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구, 콜럼버스처럼 ‘전선 신대륙’ 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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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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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용 전선업체를 M&A통해 세계 3위로 키운 구자열 LS전선 회장
“가치 있으면 비싸도 산다” 한-미-중 업체 잇달아 인수
동해에 해저케이블 공장 설립해 ‘전선강국’ 꿈 이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1492년 동방에 닿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바다로 나섰다. 그로부터 500여 년 뒤 한국에는 세계시장을 한손에 거머쥐겠다는 생각에서 콜럼버스의 이름을 따 영문 이름을 만든 기업인이 있다.》

글로벌 전선시장에서 ‘크리스토퍼 구’로 통하는 구자열 LS전선 회장이 2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LS전선을 세계 3위의 전선회사로 키워낸 과정을 얘기하고 있다. 사진 제공 LS전선
글로벌 전선시장에서 ‘크리스토퍼 구’로 통하는 구자열 LS전선 회장이 2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LS전선을 세계 3위의 전선회사로 키워낸 과정을 얘기하고 있다. 사진 제공 LS전선
주인공은 ‘크리스토퍼 구(Christopher Koo)’. LS그룹의 주력사인 LS전선 구자열 회장(56)이다.

구 회장은 2004년 LS전선의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뒤 5년 만에 회사를 프랑스 넥상스와 이탈리아의 프리즈미안에 이어 세계 3위의 전선업체로 키워냈다.

2일 경기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LS타워에서 구 회장을 만나 LS전선을 글로벌 전선회사로 키운 얘기를 들어봤다.

○ 앉아서 돈 벌던 전선산업이 한계에

구 회장은 오너 기업인으로 고 구인회 LG 창업주의 넷째 동생인 구평회 E1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78년 반도상사(현 LG상사) 피혁기획부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가죽잠바를 팔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구 회장은 2004년 1월 LS전선의 CEO가 됐을 때를 떠올리며 “막막했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LS전선은 3, 4년째 매출이 2조 원에서 제자리였다. 경제가 한창 성장하던 시절엔 ‘앉아서 돈 버는’ 장사였던 전선산업이 한계에 다다른 것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우물 안 개구리로 주저앉겠구나 하는 위기감이 커졌다.

그러던 중 LS전선과 기술 제휴를 맺었던 일본 히타치전선의 공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공장에선 ‘전선의 꽃’으로 불리는 해저케이블을 생산하고 있었다. 해저케이블은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해 당시 LS전선으로선 꿈도 못 꿀 제품이었다.

구 회장은 이때 우리 기술로 첨단 전선을 생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이후 진도∼제주를 잇는 해저케이블 공사를 수주했고 동해에 해저케이블 공장을 설립해 결국 꿈을 이뤘다.

○ 테크닉보다 본질을 본다

구 회장은 ‘인수합병(M&A)의 귀재’로 불린다. M&A를 통해 몸집을 계속 키웠기 때문이다. 그는 얼마나 싸게 사느냐 하는 테크닉보다 사업의 본질을 먼저 본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진로산업(현 JS전선)을 인수할 때 직원들의 거센 반대에 부닥쳤다. 우리 물건이나 잘 만들면 되지 비싼 돈을 들여 왜 기업을 사들이느냐는 것. 하지만 구 회장은 적정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인 650억 원을 써냈다. ‘회사를 키울 자신이 있고, 살 만한 가치가 있는 회사라면 사야 한다’고 임직원들을 설득했다.

지난해에는 북미 1위 전선업체인 미국 슈피리어에식스를 인수했다. 국내 대기업이 공개매수를 통해 해외 업체를 통째로 인수한 건 사실상 처음이었다. 인수가격만 9000억 원에 이른다. LS전선은 월스트리트저널에 공개매수 광고까지 냈다. 슈피리어에식스는 연매출이 3조 원이나 되는 회사. LS전선은 이 회사 인수를 계기로 세계 전선업체 3위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올해 인수한 중국 훙치(紅旗)전기는 본래의 기업가치(1000억 원으로 추정)보다도 싼 가격(200억 원)에 샀다. 직원 거주환경이 나쁘다는 이유로 매물로 나와도 경쟁사들이 거들떠보지 않았던 것. 하지만 구 회장은 중국시장 공략을 위해선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훙치전기를 인수한 뒤 구 회장이 현지 공장을 방문하자 중국인 직원들도 깜짝 놀랐다. 직전 대주주조차 회사가 멀다는 이유로 단 한 번도 공장을 방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 회장은 “한국인 특유의 기업가 정신으로 세계시장을 개척해 한국을 전선 강국으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진도∼제주 해저케이블 기술
전기-통신 한꺼번에 연결
극한 상황서 외부충격 견뎌


해저케이블을 생산할 LS전선의 강원 동해공장이 지난달 준공됐다. 해저케이블은 수심 100여 m의 바다에 묻혀 수십 km 떨어진 섬에 전기와 통신을 공급하는 특수 케이블. 극한 상황에서도 외부 충격에 견뎌야 하기 때문에 중간의 이음매 없이 만드는 첨단 기술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그동안 해저케이블 시장은 넥상스 프리스미안 ABB 등 유럽 3대 전선기업이 시장을 독점했다. 이번에 LS전선이 동해공장을 준공해 해저케이블을 자체 기술로 생산할 수 있게 됐다. 해저케이블 시장은 지난해 1조5000억 원 규모로 매년 24%씩 급성장하고 있다.

LS전선이 국내 최초로 생산하는 해저케이블은 105km 길이의 250KV급 고전압 케이블이다. 케이블 지름만 10cm로 무게는 4000t에 달한다. LS전선은 내년 5월부터 제주도와 전남 진도 사이의 바닷속에 매설해 2012년부터 50만여 명의 제주도민에게 전력을 공급하게 된다.

LS전선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초전도 케이블도 상용화했다. 세계에서는 덴마크 미국 일본에 이어 4번째다. 초전도케이블은 전기저항이 0인 초전도체를 사용해 많은 양의 전기를 손실 없이 멀리 보내는 전선이다. 기존 전선은 전류가 흐르면 전력이 4% 손실된다. 국내의 전력손실 비용은 매년 1조2000억 원에 이른다.

LS전선은 3년간 매달린 끝에 초전도 케이블을 상용화했다. 이달 3일 경기 이천 변전소에서 공사를 시작했고 내년에 공사가 끝나면 이천 주민들은 초전도 케이블로 전기를 공급받게 된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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