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 해운 ‘불황의 덫’ 장기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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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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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산업 경기호전에도 불황 탈출 신호 안보여
공급과잉으로 수익악화… 구조조정 늦추면 더 침체


글로벌 경제위기가 터진 지 1년여가 지난 현재, 대부분의 산업은 이미 위기를 극복했거나 소생의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조선 및 해운업은 여전히 중환자실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코스피는 올 들어 40%가량 상승했지만 국내 주요 조선 해운업체들의 주가는 연초보다 오히려 낮은 수준에서 허덕이고 있다.

불과 2, 3년 전만 해도 두 산업은 초호황이었다. 당시 조선업계에는 ‘몇 년 동안의 일감이 쌓여 숨이 막힐 지경’이었고 해운업계 역시 ‘모든 선박을 총동원해도 전 세계 교역량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시기였다.

두 산업의 침체는 물론 글로벌 경제위기가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했지만 수년간의 호황에 따른 반작용의 성격도 짙다. 앞으로 실물경기가 살아나더라도 조선 해운산업이 정상화되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란 뜻이다.

○ 조선-해운의 동시다발적 침체

증권업계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의 선박 발주량은 1500만 GT(‘총톤수’를 뜻하는 조선업계 계측단위)가량 될 것으로 추정된다. 2003∼2008년 조선업 호황기에 연평균 1억 GT가 발주된 것에 비하면 7분의 1밖에 안 되는 수준이다. 컨테이너선의 운임 수준을 나타내는 HR용선지수도 지난해 4월 1361에서 지난달 334까지 떨어졌다. 조선사들은 새로운 일감이 없고 해운사들도 수입이 뚝 끊긴 것이다.

침체는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우선 글로벌 금융위기로 교역량이 줄면서 해상 운임과 선박 가격이 폭락했다. 컨테이너선 등 선박 가격은 호황기 고점 대비 30∼40% 떨어졌다.

선박 가격 하락은 선박금융시장에 고스란히 충격을 줬다. 보통 해운사들은 배를 조선사에 주문하면서 선박 가격의 상당 부분을 금융사에서 빌리는데 이때 담보가 되는 선박 가격이 떨어지자 금융사들이 해운사에 대한 대출을 중단했다. 자금난에 빠진 해운사들은 그동안 조선사에 발주해놓은 선박을 취소하거나 인도 지연을 요구했다. 두 산업 간에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산업 전문가들은 당분간 글로벌 경제가 회복하더라도 두 산업이 정상화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호황기에 만들기 시작한 배가 너무 많아 고질적인 공급과잉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선박량(12억1000만 t)의 50%에 이르는 5억9000만 t이 지금도 추가로 건조되고 있다.

윤필중 삼성증권 연구원은 “지난 호황기에 발주된 배가 너무 많은 점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며 “만약 이 배들이 (발주 취소나 지연 없이) 모두 건조, 인도된다면 많은 조선 해운사가 공멸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 공급과잉 해결 없이는 불황 계속될 듯

가시적인 위기는 글로벌 해운사에서 시작됐다. 올 9월 세계 3위 컨테이너 선사인 프랑스의 CMA-CGM이 모라토리엄 위기에 처한 데 이어 최근에는 대만 해운사 TMT도 자금난에 시달리는 등 전 세계 주요 해운사들의 돈줄이 말랐다.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 국내 해운사들도 올 들어 줄줄이 영업적자를 냈고 3분기에도 대규모 손실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조선업계는 아직 꾸준한 영업실적을 올리고 있지만 이는 호황기에 미리 받아놓은 일감이 계산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조선사들도 올해 들어 신규 선박 수주가 거의 끊겨버린 것을 감안하면 2011, 2012년이면 극심한 실적 악화가 불가피하다.

증권업계에선 조선 해운업계의 불황이 최소 1, 2년은 더 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조인갑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경기 사이클상으로는 2010년 하반기나 돼야 겨우 살아날 수 있지만 업계 구조조정이 늦어지면 2011년까지 침체가 이어질 것”이라며 “조선업체들의 경우 플랜트나 건설장비 등 비(非)조선 분야 사업을 확장하는 식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재학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물동량이 줄어든 것보다 해운시장에 배가 너무 많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며 “공급 과잉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산업이 살아나지 못 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선박제작금융 5000억 추가
부실조선소 수리소로 전환▼
■ 정부 조선산업대책 발표

금융위기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선업체들을 위해 정부가 선박제작금융 5000억 원 추가, 대출 프로그램 마련 등의 지원책을 내놓았다. 또 건조 중인 선박도 선박펀드 매입 대상에 포함돼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해운업계의 비용 부담이 줄어들게 됐다.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조선·해운산업 지원책을 9일 발표했다.

정부는 우선 부실조선사에 대한 상시 구조조정 추진과 함께 부실조선소를 수리조선소, 블록공장 등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식경제부는 “조선업의 특성상 워크아웃을 통한 경영정상화 추진에 어려움이 있다”며 “관계부처와 협의해 구조조정 조선사의 사업 전환 타당성을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수출입은행의 선박제작금융을 5000억 원 늘리는 한편 수출보험공사의 현금결제보증 조건도 완화하기로 했다.

국내 조선사에 선박을 발주한 해운사에 대한 지원도 강화된다. 선박 가격 하락으로 담보가치가 낮아져 추가로 담보를 제공해야 하는 경우 수출입은행이 담보인정비율(LTV)을 낮추고, 추가 담보 제공액의 일정 부분을 수출입은행과 수출보험공사에서 분담하는 방안도 새롭게 도입된다.

또 선박펀드가 선박을 매입할 때 투자하는 구조조정기금의 비율을 최고 60%로 높이고, 건조 중인 선박도 매입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조성해 운영중인 선박펀드는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해운사의 배를 캠코가 매입한 뒤 다시 해당 해운사에 빌려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국토해양부는 “선박펀드는 매입 대금의 20%는 금융회사가, 40%는 구조조정기금에서 부담하고 나머지는 5년 뒤 선박을 되사는 해운사가 내는 형태로 운영됐다”며 “하지만 앞으로 선순위 금융 확보가 제한적일 경우에는 구조조정기금이 최고 60%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 같은 지원 방안은 5일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 조선·해운업계 관계자들이 직접 참석해 토의를 거쳐 나온 것”이라며 “우량 조선사, 해운사에 대한 금융지원 활성화와 중장기적으로는 핵심원천기술 확보로 국내 조선산업의 수출경쟁력을 유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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