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없다고 아우성? 中企선 사람없어 아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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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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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9개 지방산업단지 내 中企‘고용 미스매치’ 현장

경남 함안군 산인농공단지 내에 위치한 고려정공 작업장에서 베트남과 미얀마에서 온 노동자들이 한국 기술자(오른쪽)로부터 기계 가공
기술을 배우고 있다. 고려정공은 9명의 현장 직원이 있는데 그중 4명은 외국인 노동자다. 이들은 기술을 익히면 쉽게 이직을
해버려 지방산업단지의 구인난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 대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함안=최재호 기자
경남 함안군 산인농공단지 내에 위치한 고려정공 작업장에서 베트남과 미얀마에서 온 노동자들이 한국 기술자(오른쪽)로부터 기계 가공 기술을 배우고 있다. 고려정공은 9명의 현장 직원이 있는데 그중 4명은 외국인 노동자다. 이들은 기술을 익히면 쉽게 이직을 해버려 지방산업단지의 구인난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 대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함안=최재호 기자
경남 함안군 ‘고려정공’
동남아 수출 물량 산더미
1년간 구인공고 내 1명 채용
겨우 뽑은 직원 석달 못버텨


태양광 발전 기업체인 다쓰테크의 금만희 사장은 충북 청원군 오창과학산업단지에 있는 연구소를 이달 중 서울 구로구로 옮기기로 했다. 지방에선 연구인력을 구하기 힘들어서다. 금 사장은 “석·박사급 7, 8명이 필요한데 절반 정도만 간신히 채용했다”며 “비용이 더 들어도 제품 개발을 하려면 서울로 이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동아일보가 전국 749개 지방산업단지에 입주한 중소기업 중 흑자를 내면서 종업원 수가 100명 이상인 50곳을 선별해 기업이 희망하는 적정인력 규모와 실제 채용 인원을 조사한 결과 실업자가 많은 데도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고용 불일치’ 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하는 비상경제대책회의와 국가고용전략회의에서 실업의 원인으로 지목돼온 고용 불일치의 실태를 실증 분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50곳의 조사 대상 기업은 9517명의 인력을 채용하려 했지만 실제로는 9089명밖에 뽑지 못했다. 채용 희망 인력보다 428명(4.5%)이 부족한 상태다. ‘취업문이 바늘구멍’이라는 말과 반대로 지방산업단지는 구인난으로 공장 가동에 차질을 빚을 정도다.

○ 회사 커진 만큼 더 뽑아야 하는데…

지난달 28일 경남 함안군 산인면에 위치한 산인농공단지. 포장도로 양옆으로 21개 중소기업이 들어서 있다. 단지 초입에서부터 ‘크르렁 크르렁’ 기계음이 들려왔지만 사람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길가나 공장 공터에서도 근로자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금형을 가공하고 산업기계를 제작하는 중소기업인 고려정공의 공장 안으로 들어가 봤다. 근로자 5명이 쇠를 깎고 용접을 하고 있었지만 약 660m²(200평) 크기의 공장엔 빈자리가 많아 보였다. 고려정공은 2008년 말레이시아 수출 길을 뚫으면서 글로벌 경제위기였던 지난해에도 이익을 냈다. 올해 상반기까지 만들어야 할 물량도 이미 확보한 상태다.

회사가 성장한 만큼 기존 직원 14명만으로는 과부하가 걸리기 일쑤여서 지난해 용접공과 영어 및 무역실무 담당자 등 모두 6명을 더 뽑기로 했다. ‘연봉 3000만 원 이상, 퇴직금, 기숙사 제공, 4대 보험 가입’ 조건을 걸고 인터넷 구인사이트에 채용공고를 냈다. 회사 소개란에는 “동남아 수출과 함께 꿈을 이룰 인재를 모신다”는 문구까지 넣었다. 지난해 1월부터 이런 구인공고를 내고 직원을 뽑으려 했지만 결국 1명밖에 채용하지 못했다. 장세정 고려정공 사장은 “생산직은 두세 달 근무하다 그만두고 영어가 가능한 고급 인력은 지방산업단지에 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겨우 뽑은 직원도 3개월을 버티지 못했다. 특히 신입직원일수록 그만두는 시기가 빨랐다. 기술을 가진 경력직은 아예 3, 4개월만 일할 것을 명시적으로 요구했다. 일명 ‘야리끼리’(일정량의 일을 할당받아 끝내는 작업 형태)나 일당제를 하면서 매일 현금을 손에 쥐길 원했다. 실제 A급 용접공은 하루 8시간 근무에 일당 15만 원을 받았다.

