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경영 본궤도 올랐지만 밑바닥 침투까진 갈길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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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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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경영 선포 10년’ 구학서 신세계 부회장

접대 사절 ‘신세계 페이’ 성과
‘커피 한잔’까지 규정 정해놔야
기부-환경보호도 지속 실천

신세계 윤리경영 10년을 맞아 21일 서울 중구 충무로 신세계 본사에서 만난 구학서 신세계 대표이사 부회장은 “그동안 기업의 투명성 제고에 주력했다면 앞으로는 환경 문제 등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기업의 박애적 의무를 실천하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신세계
신세계 윤리경영 10년을 맞아 21일 서울 중구 충무로 신세계 본사에서 만난 구학서 신세계 대표이사 부회장은 “그동안 기업의 투명성 제고에 주력했다면 앞으로는 환경 문제 등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기업의 박애적 의무를 실천하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신세계
1999년 12월 신세계는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윤리규범’을 선포했다. 윤리경영의 불모지와 다름없던 국내 기업 환경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협력업체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받지 않는다 등 10가지 자정 결의를 담은 규범이었다.

외환위기 1년 후인 당시 기업들은 부(富)와 일자리 창출 등 경제적 책임에만 매달려 있던 터라 부정적 시선을 보냈다. “윤리를 외쳤다가 행여 일부 비리라도 드러나면 기업의 이미지가 무너질 것”이라며 엄두를 못 내는 회사도 많았다. 하지만 신세계는 묵묵히 윤리경영을 추진했다. 1999년과 비교해 지난해 신세계의 실적은 매출액 4.8배, 영업이익 8.8배, 순이익 25.8배로 성장했다. 치열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도덕적 기업은 이윤을 내기 힘들다고 조롱하던 ‘장사꾼’들의 코를 납작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9년 12월 신세계 대표이사 부사장, 2001년 사장, 2006년 지금의 자리에 오른 구학서 신세계 부회장의 경력은 신세계 윤리경영 10년과 일치한다. 21일 오전 서울 중구 충무로 신세계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윤리경영 10년을 맞아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윤리경영은 무엇보다 기업 오너와 최고경영진의 의지가 중요하다. 정재은 신세계 명예회장과 이명희 회장의 의지가 컸다. 정 명예회장의 장남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수천억 원의 상속세를 내고 떳떳하게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았나. 우리는 윤리경영을 3단계로 나눴다. 처음엔 종업원의 투명성을 강조(1단계)하는 게 시급했다. 2단계는 협력회사와의 상생, 3단계는 사회봉사활동과 친환경 등 박애 경영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이날 신세계가 발간한 ‘신세계 윤리경영 10년사’에서 “윤리경영은 앞으로 기업 가치와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조건이 될 것”이라며 “소비자 접점 부분까지 윤리적인 소비문화의 확산을 이끌겠다”고 밝혔다.

―10년을 맞은 신세계 윤리경영에 대해 100점 만점에 몇 점이나 주겠는가.

“60점. 한국의 인화(人和) 문화는 좋을 땐 좋지만 합리성이 떨어진다. 학연과 지연을 내세운 각종 청탁이 많이 사라지긴 했어도 아직 있다. 청탁을 거절하면 ‘건방지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일부 직원들의 고압적 자세도 내 귀에 들어온다. 윤리경영을 조직 밑바닥까지 침투시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외국 사례도 많이 벤치마킹했을 것 같다.

“존슨앤드존슨, IBM, P&G는 50년이 넘은 윤리경영 헌장을 갖고 있었다. 협력회사 직원들과 커피 한 잔을 함께 마셔도 안 된다고 꼼꼼하게 명시하고 있었다. 윤리경영은 그렇게 치사할 정도로 구체적이어야 한다. 힌트를 얻어 2005년 신세계 페이(pay)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가장 보람을 느끼는 활동 중 하나다.”

신세계 페이는 협력회사 사람들과 식사할 때 ‘자신의 몫은 자신이 계산하자’는 내용이다. 구 부회장은 “신세계 페이는 잘 지켜지는 편이지만, 아직도 비리를 저지른 직원에 대한 내부 고발이 취약한 게 문제”라고 덧붙였다.

―대기업 슈퍼마켓(SSM)은 상생을 강조하는 신세계 윤리경영 측면에서 어떤가.

“SSM은 결코 대기업과 중소 상인들의 상생 모델이 될 수 없다. 동네 상권에 SSM을 열어 대형마트 가격으로 배송까지 하는 건 제살 깎아먹기 경쟁이다. 결국 대형마트 손님이 옮아갈 뿐이다. 온라인 사이트 ‘아마존’은 최근 ‘아마존 프레시’란 쇼핑몰을 열어 신선상품까지 배달해준다. 국내 대형마트들은 온라인 쇼핑몰 등 새로운 유통채널과 맞설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그게 윤리경영이다.”

신세계는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급여에서 일정액을 자동이체로 복지시설에 기부하는 ‘희망배달 캠페인’, 이마트 구매액의 0.5%를 지역 복지단체 지원에 쓰는 ‘지역단체 마일리지제’ 도 한다. 이달 15일부터는 환경보호를 위해 전단지를 완전히 없애고 신문에 광고를 싣고 있다. 1년간 전국에 뿌려지는 전단을 만드는 데 이산화탄소(CO₂) 6600여 t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구 부회장은 “음식 쓰레기를 없애기 위해 소포장하는 ‘홈 메이드 식품’을 강화할 것”이라며 인터뷰를 마친 후 지인과 점심식사를 하러 인근 칼국수 집으로 향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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