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등’도 못켠 한국형 친환경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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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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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 개발 ‘액셀’ 밟는데… 우린 하이브리드? 전기차? 갈길 못찾아

“전기차로”
“세계 車시장 주도 美-中 결국 전기차로 표준화될 것”

“하이브리드로”
“전기차 변수 너무 많아 섣부른 투자는 위험한 도박”

“빨리 결정을”
현대차 어정쩡한 태도에협력업체들도 “헷갈려”


한국형 친환경자동차는 전기차인가, 하이브리드차인가. 최근 각국이 자국 실정에 맞는 친환경차를 집중 개발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선 한국형 친환경차 개발의 우선순위를 놓고 자동차업계는 물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 현대차·협력업체 깊어지는 고민

한국의 친환경차는 현대자동차가 올해 내놓은 ‘아반떼 LPi 하이브리드’와 기아자동차가 내놓은 ‘포르테 하이브리드 LPi’ 두 가지다. 현대·기아차는 7월 하이브리드차와 수소연료전지차 개발에 2조2000억 원을 투자하는 등 모두 4조1000억 원을 들여 2012년경 친환경차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달에는 정부의 2011년 전기차 양산계획에 맞춰 급하게 전기차 개발방침을 밝히는 등 어정쩡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상당한 비용이 들어간 하이브리드차 개발을 계속 끌고 갈 것인지, 르노그룹처럼 전기차 개발에 집중할 것인지 사내(社內)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현대차 일각에서는 수소연료전지차에 좀 더 투자를 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온다. 이와 관련해 현대차는 최근 외부 전문가를 초청해 세미나를 갖고, 친환경차 개발방향에 대한 의견을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현대차가 방향을 정하지 못하면서 부품을 납품하고 있는 협력업체들도 덩달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보통 새로운 차종을 개발하면 부품업체들의 설비조정이 뒤따라야 하는데, 이때 최대 1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협력업체로서는 현대차의 개발방향에 맞춰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도 있는 셈이다. 한 협력업체 관계자는 “현대차의 궁극적인 친환경차 개발목표가 애초의 수소연료전지차인지, 전기차인지 아니면 하이브리드차인지 헷갈려서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전했다.

○ 전문가들도 친환경차 우선순위 제각각

자동차업계뿐만 아니라 전문가들도 친환경차 개발의 우선순위를 놓고 의견이 갈린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가 최근 발간한 ‘KAMA 저널’ 11월호에는 상반된 주장이 나란히 소개됐다. 한국자동차산업학회장을 맡고 있는 김기찬 교수(가톨릭대 경영학부)는 ‘친환경차의 세계 표준화 전쟁’이란 글에서 “(친환경차) 표준화는 기술이 아니라 시장이 결정할 것”이라며 “그렇다면 세계 자동차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은 하이브리드 과도기를 거쳐 전기차로 사실상 표준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이브리드차의 경우 이미 도요타가 관련 특허의 80% 이상을 독점한 상태여서 후발로 들어가면 기술종속의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같은 저널에 ‘전기자동차 개발과 마라톤 경주’라는 글을 올린 유지수 교수(국민대 경영학부)는 “전기차는 원유가격의 상승 속도, 정부 협력, 소비자 행위변화와 같이 자동차회사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에 달려 있다”며 “정부는 전기차에 중점을 두기보다 가까운 미래의 자동차인 하이브리드차 개발에 우선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유 교수는 배터리 값이 20kW 기준으로 1만5000달러까지 내려가야 전기차가 시장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기계산업팀장은 “우리 자동차산업은 수출 위주이기 때문에 각 나라에 맞춘 다양한 친환경차를 모두 개발해야 하는 불가피성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한정된 재원을 효과적으로 쓰려면 그 안에서도 친환경차에 대한 개발순위를 명확히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美-日은 하이브리드, 中-佛은 전기차
해외 자동차회사들은 선택과 집중


해외 자동차회사들은 친환경차에 대해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있다. 미국(GM)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독일(폴크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BMW)은 청정 디젤, 일본(도요타, 혼다)은 하이브리드, 중국(BYD)과 프랑스(르노)는 전기차를 각각 친환경차의 개발방향으로 정해 집중 투자를 하고 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60km 정도를 충전된 전기로만 달릴 수 있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 ‘볼트’를 내년에 선보이는 한편 인도의 레바사와 함께 동남아시장 공략을 위한 전기차 개발에도 나섰다.

1997년 양산형 하이브리드차 ‘프리우스’를 세계 최초로 내놓은 도요타는 현재 세계 50개국에 13종의 하이브리드차를 판매하고 있다.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차는 누적 판매량 기준으로 올해 200만 대를 넘어섰다.

최근 전기차 개발에 ‘올인(다걸기)’을 선언한 르노닛산은 NEC와 리튬이온 배터리를 단 큐브(cube) 전기차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향후 3년간 5억∼10억 달러를 투자해 2011년 이스라엘과 덴마크, 2012년에는 일본과 유럽에 큐브를 판매할 계획이다.

정부 차원에서 전기차 개발을 지원하고 있는 중국은 하페이가 미국의 마일스오토모티브와 손잡고 전기차를 만들어 미국에 수출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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