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세계인의 술로/2부]<3>日, 음식 세계화로 술도 세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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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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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밥엔 사케가 있어야” 세계입맛 잡은 패키지 마케팅

《14일 오전 9시 일본 니가타 현 니가타 시 시나노 강변의 대형 전시장 도키메세. 일요일인 데다 개장 시간을 한참 앞둔 이른 시간이다. 그런데도 사람 행렬이 100m나 길게 이어졌다. 이곳은 사케 시음행사인 ‘사케노진(酒の陣)’ 현장. 이 행사는 술 빚기(10월부터 이듬해 3월)가 끝날 즈음 이틀간 열리는데 니가타 현 주조조합(회장 사이토 슌타로·기린잔주조 대표)이 주최한다. 오전 10시 행사가 시작되자 대형 전시장은 순식간에 북새통으로 변했다. 시음하거나 구매하려는 사람, 음식을 사려고 줄 선 사람, 술과 음식으로 식도락 즐기는 사람, 주조회사 직원…. 모두가 한데 엉겨 거대한 ‘술집’으로 변했다. 매년 9월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옥토버페스트가 연상됐다.》
새로운 소비층 창출
매년 음식 곁들인 시음행사
병모양은 외국인-여성 취향

일식 세계화 전략

“일본산 재료라야 참맛” 홍보
농수산물-사케 동반수출


○ 여성도 몰려드는 니가타 현 사케 축제

일본 전국에는 1980개나 되는 사케 주조회사가 있다. 하지만 그 지방 사케를 맛볼 수 있는 연례 시음행사는 사케노진뿐이다. 행사가 열리는 니가타 현은 1인당 사케 소비량, 주조회사 수, 도지(杜氏·주조장인) 수, 고급주(긴조슈 이상) 생산량에서 전국 1위. 올해 7회째로 니가타 현 96개 주조회사가 모두 참여한다. 참가자는 500여 종 사케를 이틀간 맛보며 구매할 수도 있다.

전시장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주조회사별 부스, 조리시설을 갖춘 식당, 그리고 구매한 술과 음식을 마시고 먹는 공간이다. 단돈 2000엔에 파는 조코(시음용 도자기잔)만 있으면 어떤 사케든지 원하는 만큼 맛볼 수 있다. 새로 빚은 술부터 평소 맛보기 힘든 고급주까지 두루….

일본에서 사케는 갈수록 소비가 줄어드는 ‘인기 하락’ 술이다. 맥주 위스키 등 외래 술 선호 추세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건 젊은 층과 여성의 사케 소비가 조금씩 늘어난다는 점과 한국 미국 등 새로운 소비시장이 생기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본 사케 업계도 변하고 있다. 올해 사케노진도 이런 흐름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기자의 사케노진 취재는 이번이 세 번째. 그래서 변화 추이를 추려낼 수 있었는데 올해 두드러진 것은 여성 고객의 증가다. 이치시마(市島)주조의 이치시마 겐이치 사장도 동의하면서 “일본과 외국의 여성 고객을 겨냥해 저알코올 술을 개발해 왔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생산량의 10%를 수출하고 있으며 저알코올 사케는 병 디자인도 여성 취향이다.

시라타키주조도 비슷했다. 7대째 가업을 계승한 다카하시 신타로 사장(31)은 “처음 사케를 마시는 사람들을 겨냥해 20년 전 개발한 ‘조젠미즈노고토시(上善如水)’가 최근 들어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에서 여성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며 “병 모양과 색깔을 여성과 젊은이, 서양인 취향의 모던한 디자인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사케는 일본음식 세계화 추세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14일 니가타 현의 사케노진 행사장을 찾은 한 외국인이 꼬치를 든 채 시음대 앞에서 조코(시음잔)에 담긴 사케를 시음하며 향을 맡고 있다.
사케는 일본음식 세계화 추세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14일 니가타 현의 사케노진 행사장을 찾은 한 외국인이 꼬치를 든 채 시음대 앞에서 조코(시음잔)에 담긴 사케를 시음하며 향을 맡고 있다.
○ 일본 음식과 함께 세계로 가는 사케

사케노진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음식과 어울린 식도락 개념의 사케 홍보 행사라는 점이다. 모든 동양의 술이 그렇지만 사케도 와인처럼 반주용 술이다. 음식 맛을 돋우기 위해 음식과 함께 마시는 술이다. 그런 만큼 사케 시음행사에 음식을 빼놓는 것은 불찰이다. 니가타 현 주조조합은 처음부터 사케 홍보 이벤트인 사케노진을 식도락 행사로 기획했고 그 전략은 주효했다. 음식부스는 해가 갈수록 늘어났다. 그래서 올해는 시음구역이 좁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일본의 음식 세계화 전략이 수립된 지는 벌써 40여 년. 하지만 탄력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2006년 일본 정부가 발표한 목표는 ‘2012년까지 일식 인구 12억 명’.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궁극적 목표는 ‘2013년 일본 농수산물 수출 1조 엔 달성’이다.

우루과이라운드(UR) 등으로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고 농가가 어려워지자 일본은 음식 세계화를 통해 농수산물을 수출하는 전략을 택했다. 일식의 참맛은 일본에서 생산된 재료로 조리해야만 느낄 수 있으며 사케와 더불어 먹을 때 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집중 홍보했다. 그 마케팅은 성공했고 서양인도 이젠 스시 바에 앉아 초밥의 쌀이 일본산 고시히카리인지를 따지게 됐다. 덕분에 쌀과 다른 식재료 수출도 늘었다. 사케 수출은 주조용 쌀 생산농가의 수입 증가로 이어졌다.

