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IT, 버블 10년만에 ‘재기의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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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6일 03시 00분


아마존 3분기 순익 전년比 68% 급증… 애플 역대 최고 분기 매출…

‘킨들’ ‘아이폰’ 등 신상품 활약
신기술로 새로운 시장 개척
실적 바탕 주가 상승 이끌어

美 벤처캐피털 신규투자 증가
1999년 주가 회복한 기업도
국내 IT업계도 훈풍 기대


《미국의 정보기술(IT)기업들이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2000년대 초 닷컴 버블이 붕괴된 지 거의 10년 만이다. 대공황 이후 최대 불황인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이들은 사업 영역을 재정비했고, 저력 있는 미국 인터넷 기업의 주가는 역사적 고점을 넘어섰다. 다소 성급한 감이 있지만, IT산업의 부활이 글로벌 경제위기를 타개할 동력이 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요즘 첨단기술 산업의 중흥은 10년 전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다. 과거와 달리 최근 주가가 오르는 기업들은 그에 걸맞은 탄탄한 실적이 뒷받침돼 있다. 올 3분기 미국 증시의 ‘어닝 서프라이즈’를 이끈 것도 바로 구글 애플 같은 IT기업들이다.》○닷컴 버블과 금융위기 모두 극복

IT산업의 몰락과 부활을 극명하게 상징하는 기업은 전자상거래업체인 아마존닷컴이다. 1997년 상장된 이 회사는 사업 초기 매년 적자를 내면서도 주가가 1999년 12월 107달러로 60배나 수직 상승했다가, 결국 버블이 터지면서 무려 94% 떨어지는 시련을 겪었다. 상황이 반전된 것은 2002년부터다. 고강도 구조조정과 비용절감으로 그해 처음으로 수익을 내기 시작한 아마존은 2007년 빅 히트 상품인 전자책 ‘킨들’을 출시하면서 실적이 급상승했다. 아마존은 올 3분기 순이익이 1년 전보다 68% 급증했다고 발표하면서 1999년 주가 수준마저 단박에 뛰어넘었다.

글로벌 IT 대표주인 구글의 3분기 순이익은 16억4000만 달러다. 전년 동기 대비 27% 증가한 것으로 월가의 예상치를 큰 폭으로 웃돈 것이다. 애플도 3분기 99억 달러라는 역대 최고 분기 매출을 내면서 투자자들을 놀라게 했다.

○불황기에 강한 신개념 서비스로 무장

요즘 미국의 IT기업들은 기술력으로 무장한 저렴한 신상품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마존은 ‘킨들’이, 애플은 ‘아이폰’이 메가히트를 쳤고 마이크로소프트(MS)도 최근 ‘윈도 7’을 내놓았다. MS는 이 상품이 침체기에 빠진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대규모 교체수요를 일으키며 새 바람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구글도 휴대전화용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를 시장에 선보이면서 신규사업 발굴에 나섰다.

대우증권 문지현 연구원은 “그동안 주문받은 책을 배달하던 아마존이 킨들을 통해 물류비용을 줄이는 혁신을 일으켰다”며 “다른 IT기업들도 기존 사업을 탈피해 새 시장을 공격적으로 개척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파격적인 가격할인으로 중흥의 활로를 모색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미국의 온라인 DVD 시장을 정복한 넷플릭스의 주가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다. 한 달에 최소 8.99달러만 내면 연체료나 반납기한 없이 무제한으로 자기가 원하는 영화를 골라 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최근 회원이 1000만 명으로 불었다. 올해만 139% 주가가 상승한 블루나일은 다른 판매상보다 30∼40% 싼 가격에 온라인으로 보석류를 팔면서 미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때 주가가 6달러까지 추락했던 인터넷 여행서비스 업체 프라이스라인은 소비자가 자신이 원하는 여행경비를 직접 결정하는 역경매 방식이 성공하면서 지난주 주가가 200달러를 돌파했다.

○IT 버블 극복한 코스닥기업 드물어

시장조사기관 ‘이마케터’는 미국의 온라인 광고시장 규모가 올해 228억 달러로 지난해보다 3%가량 감소하겠지만 내년부터 꾸준히 커져 2014년 35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미국 벤처캐피털업계의 신규투자도 올 3분기 48억 달러로 전 분기보다 17% 증가했다. 수렁에 빠졌던 경제가 회복 기미를 보이면서 경기의 풍향계라고 할 수 있는 IT산업부터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이다. 토러스투자증권 박중제 연구원은 “IT업체의 선전은 그동안 억압돼 있던 수요(pent-up demand)가 조금씩 분출됐기 때문”이라며 “기존 제품을 대체하는 개념이 아닌 새로운 상품과 수요가 발생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진단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크리스마스 등 연휴 효과로 소비지출이 평소보다 급증하면 IT기업의 약진은 더욱 두드러질 가능성이 크다.

투자자들도 과거보다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IT산업의 중흥을 즐기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누가 시장에서 살아남을지, 누가 한순간에 시장에서 사라질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닷컴 버블을 넘어 금융위기까지 견뎌냈다는 자체만으로 이들 기업에 신뢰를 보내고 있다. 최근 방한한 앤서니 볼턴 피델리티 투자부문 대표는 “상승장 초기엔 경기를 타는 소비주가 유망하지만 내년엔 기술주가 시장을 이끌 것”이라며 “기술주는 거품이 꺼진 지 10년이 지나면서 이제 오를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코스닥시장을 주름잡던 한국의 IT벤처 업계에선 아마존처럼 IT 버블 당시의 주가를 회복한 기업을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영업실적 부진으로 시장에서 퇴출되고 다른 기업에 인수합병되거나, 최고경영자(CEO)가 각종 경제범죄 혐의에 연루돼 청산되는 등 명맥이 끊긴 사례가 많다. 다만 국내에서도 경기 사이클의 회복과 미국시장 훈풍을 받아 점차 재기를 모색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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