “38년 동안 월급을 받다가 직원 150여 명에게 월급을 주는 일이 쉬운 게 아니지만 시간을 내가 알아서 사용할 수 있는 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날 낮 12시 10분경 시작한 김 회장과의 점심 식사는 오후 2시가 넘어서 끝났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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