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동차노조 변해야 한다]<下>바뀌는 노사관계

  • 입력 2009년 8월 29일 02시 59분


“불합리한 요구에 밀리지 않겠다”
경영진 올해들어 ‘원칙 고수’ 전략

기아자동차는 광주공장장인 조남일 부사장 등 임금협상 사측 교섭위원 3명의 사표를 18일 수리했다. 사실상의 경질이었다. 이들을 포함한 기아차 사측 교섭위원 20명 전원은 임금협상이 장기화되고 노조 파업이 지속된 데 책임을 지고 12일 사직서를 냈다. 임협 중 사측 교섭위원이 사직서를 낸 것이나, 이 사표가 수리된 것은 기아차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회사 측이 노조에 ‘밀리지 않겠다’는 강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 사측, 원칙 끝까지 지킬 수 있을까

올해 자동차업계에서 노사갈등이 두드러지는 이유 중 하나는 경영진이 전에 없이 원칙을 고수하는 대응전략을 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동차업체의 한 관계자는 “국내 자동차회사들은 해외 경쟁 업체들이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의 불합리한 노사관계를 바로잡지 않으면 경쟁구도에서 뒤처질 것이라는 위기감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77일간의 극한 대치에서도 쌍용자동차 경영진은 ‘정리해고 불가’라는 노조의 주장을 끝까지 수용하지 않았다. 박영태 쌍용차 공동관리인은 파업 중이던 7월 초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봉책으로 덮으면 당장은 모두 편해질 수 있다.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천천히 망하면 된다”고 말했다. 눈앞의 파국을 피하는 데 급급하기보다 좀 더 시야를 넓혀 장기적인 생존 가능성을 생각하면 원칙을 지킬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기아자동차는 올해 초부터 잔업이 없는 라인의 근무자를 퇴근시키고 잔업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공짜 잔업수당 지급’이라는 잘못된 관행을 없앤 것이다. 회사 측은 올해 파업 기간에 대한 무노동 무임금 원칙도 반드시 지키겠다는 방침이다.

자동차회사는 아니지만 노조가 완성차업체와 마찬가지로 금속노조 산하에 있는 금호타이어도 임금협상에서 원칙을 강조했다. 25일 노사교섭에서 노조가 그동안 주장해온 임금인상을 포기하는 수정안을 제시했지만 사측은 노조가 쟁의행위 기간의 임금 지급을 요구한 데 대해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깰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 ‘시장 무서워하는’ 노사관계 돼야

전문가들은 “한국의 자동차 노사는 시장을 무서워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 자동차회사들은 올해 상대적으로 운이 좋았다”며 “고객 요구를 최우선으로 하는 ‘시장친화적인 노사관계’를 만들지 않으면 시장 환경이 급변할 때 지금 고전하는 해외 업체들보다 더 큰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노조가 물량 재배치를 거부해 시장에서 잘 팔리는 모델의 생산을 늘리지 못하거나 해외 생산을 반대하는 행위, 회사 측이 신차 가격을 계속 올리는 것 등은 시장과 고객 요구를 무시하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국내 1위 업체인 현대·기아자동차는 노사간 ‘담합’의 형태로 불합리한 관행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비판도 일각에서 나온다. 사실상 내수시장을 독점하는 상황에서 강성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회사가 이를 받아들이고 비용 부담은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식으로 진행됐다는 주장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는 “임금협상을 하더라도 회사와 노조의 주장이 실제와 맞는지 확인할 수 있는 통계들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회사별 공장별 생산성 및 경영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를 만들고 그것을 근거로 노사가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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