호쿠세쓰(北雪)주조의 나카가와 야스오 부장은 “막걸리도 역시 한국 음식과 함께 외국인의 입맛에 노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년 전만 해도 사시미나 스시는 미국인에게 비(非)호감 음식이었지만 최근에는 고급 식문화로 여겨지고 있다”며 “데이트를 할 때 고급 일본 식당에서 사케를 마시며 저녁식사를 하는 것이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마시는 것보다 여성을 더 잘 대해 주는 것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 과학이 떠받치는 장인정신


사케 세계화의 바탕은 누가 뭐라 해도 좋은 사케를 빚어내는 ‘도지’와 그들 의식에 내재한 불굴의 장인정신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니가타 현이 기여한 바가 가장 크다. 니가타 현은 일본에서도 좋은 술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사케의 본고장이기 때문이다. 일본 전국 주조회사의 도지 가운데 니가타 현 출신이 가장 많고 매년 여는 신주감평회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내거나 고급 사케(긴조슈 다이긴조슈 등급) 생산량에서 니가타 현이 매년 1위를 차지하는 통계가 말해준다.

하지만 장인정신도 과학적인 뒷받침 없이는 그 진가를 발휘하지 못한다. 니가타 사케의 품질 향상을 위해 노력해 온 니가타 현 양조시험장(대표 와타나베 겐이치)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곳은 현 단위 양조시험장으로는 전국에서 유일한 시설. 최근 10여 년간 니가타산 고급 사케의 맛으로 정한 ‘단레이(淡麗·담백하고 유려한 맛)’를 구현해 내기 위해 새로운 주조용 쌀 개발에 힘을 쏟아왔다. 그렇게 얻은 게 ‘에치고 단레이(越後淡麗)’라는 신품종이다. 지난해부터는 연례 시음행사인 사케노진 행사장에 이 쌀로 빚은 사케만 따로 시음하는 특별코너까지 두고 맛 전파에 나섰다.

올해 사케노진에서 이 쌀로 빚은 사케를 맛보았다. 야마다니시키 혹은 고햐쿠만고쿠(전국적으로 애용되는 주조용 쌀 품종)로 빚은 사케와 달랐다. 뒷맛은 더 깔끔하고 맛과 향은 좀 더 깊어 고급스러운 느낌을 받았다. 우리 막걸리도 세계화와 고급화를 위해서는 좋은 술맛을 위해 별도의 주조용 쌀을 개발해 그 쌀로 빚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고급 식당서 파는 술’ 인식 심고▼
노부, 세계 27개 도시 일식체인과 브랜드 제휴


내수용(왼쪽)과 수출용 사케를 든 호쿠세쓰주조의 하즈 후미오 사장.
내수용(왼쪽)과 수출용 사케를 든 호쿠세쓰주조의 하즈 후미오 사장.
사케노진 전시장을 돌다 가장 붐비는 한 곳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호쿠세쓰주조 대표인 하즈 후미오 씨(51)다. 그는 등 부분에 ‘호쿠세쓰(北雪)’라고 쓰인 핫피(상인이 상점이나 물건을 알리기 위해 입는 옷) 차림으로 잔을 내미는 방문객에게 연방 술을 따라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우리에게 ‘노부(NOBU)’라는 브랜드로 알려진 호쿠세쓰주조는 전 세계 27개 대도시에서 최고급 일본식당으로 자리매김한 일본음식점 ‘노부’의 전략적 동반자다. 노부 레스토랑은 일본인 셰프(조리장) 노부유키 마쓰히나 씨가 할리우드 스타 로버트 드니로와 함께 1994년 미국 뉴욕에 1호점을 낸 뒤 짧은 기간에 성장했다. 노부 사케는 노부 레스토랑의 시그니처 사케다. 호쿠세쓰주조는 노부 사케를 노부 레스토랑을 통해 해외시장에서 판매한다. 노부 레스토랑은 자신의 명성을 호쿠세쓰의 고급 사케를 통해 더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기내서비스 하면 와인’ 통념 깨고
마노쓰루, 에어프랑스 일등석 공급 첫 사케

오바타주조의 오바타 루미코 전무와 에어프랑스 기내 서비스 사케 마노쓰루.
오바타주조의 오바타 루미코 전무와 에어프랑스 기내 서비스 사케 마노쓰루.
고급 사케 ‘마노쓰루(眞野鶴)’를 내는 오바타(尾畑)주조(니가타 현 사도 시)는 에어프랑스 항공사의 기내 서비스를 통해 세계적인 사케로 거듭났다. 주인공은 가업을 물려받아 남편(사장)과 함께 경영하는 오바타 루미코 전무.

그녀는 12년 전 ‘왜 비행기 기내에서 와인이나 코냑은 주면서 사케는 내지 않지?’라는 아버지의 물음을 흘려듣지 않고 곧바로 에어프랑스 일본지사에 전화를 걸어 사케 기내서비스를 제안했다. 그리고 3년 후 에어프랑스가 주최한 기내서비스용 사케 품평회에 나가 당당히 기내 사케로 선정됐다. 마노쓰루는 세계 최초로 에어프랑스가 시작한 1등석 사케 서비스의 원조 술로 2001년 등극했다.

그런 오바타주조의 명성은 ‘마노쓰루 마호’(준마이다이긴조 고급 사케)로 더더욱 명성을 쌓았다. 이 술은 2007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와인 챌린지’(품평회)의 ‘일본 술’ 부문에서 1000여 브랜드가 있는 니가타 현 사케 가운데 유일하게 금상을 받았다.

글·사진 니가타=조성하 여행전문 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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