장 사장은 외국인 노동자 고용으로 눈을 돌렸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5개월가량 일을 가르치면 어느 정도 기초 용접기술은 익히지만 이후 조금이라도 월급을 더 준다는 곳으로 쉽게 떠나버리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전북 정읍시 ‘㈜고리’
매출 440억-순익 50억 ‘알짜’
“처우는 좋지만 시골은 싫다”
광주서 옮기자 무더기 퇴직


○ “편의시설, 문화 인프라 부족이 문제”

전북 정읍시 제2일반산업단지에 있는 폴리염화비닐(PVC) 상하수도관 제조업체인 ㈜고리 공장. PVC 파이프를 제작하는 기계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고, 회사 주차장에는 생산된 파이프들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440억 원, 당기순이익 50억 원을 올렸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적지 않은 대기업들이 휘청거렸던 2008년과 2009년에도 전 직원에게 연말 성과급을 지급했을 정도로 견실한 중소기업이다.

하지만 이 회사도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고리는 4년 전 광주에서 정읍으로 이전할 때 20대 직원의 50% 이상이 퇴직하는 충격을 경험했다. 회사를 그만둔 이들은 “생활여건이나 문화 인프라가 떨어지는 시골에서 일하기 싫다”, “지방산업단지에서 일한다는 말을 친구들에게 하기 싫다” 등의 이유를 댔다.

지난해 중·장기 핵심인력으로 키우기 위해 채용했던 석사 출신의 연구인력도 약 3개월 만에 그만두며 “회사의 처우는 문제가 아니다. 대도시와 멀리 떨어져 있고, 문화생활을 즐기기 어려운 여건 때문에 계속 다니기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이 회사 인사총무팀의 김종복 씨는 “광주나 전주에 있기만 해도 지금보다는 훨씬 사람 뽑기가 쉬웠을 것”이라며 “직원을 뽑을 땐 ‘정읍’과 ‘산업단지’라는 간판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실제 고리의 한 직원은 “개인적으로 회사를 좋아하고 자부심이 있지만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의 원생 기록카드에 부모 직업을 작성할 때가 고민”이라며 “전에는 ‘광주에 있는 중소기업에 다닌다’고 했지만 이제는 ‘정읍에 있는 회사에 다닌다’고 쓰는 게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정부 “지방산업단지에 여가시설-대학 유치 검토”

○ 정부도 산업단지 재정비 착수


정부는 지방산업단지의 구인난 해결을 통해 일자리 문제를 풀 만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범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에 나서기로 했다. 우선 기획재정부는 지방산업단지에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고 중견기업과 대학을 유치하는 방안을 정책 과제로 검토하고 있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영화관 같은 여가시설 외에 대학과 중견기업도 유치해야 대졸자들이 지방산단 내 회사에 취직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해양부는 2일 산업단지를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 책임자들을 소집해 재정비 방안을 논의하고 상반기 중 대전 1·2산단, 대구도심공업단지, 전주1산단, 부산 사상공단에 대한 재정비 기본계획을 확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런 재정비는 부도심에 위치한 비교적 큰 단지를 대상으로 한 시범사업 성격이어서 전체 단지에 대한 리모델링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주무현 고용정보원 고용대책모니터링센터장은 “문화 인프라를 새로 만드는 것뿐 아니라 지방대 2, 3학년 때 산업단지 내 기업에서 인턴 경험을 쌓는 지역밀착형 인력양성 체계를 구축해야 청년 취업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함안=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정읍=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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