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91>‘愛人敬天’ 도전 40년

  • 입력 2009년 9월 22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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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유럽 기업과 합작 조인서에 서명하고 있는 장영신 회장. 장 회장은 여러 외국 기업과의 합작 사업을 무리 없이 이끌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외국어 실력을 꼽았다. 그는 지금도 영어와 중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애경그룹
한 유럽 기업과 합작 조인서에 서명하고 있는 장영신 회장. 장 회장은 여러 외국 기업과의 합작 사업을 무리 없이 이끌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외국어 실력을 꼽았다. 그는 지금도 영어와 중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애경그룹
<14>외국어 공부하는 회장님

합작기업과 대등한 위치서 협상
유학때 배운 영어가 강력한 무기
요즘도 주2회씩 중국어 배워

애국심이 뭘까? 과거 애국심이란 싸워서 국토를 늘리거나 총칼을 들고 국경을 지켜나가는 걸 뜻했다. 하지만 글로벌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애국심이란 최소한 자기 나라를 비굴하게 만들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 별게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어려운 일이다.

한때 외국에 나가면 사람들이 “일본인이냐, 중국인이냐, 아니면 어디냐”는 질문을 받았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에는 일본인이나 중국인인 척 넘어가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나는 이런 태도가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길을 막아버린다고 생각한다.

나는 서양 사람들과 협상을 할 때 업무에 관한 한 모든 것을 다 보여준 뒤 원리원칙을 고집한다. 이런 업무 추진방식은 서양인들에게 상당히 잘 통했다. 그러나 그들이 합작회사를 하면서 공동대표 사장을 두자고 하면 나는 가차 없이 말하곤 했다.

“여기는 한국 사회다. 한국 문화를 이해할 때까지 당신들은 뒤에서 지켜봐라. 모든 것을 나에게 맡겨 달라. 한국 사람이 사장을 맡고 당신 회사 사람이 부사장을 맡는 게 좋겠다.”

나는 여러 회사와 합작을 했지만 내 양심에 비추어 한국이 비굴하거나 손해를 보는 일은 없도록 노력했다. 때로는 우리가 우월한 위치에서, 아니면 최소한 동등한 위치가 되도록 끌어올리려 최선을 다했다. 비굴한 합작은 ‘나라를 팔아먹는’ 일과 같다는 생각에서다. 나는 작은 애국심을 이렇게 실천했다.

사실 과거 외국 기업과 합작을 할 때 주로 배우는 쪽이었던 한국 기업이 이렇게 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런 어려운 일을 내가 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을 설득하는 것이었고, 이런 과정에서 내가 유학시절 익힌 영어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상대방이 내가 납득하기 힘든 말을 하더라도 확실한 근거와 예를 들어가며 정확한 영어로 반박하면 대부분 내 의견에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국제화 시대에서 살아남고, 자존을 지키기 위해서는 외국어가 가장 든든한 무기가 된다. 외국어를 할 수 있어야 외국인과 대화가 되고, 대화가 가능해져야 그들을 이길 수도 있고, 리드할 수도 있는 여건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또한 외국에서 4년간 생활해 본 경험은 외국의 문화와 풍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고, 그들의 사고방식과 장단점 등을 비교적 깊이 알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의 대기업 등 세계 굴지의 다국적 기업체와 큰 무리 없이 여러 합작사업체를 성공적으로 경영했던 데는 이 같은 이해가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나는 최근 들어서까지 직원들에게 외국어의 중요성을 늘 강조해 왔다. 한동안 애경 사보 신년사에는 외국어를 익히라는 주문이 빠짐없이 들어갔다. 사실 이런 전통은 애경에서는 퍽 오래됐다. 사장 부임 초기인 1973년 원어민 강사를 불러 본사 직원을 상대로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8∼9시 영어 교육을 시작했다. 해외 시장을 개척하려면 직원의 외국어 능력이 필수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외국인을 상대로 사업이나 협상을 하려면 먼저 확실하게 우리나라 사람인 것에 대한 긍지를 갖자. 그런 다음 외국어를 익히자. 그것으로 전투태세는 완전히 갖춘 셈이다. 앞으로 상대를 어떻게 요리할지 간단한 방법론만 남게 되는데 이렇게 하면 이미 싸움에서 90%는 승리한 셈이다. 나는 지금도 매일 외국 파트너나 외국 친구들과 e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지낸다. 1주일에 2번 중국어를 배우고 있으며, 기회가 닿으면 현지에서 중국어 연수를 받고 싶은 마음도 있다.

바이올린의 줄은 끊어질 만큼 팽팽하게 조여 놓아야 제 음색을 낼 수 있다. 사람에게 있어 팽팽하게 조인 바이올린은 자기 자신을 확실히 알며, 긴장감과 인내를 갖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자신에 대해 완벽한 준비를 한 사람만이 자신이 간직한 가장 아름다운 음색을 낼 수 있다. 내가 일흔을 넘긴 나이에 외국어 공부에 욕심을 내는 이유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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