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1000벌 사흘간 입어보고 “수입 OK”

  • 입력 2009년 9월 1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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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프랑스 파리 마레 지구에 있는 제라르 다렐 매장에서 롯데백화점 글로벌 패션부문 바이어들이 옷을 보고 있다. 왼쪽부터 서충렬 팀장, 이주영 바이어, 최미정 선임 바이어. 파리=김선미  기자
지난달 24일 프랑스 파리 마레 지구에 있는 제라르 다렐 매장에서 롯데백화점 글로벌 패션부문 바이어들이 옷을 보고 있다. 왼쪽부터 서충렬 팀장, 이주영 바이어, 최미정 선임 바이어. 파리=김선미 기자
“특색 있는 아이템 잡아라”패션 본고장 샅샅이 뒤져

■ 백화점 바이어팀 ‘파리 헌팅’ 현장

과거 국내 백화점은 ‘임대 사업자’로 불리기도 했다. 돈 되는 브랜드에 자리를 주고 비싼 임대 수익을 챙긴다는 뜻에서였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경쟁이 심해지면서 국내 백화점은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쉬운 상황에 맞닥뜨렸다. 어느 백화점에 가나 똑같은 브랜드만 있다면 굳이 고객이 특정 백화점을 고집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롯데백화점은 2005년 국내 백화점업계에선 처음으로 글로벌 패션부문을 신설해 자기 색깔 찾기에 나섰다. 프랑스 여성복 ‘제라르 다렐’과 이탈리아 잡화 ‘훌라’ 등 6개 브랜드를 직수입해 파는 것. 백화점이 패션회사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지난달 말 롯데 글로벌 패션부문 제라르 다렐 팀의 프랑스 파리 출장에 동행했다.

지난달 25일 파리 로뮈르 거리에 있는 제라르 다렐 본사. 내년에 국내로 들여올 이 브랜드의 옷과 가방을 고르는 롯데 바이어들에게선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롯데가 직접 구입해 고객에게 파는 과정에서 재고 부담을 떠안기 때문에 백화점 임대 매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막중한 책임이 요구된다. 패션 트렌드와 고객의 수요를 얼마나 정확히 읽어내느냐가 매출을 좌지우지한다. 올 초 환율이 가파르게 오르자 롯데는 제라르 다렐 측과 ‘원-유로 환율이 1700원을 넘어서면 제품 가격을 할인 받는다’는 조건에도 합의했다.

바이어들은 수입할 8000여 벌의 옷 중 1000여벌을 사흘 동안 일일이 입어 보며 골랐다. 관건은 파리지엔풍의 브랜드 감성과 한국인 취향의 절충점을 찾는 것이다. 제라르 다렐 본사는 최근 복고풍의 유행에 맞춰 옵티컬(광학) 프린트 옷을 내세웠지만 롯데 측은 “너무 느낌이 강하다”며 구매하지 않았다. 그 대신 길이가 짧아진 바지는 한국인 체형에도 잘 맞아 예년보다 주문 물량을 30% 늘렸다. 패션 감각을 점차 갖추며 롯데 글로벌 패션부문은 2006년 매출 80억 원에서 지난해 221억 원(제라르 다렐은 35억 원)으로 성장했다.

국내 백화점들의 차별화 매장 전략은 세 가지다. 제라르 다렐처럼 백화점이 직접 브랜드를 개발하거나 수입해 재고관리까지 하는 자체 브랜드, 단독 입점 브랜드, 편집매장 등이다. 롯데는 그동안 ‘자라’와 ‘유니클로’ 등 단독 입점 브랜드로 톡톡히 재미를 봤지만, 이들은 단독 입점 기간이 끝나면 다른 곳에도 매장을 확대해 ‘규모의 경제’를 꾀한다.

최근 ‘뜨는’ 편집매장은 제품 브랜드가 너무 방대해 관리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백화점들이 끝없이 새로운 자체 브랜드를 발굴해 키워야 하는 이유다. 롯데 ‘훌라’ 팀은 지난달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 전국의 숍 매니저들을 불러 모아 내년 봄 신제품들을 결정하기도 했다. 이른바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구매 전략이었다.

이번에 파리에 간 롯데 제라르 다렐 팀은 온종일 파리 시내를 발로 뛰어다니다시피 훑었다. 향후 가능성 있는 브랜드를 눈여겨보고, 해외 백화점들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파리 백화점들의 변신은 놀라웠다. 프렝탕백화점은 매장 한가운데 대형 나무를 설치해 여러 브랜드 제품을 꽃이나 새 모형과 함께 나뭇가지에 매달았다. 감성적 소비자들을 위한 미학적 시도였다.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은 ‘무엇이 새로운가(Quoi de neuf)?’란 캠페인을 통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패션 트렌드를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안내하고 있다. 정동혁 롯데백화점 글로벌 패션부문장(이사)은 “이제 백화점은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게 아니라 패션 제안자로 거듭나야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파리=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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