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디자인에 담긴 ‘中企+일본’ 기술

  • 입력 2009년 9월 16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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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기술교류회 만들어 협력사와 日기업 연결
뒤처진 금형 사출 노하우 습득… 품질 업그레이드

‘금형, 사출 등의 협력사 지원자금으로 1조 원을 투입하라.’

2004년 3월 이건희 삼성전자 전 회장은 직원들에게 이같이 지시했다. 금형은 플라스틱 부품을 만드는 틀을, 사출은 플라스틱을 금형 안에 집어넣는 것을 뜻한다. 당시 이 회장의 특별지시는 삼성전자 제품이 글로벌 경쟁사인 소니 제품과 비교했을 때 품질에는 별 차이가 없는데 디자인에서 밀린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

제품 안에 들어가는 부품들은 상당한 투자와 연구가 계속되고 있었지만 디자인을 결정하는 금형 사출 분야는 품질이 받쳐주지 못해 애를 먹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 공장에서는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한 제품들도 나오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완제품의 ‘2%’를 완성시키는 금형 사출업종의 영세성 때문이었다. 당시 이 회장의 지시는 최첨단 디지털 제품을 만드는 삼성전자가 전형적 3D 업종을 지원하는 것이어서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삼성전자는 곧 ‘선진기술 교류회’를 만들었다. 글로벌 경쟁력을 지닌 일본 중소기업들과 삼성전자의 금형 사출 협력사들을 연결해 기술력을 키워주자는 목적이었다. 선진기술교류회는 현재까지 국내에서 15회, 일본 6회, 독일 3회 등 총 25회 열렸다. 여기에 참여한 삼성전자의 협력사 직원은 500여 개사 900여 명에 달한다. 회의에 참석한 삼성전자 관계자는 “선진기술 인력들과의 만남, 공장 견학 등을 주선함으로써 국내 중소기업들이 자극을 받고 결국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휴대전화 키패드를 만드는 ‘모센’이라는 중소기업은 2007년 선진기술 교류회에서 인연을 맺은 일본 화학회사인 도레이사와 도료업체인 캐슈사로부터 기술 전수를 받아 플라스틱이면서도 금속 느낌이 나는 외장을 개발해내는 데 성공했다.

도레이 쪽에서는 처음엔 ‘기술을 빼가는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삼성전자와 모센은 “앞으로 당신네 회사 필름만 살 것이다. 그러면 결국 당신 회사 매출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냐”며 끈질기게 설득했다. 그 결과 모센은 얇은 필름을 여러 겹 쌓아 전파 방해를 없앤 고광택 필름을 개발해 삼성전자의 휴대전화에 부착할 수 있었다. 조주호 모센 부장은 “일본 선진 기업들을 접하다 보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MP3플레이어를 만드는 재영솔루텍이라는 국내 중소기업은 일본의 ‘다이세이(大成) 플라스’에서 알루미늄 금속과 플라스틱처럼 서로 다른 재료를 붙이는 기술인 이종재질 접합기술 원천 기술을 도입했다. 금속 표면에 20nm(나노미터·1nm는 10억 분의 1m) 크기의 미세한 구멍을 만들어 화학 처리를 한 뒤 플라스틱을 사출 성형 방식으로 주입해 접합하는 ‘나노 몰딩’ 기술이다. 이 기술은 기존 기술보다 불량률을 떨어뜨려 원가를 30%가량 낮췄다. 권택철 이사는 “일본 기업으로부터 기술 이전을 받아 금속과 플라스틱의 접합 부분을 망치로 내리쳐도 끄떡없을 정도의 신기술이 탄생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는 자금 지원, 생산설비 대여 등도 병행했다. 이렇게 해서 협력사에 지원한 금액은 2004년 3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6400억 원에 이른다. 삼성전자는 이달 27일 삼성전자 경기 수원사업장에서 일본 미쓰비시상사테크노스 등 3개사가 협력사 직원 100여 명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세미나를 연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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