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것으로 보인다”→“∼하겠다” 단호해진 ‘이성태의 입

  • 입력 2009년 10월 1일 02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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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충격 벗어난 8월부터 직접화법 구사
금리조정 앞두고 ‘우려’ ‘염려’ 등 많이 사용

■ 금통위 발언 22건 분석

출구전략 시기를 놓고 정부와 한국은행이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금융시장은 9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이성태 한은 총재가 어떤 발언을 할지 주시하고 있다. 경험상 이 총재의 발언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기준금리의 변동 시점을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부터 올 9월까지 열린 금통위 기자회견에서 나온 이 총재의 모두발언 22건을 분석한 결과 ‘급격히’ ‘매우’ ‘크게’ 등 강조를 의미하는 수식어 사용빈도를 크게 늘리면 머지않아 금리를 인상하거나 인하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려’ ‘염려’ 같은 특정 단어가 모두발언에 등장해도 기준금리가 바뀌었다.

이번 분석결과에 따르면 기준금리 인상은 10월은 아니지만 임박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 기준금리 변화 앞두고 수식어 사용 2배 늘어

지난해 1월 이후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올리거나 내린 것은 지난해 8월과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7차례. 특히 경제위기가 닥친 지난해 10월부터는 기준금리를 여섯 차례에 걸쳐 3.25%포인트 급격히 인하했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 변동을 앞두고 ‘급격히’ ‘매우’ ‘크게’ 등 강조하는 말을 많이 사용하며 발언 수위를 높였다. 지난해 1∼7월 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이 총재가 쓴 강조 수식어는 평균 13건. 하지만 금리가 급격히 인하된 지난해 10월∼올 2월엔 평균 23건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올 2월 이후 강조 수식어를 18건으로 줄여 발언수위를 낮췄던 이 총재는 금리인상을 시사한 9월엔 다시 27건으로 빈도를 늘렸다.

이 총재는 또 기준금리를 올리거나 내리기 전에 ‘염려’와 ‘우려’, ‘경계심’, ‘걱정’과 같은 단어들을 사용해 금리변동 가능성을 암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소엔 거의 등장하지 않던 이 단어들이 금리 변동 한두 달 전부터 집중적으로 등장한 것. 실제 지난해 1월부터 4월까지 이 단어들은 한 차례도 쓰이지 않았지만 지난해 8월 기준금리 인상을 앞두고는 두 달 새 다섯 차례나 사용했다.

이 단어들은 물가, 경기, 부동산가격 등과 함께 기준금리 변동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데 사용됐다. 실제 지난해 6월엔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시장금리가 상당히 올랐다”며 물가상승을 지적하기 위해 ‘우려’란 단어를 썼다. 이 총재는 지난해 7월에도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임금상승 압력으로 발전하는 2차 효과를 우려한다”고 말하고 한 달 뒤 물가상승을 이유로 기준금리를 올렸다.

시장금리는 이 총재 발언의 행간을 읽고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기준금리 등락과 관계없이 발언 수위가 높아지면 시중금리가 함께 오르는 추세가 나타나는 것. 지난해 7월 금통위에서 이 총재가 물가상승에 대한 우려를 내비치자 이후 3일간 91일물 양도성예금증서(CD)금리는 0.07%포인트 올랐지만 정작 기준금리를 올린 지난해 8월 금통위 이후엔 3일간 0.03%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높은 발언 수위에 시장금리가 미리 반응하면서 기준금리 변동의 충격이 줄어든 것이다.

○ 시장에 명확한 신호를 줄 때는 직접화법으로

2006년 취임한 이 총재는 직접적이고 단정적인 화법을 자제하면서 특유의 완곡한 간접화법을 주로 써 왔다. 실제 지난해 10월 전까지는 모두발언 말미에 밝히는 금리운용 방향에 대해 주로 “∼할 것으로 보인다” 또는 “∼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모호하게 마무리했다.

하지만 경제위기로 금리를 공격적으로 인하하기 시작한 지난해 10월부터는 정책방향을 명확하게 밝히는 단정적인 화법으로 전환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4월까지 통화정책 방향과 관련해 모두 “∼하겠다”는 단정 어법을 사용한 것. 통화당국의 강력한 의지를 밝혀 시장에 명확한 신호를 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는 지난해 9월엔 “(통화정책은) 국제금융시장을 보며 운용해나갈 것으로 보인다”며 완곡한 화법으로 금리인하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지난해 10월 9일엔 “외환시장과 국내 금융시장을 고려해 통화정책을 운용하겠다”며 직접화법으로 바꿨다. 이어 10월 27일엔 “한은이 필요한 유동성을 적극적으로 조정하겠다”며 명백한 금리인하 기조를 밝히는 방향으로 발언 수위를 높였다.

한편 경제위기의 충격이 잦아든 올 5월부터 완곡한 화법으로 돌아갔던 이 총재는 금리인상 가능성을 언급한 8월부터는 다시 직접화법을 쓰고 있다. 8월엔 “당분간 금융완화 기조를 지속하면서 3, 4분기 몇 달간 경기상황을 관찰할 것”이라며 완곡하게 금리인상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9월엔 “완화 기조와 긴축 기조는 금리변동 방향만 갖고 말할 수는 없다”며 금리인상에 무게를 뒀다.

‘우려’ ‘염려’ 같은 단어들도 다시 등장했다. 기준금리 변화가 없었던 올 3∼5월 한 차례도 이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 총재는 6월부터는 이 단어들과 함께 금리인상 가능성의 배경이 되는 주택가격 급등을 지적하고 나섰다.

이런 변화에 따라 시장은 기준금리 인상이 임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9월 10일 금통위 이후 29일 현재 91일물 CD금리는 0.16%포인트,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0.18%포인트 올랐다. 박종연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이 총재의 발언 강도가 강해지는 것은 정책 변화의 시기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최근 시중금리는 이미 금리인상 가능성을 반영해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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