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전략 시행 “내년 하반기가 적정” 39% - “논의 말아야”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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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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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놓지 못하는 기업들]
항공-해운-유통업 등 서비스업종 침체우려 많아
“내년 환율 1100원대 초반”

[더블딥 온다면]
“비용절감 노력 최우선
경기 조금 나아진다고 비상경영 당장 해제 안해”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 논쟁이 되고 있는 ‘더블딥(경기가 회복하다가 다시 꺾이는 현상)’에 대해 국내 대기업들이 어떤 견해를 보이고 있는지는, 이들이 실물 경제를 이끄는 주역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높다. 국내외 경제 변수 및 소비심리, 해외 주요국 경기상황 등을 예측해 내년 투자계획과 경영목표를 세울 것이기 때문이다.

○ 기업들 전망, 금융계보다 어두워

주요 대기업 10곳 중 6곳이 더블딥을 예상한 이번 결과는 금융계 전문가그룹의 시각에 비하면 상당히 보수적이다.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이 최근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회사 임원 및 부·팀장 등 금융전문가 그룹 169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더블딥 가능성이 있다’는 답변은 14%에 그쳤다. 반면 ‘경제가 회복세에 있다’는 응답은 89%였다. 또 출구전략 시행시기로 ‘내년 상반기까지’를 제시한 답변도 59%나 됐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 경기를 보수적으로 보는 기업들의 성향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실물경제실장은 “내년 하반기에 성장률이 완만하게 떨어질 가능성은 있지만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더블딥의 우려는 크지 않아 보인다”며 “경기 불황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기업의 성향이 부각된 것 같다”고 해석했다.

황인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내년에도 정부 주도로 경기가 지탱하는 상황이 계속될 것을 예상한 결과로 보인다”며 “정부의 경기 부양 여력이 한계에 이르거나 섣부른 출구전략으로 경제가 침체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더블딥 전망으로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 업종별로 뚜렷하게 다른 환경 인식

경영환경 인식과 대응 방법에서는 업종별 차이가 두드러졌다. 정유, 석유화학, 에너지 업종은 조사 대상 기업 9곳 가운데 5곳이 ‘더블딥 가능성이 없다’고 답했다. 수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으면서 최근 회복기를 맞고 있는 중공업·철강업계와 전자·정보기술(IT)업체는 각각 10곳 중 5곳(50.0%)과 7곳 중 3곳(42.9%)이 ‘더블딥이 없을 것’으로 봤다.

반면 지금도 불황의 늪에 빠져 있는 항공 및 해운업계에서는 5개 설문 대상 기업 가운데 4곳이 더블딥 가능성을 점쳤고, 유통·소비재 업계도 조사대상 8곳 가운데 6곳이 더블딥 상황을 전망했다. 종합상사도 조사대상 5개 업체 가운데 4곳이 더블딥을 예상했다.

전반적으로 제조업체와 수출 기업들은 내년 경기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반면 서비스 업종은 경기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기업들이 내년 이후 내수가 살아날 수 있을지에 확신을 갖지 못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 환율은 변수 아닌 극복 대상

기업 10곳 가운데 7곳(69.6%)은 내년 경영 계획을 세우기 위한 평균 원-달러 환율로 달러당 1100원대 초반(1100∼1149원)을 꼽았다. 1000원대 또는 그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한 기업도 2곳(3.6%) 있었다. 1100원대 후반(1150∼1199원)을 예상한 기업은 17.9%였다. 한 중공업 회사 관계자는 “이미 1000원대 환율을 예상해 경영 계획에 반영하기로 했다”며 “1000원까지 떨어지더라도 버틸 수 있는 체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설문에서 ‘내년 경영계획 수립에서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요소’를 묻는 질문에 ‘환율’이라고 답한 기업은 19.0%에 불과해 ‘환율 이슈’가 이미 기업들에는 경영 변수가 아니라 극복해야 할 대상임을 시사했다. 지난해 말이나 올해 초와 달리 환율이나 유가의 변동성이 심하지 않은 것도 기업들이 외부 변수에 비교적 여유 있는 태도를 보이는 이유로 해석된다. 한 대기업 임원은 “올해 경영 계획을 세울 때는 외부 변동 요인이 워낙 커 며칠 만에 새 보고서를 만들기도 했다”며 “하지만 내년은 상황이 좀 다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내년 평균 국제유가를 배럴당 70달러대(48.2%)와 80달러대(44.6%)로 예측했다. 정부가 최근 예산안을 수립하면서 세운 기준유가인 배럴당 63달러를 웃도는 수치다. SK에너지 관계자는 “경기 회복세가 이어진다면 국제 유가가 배럴당 70∼80달러대를 유지할 것”이라며 “글로벌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석유제품 수출 비중이 높은 정유 기업에는 유리하다”고 말했다.

○ 당분간 ‘비상 경영’은 계속될 듯

기업들은 대부분 비상 경영 체제를 유지해 더블딥에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철강업계의 한 임원은 “세 가지 정도의 경영 환경 변화를 가정하고 각각에 맞는 경영 전략을 수립해 대응하는 방안을 세우고 있다”며 “혹시 올지 모르는 더블딥에 대응하는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이 비용 절감인 만큼 경기 상황이 조금 호전된다고 해도 곧바로 비상 경영을 해제하지는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항공 등 소비자와 가까운 기업들은 차별화된 제품 전략이나 발 빠른 시장 대응으로 위기에 대응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동차 회사 관계자는 “더블딥 상황이 오면 소형차 비중을 늘리는 등 경기 상황에 맞는 제품을 중점적으로 시장에 내놓는 것이 대처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운항 편수를 줄이는 등 수요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처하겠다”면서 “경기침체 영향을 덜 받은 국가에서의 프로모션을 강화하는 마케팅 전략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 위기를 신사업 창출과 기업 규모 확대의 기회로 삼으려는 움직임도 엿볼 수 있다. 현대중공업의 한 임원은 “당장에는 수출시장이 얼어붙어 버티기 어렵지만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경영진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며 “내년에도 최대한 긴축하면서 새로운 기회에는 과감히 투자하는 경영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 설문에 참여한 기업들 (가나다순) ▼
대우건설, 대우인터내셔널, 대우조선해양, 대한항공, 동국제강, 동부제철,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중공업, 롯데건설, 롯데쇼핑, 르노삼성자동차, 삼성물산, 삼성전기, 삼성전자, 삼성중공업, 삼성토탈, 신세계, 쌍용자동차, 아시아나항공, 에쓰오일, 제일모직, 포스코, 하이닉스반도체, 한진해운, 한화, 현대건설, 현대모비스, 현대백화점, 현대상선, 현대오일뱅크, 현대자동차, 현대제철, 현대종합상사, 현대중공업, 현대하이스코, 홈플러스, 효성, CJ제일제당, E1, GM대우자동차, GS건설, GS리테일, GS칼텍스, KT, KT&G, LG디스플레이, LG상사, LG전자, LG텔레콤, LG화학, SK건설, SK네트웍스, SK에너지, SK텔레콤, STX조선해양, STX팬오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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